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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아영 Jul 13. 2023

몽골 디폴트립 그 이후, 뜻밖의 소득

어둠을 참 무서워했다. 바보 같다고 생각하는 사람이 있을지도 모르지만, 방에서 혼자 문을 닫고 불을 끄고 자는 일이 서른이 넘어서까지도 불가능했다. 보이지 않는 어둠 속에서 뭔가 날 지켜보고 있을 것 같고 그 어둠 속에서 내가 할 수 있는 일이 없을 것 같아 불안했다. 걱정하는 대상이 귀신이든 괴물이든 알 수는 없었지만 그랬다. 친구 집에 놀러가거나 여행을 가서 친구들과 함께 잠들 때는 괜찮았다. 그렇지만 혼자 내 방에서 자야 할 땐 문을 꼭 조금 열어둬야 했다. 불 꺼진 집안에서 가족들과 연결되어 있다는 느낌을 받고 싶어서, 엄마 방이나 동생 방 문을 꼭 열어두고 내 방문도 열어둔 채 잠들었다.


독립을 하고 이사를 다니면서 표면적으로 제일 중요하게 생각한 건 2층 이상의 안전한 집을 구하는 일이었지만, 그와 동시에 노란 곰돌이 푸 조명을 무사히 옮겨 다니는 일 역시 내게는 그만큼 중요했다. 언젠가 이사하면서 잘못으로 조명의 갓이 찌그러졌을 때는 얼마나 속상했는지 모른다. 조명에는 타이머 멀티탭이 항상 세트로 따라다녔는데, 혼자 잠들 때 타이머를 맞춰둬야 했기 때문이다. 30분 정도 조명 타이머를 맞춰두고 팟캐스트를 제일 작은 소리로 틀어두고 잠들었다. 나중에는 멀티탭이 낡으면서 덜덜거리는 듣기 싫은 소리가 나는데도 버리지 못했다. 정작 누우면 금방 잠드는 사람이었는데도 잠들기 전의 고요한 어둠이 미치도록 싫었다. 뭐가 그렇게 불안했던 걸까? 그렇게 보낸 세월이 몇 년이다.


작년에야 불을 끄고 잠들 수 있게 됐다. 몽골 여행에서 돌아온 이후 문득 조명에 타이머를 맞추지 않고도 잠들 수 있을 것 같았고, 정말로 그렇게 잠들었다. 드디어 갓이 찌그러진 조명을 버릴 수 있었다. 새로운 조명을 사지도 않고 불을 끄고 누웠는데 불안하지 않았다. 왜였을까? 너른 하늘과 초원으로 둘러싸인 게르 캠프에 묵으며, 밤중에 화장실을 오가면서 만난 더 광활한 어둠 때문이려나 혼자 낭만적인 이유를 추측해 보다가 사실은 여행 직후 시달린 극심한 피로 때문이었겠지 하는 현실적이고도 낭만이라고는 하나도 없는 결론을 내렸다. 꼰대 같은 말이지만, 더 힘들고 무서운 게 생기면 극복이 되는 거였나 보다. 어쩌면 내가 마음이 편해지고 자라서였나 기대하고 싶었는데 말이다.


내향형 인간 주제에 낯선 사람들과 열흘을, 비포장도로를 매일 6시간씩 달린 여행이었으니 귀국후 체력이 방전되어 있었다. 매일같이 야근을 하면서도 꼭 맞추고 자던 조명의 타이머를 맞출 기력도 없었다. 몽골 게르의 침대가 비위생적이라고 느껴져도, 벌레가 무서워도 그냥 잤었는데 내 방 내 침대에서 그냥 못 잘 게 뭐야,라는 생각으로 불을 끈 채 그냥 누웠다. 조금 긴장했지만 정말 피곤했고 어, 생각보다 괜찮네? 하는 생각과 함께 무서움 없이 잘 잠들 수 있었다. 첫날의 성공으로 둘째 날도 걱정보다 수월하게 잠들 수 있었고 며칠을 계속해서 잠들 수 있게 되었고, 그러다 그렇게 조명을 버렸다.


그런데 곰곰이 다시 생각해 보니 피곤도 피곤이었지만 누웠을 때 더 이상 공포를 느끼지 않았던 이유는 내가 마음이 편해지고 커서가 맞다고 고쳐서 말하고 싶다. 사실 귀국 첫날 내 방에 누웠을 때, 몽골에서의 열악한 잠자리를 생각했지만 마음속에서는 게르 캠프에서 같이 잠들던 친구들을 떠올렸다. 처음 만났지만 며칠 동안이나 합숙하며 지냈던 아이들. 게르 캠프에서도, 현지인의 집인 캠프에서도 함께 잠들며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을 거라는 믿음을 가질 수 있던 날들이 내게 모르는 새 안도감을 줬던 모양이다.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아. 아무것도 날 괴롭히러 오지 않을 거야. 여행이 끝나고 각자의 자리로 헤어졌지만 그 친구들에게 받았던 좋은 기운을 아직 간직하고 있었다.


사람을 낙원으로 삼는 게 위험하다는 말을 매번 되뇐다. 혼자 기대하고 실망하는 일이 빈번하다. 나 아닌 다른 사람들은 내가 어찌할 수 없고, 그 마음도 어찌할 수 없으니 내 주도권 밖에 있는 일이어서 그에 의지하면 휘둘릴 수밖에 없다. 그렇지만 혼자 불을 끄고 잠들 수 있게 된 일은 떠날 때는 생각지도 못한 소득이었다. 기대하지도 않았던 기회로 만난사람들에게 이런 치유를 받을 수도 있었다. 그리고 이제야 인정할 수 있었다. 나 사람 좋아하네, 사람을 많이도 좋아하네.


  누구나 나 같은 방법으로 무서움을 극복하거나 똑같은 경험을 할 수도 없겠지만 그렇게 무서워하던 일도, 30여 년 동안이나 붙잡고 있던 두려움도 어느 순간 아무렇지 않게 지나갈 수도 있겠다는 말을 하고 싶었다. 무서워하지 않게 될 줄 몰랐던 어둠이 덜 무서워지는 게 삶이라면 그 또한 얼마나 재밌게 느껴지는지 모른다.


  이제 내게 남은 무서움의 대상으로는 벌레가 있다. 자취를 8년이나 하면서도 벌레를 극복하지 못한 이유 역시 여태 편하게 지내서려나. 벌레를 잘 잡는 친구들은 그보다 더 중요한 일을 생각하면 벌레쯤은 아무것도 아니라고 했다. 지금 잡지 못하 괴로워하는 시간이 아까울 테고, 나중의 걱정이 끔찍할 거라는 생각으로. 호기심에 찾아본 심리학 책에서는 공포를 극복하기 위해서는 그 공포를 바로 직시해야 한다고 했다. 두려워하는 상황에 스스로를 노출시켜 두려움의 대상을 똑바로 바라보고, 분석하고, 이겨내야 한다고 했다. 내게 이론과 실전은 별개였다. 사실은 벌레에 나를 노출시키고 싶지 않았다... 이 공포도 극복하고 나면 지금처럼 허심탄회하게 얘기해 볼 수 있으려나. 그것도 사람 때문일까?


  경험해야 할 일들이 아직도 많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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