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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서정연 Oct 27. 2020

내가 사랑한 작가, 내가 사랑한 문장

[물감과 타이프]

ⓒ서정연



"죽은 사람들이

기억에서 희미해져 가는 것은,

그들이 죽어서가 아니라

우리 자신이 죽어가고 있기 때문이다."



_ 마르셀 프루스트















ⓒ서정연



"네가 집을 나갈 필요는 없어.

탁자에 앉아 그저 듣기만 해.

아니, 귀 기울일 필요도 없고

그저 기다리기만 해.

아니, 기다리지도 말고

오롯이 침묵을 지키며 홀로 있기만 해.

그러면 네가 베일을 벗길 수 있도록

세상이 네게 다가올 것이고,

세상은 달리 할 수 없기에,

경탄해 마지않으며,

네 앞에서 변형되기 시작할 거다."


        

_ 프란츠 카프카,

<죄, 고통, 희망, 진리의 길에 관한 명상> 中







ⓒ서정연


평생을 도서관장으로 살았지만 말년에 시력을 거의 잃어버렸던 보르헤스. 더 이상 책을 읽지 못하는 것만큼 그에게 고통스러운 일이 있었을까?     


“도서관은 영원히 지속되리라. 불을 밝히고, 고독하고, 무한하고, 부동적이고, 책들로 무장하고, 쓸모없고, 부식하지 않고, 비밀스러운 모습으로 말이다.

(…)

만약 어떤 순례자가 어느 방향에서 시작했건 간에 도서관을 가로질렀다고 하자. 몇 세기 후에 그는 똑같은 무질서 속에서 똑같은 책들이 반복되고 있음을 확인하게 되리라. 나는 고독 속에서 이 아름다운 기다림으로 가슴이 설레고 있다.”



_ 호르헤 루이스 보르헤스




ⓒ서정연



"나에게 아름다움이란

부피도,

넓이도,

높이도,

그곳에 들인 비용도,

조명 효과도,

그 무엇도 아닌,

조화로움에 있을 뿐.

(…)     

예술이 높은 곳에 있는 것은

육체 깊은 곳의 관능을

반향하기 때문이다."


          

_ 르 코르뷔지에(건축가, 화가)








ⓒ서정연



"하지만 아침에 내가 강한 바람을 피해 문지방을 넘어서는 순간 바로 내 옆에 한 친구가 등장한다. 내가 휴식을 취하는 순간마다, 카베(KB·의무실)에서나 쉬는 일요일마다 나타나던 친구다. 바로 기억이라는 고통이다. 의식이 어둠을 뚫고 나오는 순간 사나운 개처럼 내게 달려드는, 내가 인간임을 느끼게 하는 잔인하고 오래된 고통이다. 그러면 나는 연필과 노트를 들고 아무에게도 말할 수 없는 것을 쓴다."



_ 프리모 레비,

<이것이 인간인가> 中










ⓒ서정연



"밤에는 눈이 반쯤 감기고 눈 이외의 감각들이 주도권을 갖는다. 나는 냄새를 따라 걸어간다. 이제 나무마다, 밭마다, 숲마다 향기가 난다. 가끔 언덕 꼭대기에서 따뜻한 공기가 확 밀려온다. 그것은 낮에 사람들이 숨을 쉬고 일을 한 공기다. 해가 지자 그 공기는 주인 잃은 개처럼 숲과 언덕을 헤맨다. 낮에 태양의 온기를 흡수한 돌은 밤새도록 따뜻하다. 모래도 마찬가지여서, 조금만 파헤치면 곧 따뜻한 모래가 나온다."



_ 헨리 데이빗 소로우,

<달빛 속을 걷다> 中








ⓒ서정연


"일단 내가 최근에는 기발하게 쓰기보다는 정확하게 쓰려고 노력해왔다는 점만 밝히기로 하자. (…) 나는 지난 7년 동안 소설을 쓰지 않았는데, 이제는 조만간 또 하나의 소설을 쓰고 싶다. 그것은 실패작이 될 게 뻔하고, 사실 모든 글은 실패작이다.

모든 작가는 허영심이 많고 이기적이고 게으르며, 글 쓰는 동기의 맨 밑바닥은 미스터리로 남아 있다. 글을 쓴다는 건 고통스러운 병을 오래 앓는 것처럼 끔찍하고 힘겨운 싸움이다. 거절할 수도, 이해할 수도 없는 어떤 정신에 끌려 다니지 않는 한, 절대 할 수 없는 작업이다. 나는 내가 글을 쓰는 동기 중 어떤 게 가장 강한 것이라고는 확실히 말할 수 없다. 하지만 어떤 게 가장 따를 만한 것인지는 안다."



_ 조지 오웰,

<나는 왜 쓰는가 Why I Write> 中



ⓒ서정연



"무엇인가 읽을 것이 있을 때면

가로등 불빛에 의지해서

나는 계속 읽고,

그러고 나면

잠든 밤 사이에 문장들이 태어난다.

문장들은 내 곁을 맴돌다가,

속삭이고,

리듬과 운율을 갖추고,

노래를 부르며 시가 된다.     

어제, 모든 것은 더 아름다웠다.

나무들 사이의 음악.

내 머리카락 사이의 바람.

그리고

네가 내민 손 안의 태양."



_ 아고타 크리스토프, <문맹> 中






ⓒ서정연



"나는 인생의 가장 어둡고 구석진 곳에 숨겨진 은밀하고 희망적인 논리를 믿고 있었다. 나는 세상을 신용하고 있었다. 나는 어머니의 부서진 얼굴을 볼 때마다 내 운명에 대한 놀라운 신뢰가 내 가슴 속에 자라남을 느꼈다. 전쟁 중 가장 어려운 시기에도 나는 항상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으리라는 느낌을 가지고 위험과 대면하였다. 어떤 일도 내게 일어날 수 없었다. 왜냐하면 나는 내 어머니의 해피엔드이므로."



_ 로맹 가리, <새벽의 약속> 中









ⓒ서정연



“혜안(慧眼)을 가진 열 명을 포함한 천 명의 학자가 있습니다. 그들 중에는 한 명의 천재, 한 명의 발명가, 한 명의 창조자가 있습니다. 그리고 지식을 가진 사람은 몇 천 명이나 됩니다. 이 세상에는 셀 수 없이 많은 훌륭한 사람과 앞으로 훌륭하게 될 사람들이 있겠지요. 그렇지만 나는 나의 훌륭함이 마음에 듭니다.”


_ 에곤 쉴레



에곤 쉴레의 드로잉을 따라 그려보다가 도저히 흉내조차 낼 수 없음을 깨닫고 그냥 그의 얼굴을 그린다. 에곤 쉴레가 어느 편지에 썼다는 저 말은, 나르시시즘에 빠진 예술가의 자아도취적 발언이 아니라 자신의 길에 들어선 것을 확실히 알고 있는 사람의 자부심으로 읽힌다.




ⓒ서정연



"…나는 자신을 반성하고 비웃지만, 동시에 자신을 존중한다. 나는 끝까지 말짱한 정신으로 활동할 수 있을 것 같다! 내가 세상에 대해 가지고 있는 이미지는 여전히 얼마나 깨끗한지! 내 안에서 죽어가는 모든 것의 풍요로움은 정말로 놀랍다. 나는 스스로에 대해 부끄러워할 필요가 전혀 없다. 할 수만 있다면 다시 도전할 것이다.

…살갗이 아프다. 나는 심연의 한복판에 있다. 나의 피부가 나와 세상의 경계선이다. 외부 세계는 나를 짓누르는 압력이다. 이렇게 분리되어 있다는 느낌은 절대적이다. 이후 나는 나 자신 속에 갇힌다. 자기희생적인 융화는 일어나지 않을 것이다. 인생의 목표가 없어졌다. 오후 2시다."



_ 미셸 우엘벡,

<투쟁 영역의 확장> 中




ⓒ서정연



"추억 속의 이미지를 거론하여

번역하는 데 만족하지 말고,

그 이미지를

다양한 접근 방식을 통해

스스로 속살을 드러내는

자료로 취급할 것.

다시 말해

나 자신의 인류학자가 될 것."



_ 아니 에르노, <부끄러움> 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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