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 연재
“잠깐만,”
엄마가 치약을 짜기 위해 설이를 붙잡고 있던 왼팔을 풀었다. 설이는 힘없이 굽어진 다섯 손가락을 세면대 위에 올려둔 채 온 힘을 다해 고개를 들고 서 있었다. 엄마가 금세 다시 설이를 붙잡고 양치질을 시켜주었다. 치아가 보이도록 윗입술을 들어 올릴 수 있으면 좋을 텐데, 그마저도 할 수 없으니 입술이 칫솔에 자꾸만 부딪혔다.
“입 헹궈볼래?”
전에는 자꾸 움직여야 팔다리가 안 굳지, 자꾸 써야 힘이 붙지, 하며 몇 마디를 꼭 덧붙이던 엄마였는데. 이젠 무슨 말을 해도 돌아오는 대답이 없으니 엄마의 말도 점점 간결해졌다. 말하지 못한다고 해서 듣지도 못하는 건 아닌데. 잔소리마저 아쉬워지는 요즘이었다.
설이는 물이 조금 담긴 작은 플라스틱 컵을 두 손바닥 사이에 끼고 조심스럽게 들어 올렸다. 엄마는 설이가 앞으로 넘어지지 않게 설이의 몸통을 붙잡아 주고 있었다. 컵을 입술에 가져다 댔지만, 기울일 힘이 없었다. 몸에 반동을 주어 컵을 밀어 올렸다. 물이 턱 밑으로 쏟아지고 말았다.
“어, 어, 그러다가 또 삼키면 어떡하려고. 천천히 다시 해봐.”
이제는 침착하기까지 한 말투였다.
엄마는 다시 컵에 물을 받아 주었다. 아까보다 적은 양이었다. 설이가 컵을 입에 가져다 대자 엄마가 컵을 살짝 기울여 주었다. 설이는 입안에 물을 머금고 있다가 천천히 뱉어냈다.
“두 번만 더 하자.”
엄마는 수도꼭지를 다시 열며 말했다. 미세하게 떨리던 설이의 오른 다리가 점점 심하게 덜덜거리기 시작했다.
“서있기 힘드니?”
속으로 떠올린 대답은
‘그런가 봐요.‘
였다.
설이는 엄마의 도움을 받아 천천히 화장실 문턱을 넘었다. 입안에서 치약이 흘러나오고 있었다. 거실은 너무 멀었다. 요즘 들어 설이의 걸음걸이는 눈에 띄게 느려졌고, 그럴수록 엄마의 팔에 실리는 체중은 점점 더 무거워지고 있었다.
“아이고, 다 흘렸네. 대야 가져와서 입 헹궈줄게.”
설이를 소파에 앉힌 엄마는 손으로 턱에 흘러내린 치약을 닦아주고는 황급히 화장실로 돌아갔다.
집안에 휠체어를 하나 두면 조금 편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그러면 엄마는
‘집에서라도 걸어 다녀야지.’
라고 하려나. 하긴, 화장실 문턱도 넘지 못할 휠체어가 이 복잡한 과정을 얼마나 수월하게 해 줄지는 알 도리가 없었다.
문득 자신이 입 밖으로 내지도 않을 말을 고민하고, 듣지도 못할 엄마의 대답을 상상하고 있다는 사실을 알아차렸다. 언제부터 생긴 습관이었던가. 대화가 그리워서였나, 아니면 잠시 한눈팔 무언가가 필요해서였나.
속으로라도 대화를 이어가지 않으면 그땐 정말 인간이 아닌 무언가, 이를테면 짐승이나 물건 따위가 되어 버릴 것만 같은 두려움이 무의식 중에 자리하고 있었다.
엄마는 설이를 침대에 걸터앉히고 두 다리를 들어 올려 침대 위에 눕혀 주었다. 엄마의 허리에는 누런 보호대가 채워져 있었다.
“자세 괜찮아? 베개 더 안쪽으로 넣어줄까?”
“... 병.”
“응?”
“우… 원.”
“병원?”
“어.”
설이는 눈을 동그랗게 뜨고 짧은 ‘어’ 소리를 뱉었다. 그냥 내는 ‘어’ 소리는 『맞아』, 얼굴을 찡그리고 내는 ‘어’ 소리는 『아니야』. 아기 같은 화법을 엄마는 대체로 잘 이해했다.
“병원? 병원은 갑자기 왜?”
설이는 한쪽 손을 천천히 들어 올려 손등으로 엄마의 허리춤을 툭툭 쳤다.
“응? 아, 허리? 엄마 병원 가보라고?”
가봤냐고. 매한가지인 말이었으니, 별로 신경 쓰지 않았다.
“괜찮으니까 걱정하지 마.”
대답하는 엄마는 설이의 눈을 똑바로 쳐다보지 못했다. 설이는 그런 엄마를 뚫어져라 쳐다보았다.
“괜찮다니까. 그리고…”
엄마는 여전히 설이의 시선을 피하고 있었다. 매일같이 삼켜대는 진통제가 몇 알인데. 괜찮은 것일 리가 없었다.
“... 엄마까지 아프면 대책이 없어.”
엄마는 설이의 이불을 끌어와 목 위로 덮어주었다.
잘 자라는 말 없이 불을 끄고 방을 나서는 엄마를 가만히 지켜보았다. 아프면 대책이 없다니. 병원에 안 간다고 안 아픈 것도 아니면서. 몸 돌봐 가면서 하라는 말을 달고 살던 엄마가.
날마다 더 큰 무게로 엄마를 짓누르는 이 몸뚱이가 원망스러웠다. 완전히 걸을 수 없게 되는 날이 오면 어떻게 하지. 두 다리로 땅에 딛던 체중까지도 엄마가 감당하게 되면.
거실 불빛이 한 뼘 정도 열린 방문 틈으로 새어 들어와 방 안을 비추고 있었다. 흐릿한 무채색으로 물든 천장이 오늘따라 더 갑갑하게 느껴졌다. 엄마는 방문을 닫고 가는 법이 없었다. 비상시에는 자다가도 딸의 부름을 들을 수 있어야 하기 때문이다. 스스로 침대에서 일어나 방문을 열고 나올 수도 없는 딸을 건넌방에 눕혀둔 엄마는 매일 밤 애매하게 열린 방문처럼 애매한 선잠을 잤을 터였다.
온전히 누군가와 함께 있어 본 지도, 온전히 혼자 있어 본 지도 오래였다. 적적한 등굣길과 그 끝에 마주친 친구들. 시답지 않은 대화와 상쾌한 분주함. 바쁜 하루의 끝에 방문을 닫고 들어와 누리던 혼자만의 시간, 아늑한 저녁, 그 푹신한 휴식이 사무치게 그리웠다.
혼잡한 지하철에서 한 시간씩도 거뜬히 서 있던 그때는, 화장실 문턱보다 서너 배는 더 높은 계단을 거침없이 오르내리던 그때는 삶이 조금 더 가벼웠던가.
뜻밖에도 기억 저편에서 떠오른 감각은 어깨를 짓누르던 무거움이었다. 서너 개의 교재와 악보를 담은 가방의 무게는 악기를 들고 다니는 친구들이 감당하는 것에 비하면 아무것도 아니었지만, 지하철에 오래 서 있다 보면 그마저도 바닥에 내려놓고 싶었던 때가 종종 있었다. 피로에 눌려 땅으로 내리 꽂힐 것 같던 몸이 실은 얼마나 강하게 중력에 대항하고 있었는지를 그때는 알지 못했다.
인간이 이족보행을 하게 된 것은 더 높은 곳을 바라보고자 하는 열망 때문이 아니었을까.
네다리로 기는 짐승은 스스로 등에 짐을 지지 못한다. 반면 인간은 끊임없이 무게를 짊어지며 살아간다. 사지로 걷는 짐승보다 곱절의 무게를 견디기로 결심한 두 다리는 그 몸의 무게 이상을 짊어지게 되었다.
서류 가방을 든 직장인과 두툼한 책가방을 멘 학생들. 양손에 커다란 쇼핑백을 든 아줌마와 등산 장비를 짊어진 아저씨. 캐리어를 끌고 공항으로 향하는 커플과 아슬아슬한 하이힐을 신고 무거운 코트를 걸친 아가씨. 두 다리로 몸을 일으킴으로써 누리게 된 1m 위의 공기로는 만족하지 못한 인간의 모습이었다.
인간은 더 높이 솟을 또 다른 길을 모색해야 했을 것이다. 인간은 본디 욕망이 많은 존재이므로. 다들 각자의 하늘을 좇았을 것이다. 자신을 안팎으로 치장할 무거운 짐을 기꺼이 짊어진 것은 그 하늘에 닿으려는 각자의 몸부림이었을 것이다.
설이는 매일같이 무거운 가방을 메고 지하철에 서서 자신이 닿으려 했던 것도 하늘이었는지를 생각했다. 밥벌이를 하며 살아갈 수 있을까 하는 고민은, 언제까지 화장실을 두 발로 걸어 다닐 수 있을까 하는 것에 비하면 하늘과도 같은 욕망이었다. 음악이 자신의 하늘이었다는 생각은 손사래를 치듯 급히 거두어들였다. 자신의 욕망은 저주받은 욕망이었기 때문이었다.
바벨탑이 신에게 저주받은 이유는 그것이 하늘에 닿고자 하는 욕망의 산물이기 때문이었다 했다. 땅에 머물러야 하는 인간이 한때의 고상한 꿈을 꾼 대가였다. 하지만 인간으로 태어나 하늘을 바라지 않고 땅에 머리를 박은 채 하루치 먹이를 찾기에만 급급하다면, 그것이 짐승의 생애와 무엇이 다르겠는가.
그저 하루의 의미를 찾기 위해 기꺼이 하루의 무게를 짊어졌을 뿐이었다. 어째서 하늘을 꿈꾸던 정신으로 땅을 기는 짐승만도 못한 육신에 갇히는 저주를 받아야 했을까.
가슴이 벌렁거렸다. 하지만 스스로 고개조차 들어 올릴 수 없는 몸이었다. 가만히 누워 내일을 맞이하는 것 외에는 할 수 있는 일이 없었다. 자꾸만 하늘로 향하려는 시선을 억지로 땅으로 내리찍으며 견뎌야 하는 날들에 이젠 진저리가 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