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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책인사 Jan 05. 2020

조직문화 판단기준 = 전화받기

전화를 받는 모습에서 그 조직의 문화가 느껴진다.

아들을 초등학교에 데려다주던 어느 날.

초등학생들이 많이 이용하는 횡단보도 바로 앞에 트럭 한 대가 서 있다.

횡단보도를 건너는 학생들이 트럭에 가려 위험해 보였다.


구청 조직도를 찾아보고 주차 행정과 담당자에게 전화를 걸었다.

지긋한 목소리의 중년 남성이 받았다.

"초등학교 앞 주정차 차량 신고를 하려고 합니다."

귀찮게 왜 내 자리로 전화했냐는 듯한 목소리로 

"잠시만 기다리세요." 하더니, 바로 전화를 돌린다.


30~40대 여성이 이어받았다.

"초등학교 앞 주정차 차량 신고를 하려고 합니다."

"잠시만 기다리세요. 담당자 바꿔드릴게요"

또 전화가 돌아간다.


20~30대 남성이 전화를 받고 나서야

겨우 내용을 설명할 수 있었다.


전화를 끊고 나서 생각이 들었다.

"역시 공무원답다."

(공무원을 비하하고자 하는 표현은 아닙니다. 오해 마시길.)




나는 두 번째 회사를 다니고 있다.


처음 다닌 회사는 군대보다 더한 조직문화를 가지고 있었다.

회사에서는 "~다나까"를 써야 했다.

"~요"를 쓰면 혼났다.

그 회사에서는 전화벨 소리가 3번 이상 울리면 안 되었다.

내 전화가 아니더라도, 우리 부서에서 전화가 2번 울리면 무조건 땡겨받아야 했다.

행여나 전화 3번 이상 울리면 바로 호통이 날아들었다.

"야~! 전화 안 받냐?"


조금 높은 분들은 자리에 계셔도 전화를 잘 받지 않으셨다.

내 일도 벅찬데, 윗분들 전화 땡겨 받으랴,

전화 내용 확인하고 회신하랴.

하루도 편한 날이 없었다.


가끔 윗분들이 받지 않으셔서 땡겨받은 전화가 더 높은 임원분 전화면,

"OO님! 상무님 전화입니다." 하면

그제서야 허겁지겁 내 자리까지 달려오시는 윗분들.

이제야 말하지만 그때는

'에라이~ 전화 안 받더니 쌤통이다.'라는 생각도 들었다.



지금 다니는 회사는 매우 개방적이다. 

극도로 보수적인 대기업에서 자유분방한 외국계 회사에 와서 

제일 처음 당황한 것은 다름 아닌 전화문화였다.


담당자에게 전화를 하면, 전화를 받는 사람이 거의 없었다.

담당자가 잠시 자리 비운 사이에 전화가 와도 땡겨받는 사람이 없다.

심지어 어떤 사람들은 전화기 볼륨을 무음으로 해 놓는 사람들도 있었다.


무음으로 해 놓은 사람들의 이유도 다양하다.

'자꾸 영어로 전화하는 외국인들이 있어서.'

'급하면 이메일 보내겠지. 증거를 남겨둬야 해.' 등.


전화를 안 받는 이유도 다양하다.

'급하면 휴대전화나 메일로 연락하겠지.'

'내 일도 바쁜데 왜 다른 사람 전화까지 땡겨받아야 하는데?'

'받아봤자 내가 대답해 줄 수 있는 것도 없어.' 등.




그 조직의 조직문화를 가장 쉽게 대변해 주는 것은 '전화받는 모습'이다.

얼마나 보수적인지? 개방적인지?

아니면 '아몰랑~ 귀찮아'인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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