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잔(Phanjaan)에서 그 이유를 찾다.
성선설 vs 성악설.
인간은 선천적으로 선할까?
아니면 악할까?
최근 그 답을 찾아가고 있다.
현재까지 내린 결론은
'개인은 선하나, 조직은 악하다.'이다.
'지적 대화를 위한 넓고 얕은 지식 0(채사장 지음) - 프롤로그'에서 그 실마리를 찾을 수 있었다.
파잔(Phajaan)은 코끼리의 영혼을 파괴하는 의식이다. 야생에서 잡은 아기 코끼리를 움직이지 못하게 묶어둔 뒤 저항이 완전히 사라질 때까지 몇 날을 굶기고 구타하는 의식. 절반의 코끼리가 이를 견디지 못하고 죽음에 이르지만, 강인한 코끼리는 살아남아 관광객을 등에 태우고 돈벌이의 수단이 된다. 코끼리는 생각이란 것을 할 수 없을 테지만, 그들의 영혼은 산산이 부서지고 본능의 심연에서 어렴풋하게 냉혹한 세계를 이해하게 되었을 것이다. 이제 엄마를 찾아선 안 된다는 것과, 몽둥이의 고통을 이길 수 없다는 것을. 코끼리가 생존할 수 있는 방법은 단순하다. 자유를 향한 자기 안의 목소리가 들리지 않는 척하고, 세상이 혼란스럽지 않은 척하는 것이다.
우리는 악에 대해 생각해보게 된다. 파잔 의식을 시행하는 몽둥이를 든 가난한 자들에게 분노하게 된다. 하지만 분노에서 멈추지 않고 그들의 삶을 들여다보면 모든 문제가 그러하듯 이것이 단순히 선악의 문제를 넘어선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어쩌면 파잔 의식을 시행하는 자들도 피해자일지 모른다. 그들의 영혼도 이미 산산이 부서진 것일지도 말이다. 그들이 처음 아기 코끼리를 구타하는 것을 주저할 때, 그의 가정과 사회는 그에게 친절하게 말했을 것이다. 질문을 멈추라. 그것은 먹고사는 데 아무런 도움도 되지 않는다. 네가 지켜야 할 사랑하는 이들의 생존을 위해 어른스럽게 행동하라. 결국 그는 자기 안의 목소리가 들리지 않는 척했을 것이고, 세상이 혼란스럽지 않은 척했을 것이다.
이 이야기는 당신의 이야기다. 당신은 어느 곳에서는 매 맞는 코끼리였고, 다른 곳에서는 몽둥이를 든 자였다. 우리가 고민해야 하는 것은 내가 피해자였는지 가해자였는지가 아니라, 우리의 영혼이 이미 파괴된 것은 아닌가 하는 점이다.
[지적 대화를 위한 넓고 얕은 지식 0 - 프롤로그 중에서]
그 외에도 선한 개인이 악한 조직의 일원이 되는 사례는 주변에서도 쉽게 찾아볼 수 있다.
[사례-1] 친일파
조정래 작가님의 소설 아리랑을 보며 안타까웠던 것은, 일본인보다 더 악랄한 친일파가 우리 민족을 더 힘들게 했다는 것이다.
그들은 왜 친일을 했을까?
개인적으로는 좋은 사람이더라도,
조직(일제치하) 내 생존을 위해서
다른 사람들을 탄압하는 친일을 선택하게 되었을 것이다.
문제는 그 행동이 크게 봐서는 잘못된 행동이라는 것을 알지만,
그 당시에는 ‘어쩔 수 없잖아. 내가 안 하면 누군가는 하게 될 텐데.’라며 자기 합리화가 된다는 점이다.
[사례-2] 학교폭력
학교폭력은 왜 발생할까?
청소년기에도 분명 위계는 있다.
사회적 위계라기보다는 누가 더 힘이 강한지에 대한 정도라고 볼 수 있다.
두 명의 사람이 산속에서 곰을 만났을 때 살아남는 방법은 간단하다.
나머지 한 사람보다 빨리 달아나면 된다.
그건 이타심의 여부와는 또 다른 문제이다.
어찌 되었든 나부터 살고 봐야 할 것 아닌가?
학교폭력도 마찬가지이다.
내가 괴롭힘을 받지 않기 위해서는
다른 친구들보다 월등하게 힘이 세거나,
나보다 약한 사람을 집단적으로 괴롭히는 것에 동참하는 것이다.
나보다 약한 사람이 존재하는 한,
내가 괴롭힘을 당하지는 않을 테니
그 부도덕함에 편승하게 되는 것이다.
[Appendix]
우리는 왜 조직에서는 악해질 수밖에 없을까?
’왜 우리는 집단에서 바보가 되었는가'라는 책의 내용을 통해 조금 더 상세하게 살펴볼 수 있다.
https://brunch.co.kr/@azafa/10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