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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필그림 Nov 01. 2023

건강해야해, 닭가슴살 볶음밥

정말 오랜만에 연애를 시작했다. 20대 때부터 요리를 시작해온 나는 파스타며 찌개며 열심히도 요리해 나와 엄마를 위해 요리한 밥을 먹었었다. 그렇게 집에서 요리해먹으며 특별한 일 없을 땐 집에서 잘 나오지도 않던 내가 연애를 다시 시작하게 된 건 서른 셋이 되어서다.


그간 왜 연애를 하지 않았는가? 생각해보면 나는 20대 때의 미숙한 연애들로 호되게 당한 후 별로 연애에 대한 기대가 없었다, 고 생각했다. 하지만 그 속을 조금 더 솔직히 드러내자면 연애에 대한 기대가 한껏 높아져있었다, 라고 말해야 맞을 것 같다. 이전의 실수들을 반복하지 않고 싶은 마음은 커질 대로 커져서 웬만한 기회들에는 절대로 마음을 주지 않는(넘어가지 않는) 강철같은 연애체력을 갖게 했다. 철벽이라고도 한다. 그렇게 나이만 한 살 한 살 먹어가던 중, 자연스럽게 교회 공동체 안에서 정말 좋아하는 사람을 만났다. 건강한 연애를 할 수 있는 사람, 그리고 마음을 주는 것이 아깝거나 덜 줄까 고민되지 않는 사람을 만난 것이다.


강철같은 연애철벽체력은 갖추었으나 실제로 연애할 때 있어야 할 체력은 갖추지 못했던 나는 산으로 들로 다니며 금세 체력의 고갈을 맛보아 그의 걱정을 샀다. 하지만 연애 시작 후 한 달이 넘고 마음이 풍족해서인지 식탐도 점차 줄어들어 건강한 음식을 조금만 먹어도 배부르게 되었으니 이 또한 좋은 일이다.


또 강철같은 철벽만 가꿔오다보니 사랑을 더 편하고 깊이 주고받는 것에는 서툴러서, 어둡거나 서툰 부분을 공개하게 되며 약간 부끄럽기도 했다. 하지만 조금씩, 무엇이든 공유해도 너무 어른스럽지 않아도 괜찮은 나의 편을 더욱 확신하는 과정으로 나아가는 것은 큰 은혜인 것 같다.


오늘 소개할 닭가슴살 볶음밥은 같이 듣는 교회 강의 시작 전에 도시락으로 해서 같이 먹었다. 닭가슴살 한 팩을 사면 세 덩어리가 들어있어서, 나 한 덩이 먹고 두 덩이는 상대에게 주면 딱 맞았다. 닭가슴살 볶음밥에 양파와 당근 다진 것을 넣어 굴소스로 마무리해주었다.


약간 싱겁게 된 볶음밥에는 짜게 먹으면 안 좋다는 나의 마음이 담긴 것을 그는 알까!


닭가슴살을 조리된 걸 사서 해주기보다 직접 삶아줄 때 나에게 조금 더 뿌듯함이 있다는 것을 그는 알까!


요리의 세계는 정성과 약간의 기술 중 어느 수준 이후부터는 정성이 더 중요해서, 사소한 고민들에 봉착하는 것 같다. 닭가슴살을 삶을 것인가 살 것인가(가격은 비슷하다)와 같은 문제들. 상대는 늘 맛있게 먹어주지만, 그래도 나만 아는 사랑의 마음들이 있다. 들인 시간과 노력이 적을 수록 기쁨을 오래 기억하지 못한다는 어디서 들어 전해준 그의 말처럼, 도시락 싸기 하루 전부터 시간을 들여 삶고 찢어둔 닭가슴살은 그가 잘 먹어주었을 때 더 오래 기쁜 기억으로 남는다.


요리를 먹어 좋은 것은 상대이고 나는 힘든 것이 크다는 생각보다는 내가 시간을 들이고 그로서 큰 기쁨을 느끼게 해주는 상대가 있다는 것이 감사한 거라는 생각으로, 바쁘디 바쁜 현대사회에도 뜨거운 마음을 가진 요리인류가 늘어났으면 좋겠다.


조금 싱거운 닭가슴살 볶음밥, 클리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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