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 연재
버림받은 자에게서는 나올 수 없는 의연함을 설이는 본 적이 있다.
신이든, 운명이든, 혹은 자신을 손아귀에 쥐고 흔드는 거대한 힘이 무엇이든 간에, 그것은 결코 자신을 버린 적이 없다고, 이런 자신을 포기할 수 있는 건 오직 자기 자신뿐이라고.
예중 시절에 친구들 무리에 잘 끼지 못하는 아이가 있었다. 등하굣길에는 제 엄마 손을 잡고 다녔고, 친구들과 몰려다니지도 않았으며, 더욱이 친구들과 멀리 놀러 간 적도 없던 아이였다. 그런 애를 껴주기에 사춘기를 지나고 있는 중학생 여자애들은 너무 어렸고, 자기들끼리 이미 재미있는 것이 많았다.
“학생, 정말 미안한데, 오늘 필기한 것 좀 빌려줄 수 있을까? 내일 바로 가져다줄게.”
교실을 나서던 설이를 붙잡은 것은, 복도에 서서 수업이 끝나길 기다리고 있던 그 아이의 엄마였다. 그 애가 연주 수업에서 큰 박수를 받은 바로 다음 날이었다.
원래 교과서를 빌려주던 아이들이 부담스러워하는 기색을 내비쳤을 거라고 설이는 생각했다. 별로 친하지도 않은 자기에게까지 제 엄마가 부탁하러 온 걸 보면 짐작이 가는 일이었다.
그 아이는 매 학기마다 학과 시험에서 높은 성적을 받았고, 그때마다 미소를 감추지 못할 만큼 기뻐했다. 그러나 좋은 성적을 거둘수록 필기 빌려줄 친구를 찾는 일은 더 어려워졌다. 실기에 공부까지 잘하는 그 아이를 선뜻 도와주려는 친구는 많지 않았다.
설이는 흔쾌히 다시 교실로 들어가 사물함에 넣어두었던 교과서와 노트를 꺼내 그 아이의 엄마에게 건넸다.
“고마워, 학생. 내일 꼭 가져다줄게.”
너무 흔쾌히 부탁을 들어준 것이 잘못이었을까. 그 후로 교과서를 빌려주는 일은 끝도 없이 반복되었다. 시험 기간이 다가오면서부터는 하루씩 교과서를 빌려달라는 부탁이 부담스럽게 느껴지기 시작했다.
“빌려줘서 고마워.”
그 아이는 손으로 책상을 짚어 세면서, 설이의 자리까지 찾아와 필기한 것을 돌려주곤 했다.
설이는 마지못해 어색한 미소를 지었다. 하지만 그 아이의 눈동자는 설이의 눈 너머 먼 곳을 바라보고 있었다.
속마음을 감추려고 애쓰다가 입 밖으로 튀어나온 것은 뜻밖의 질문이었다.
“넌 언제부터 앞이 안 보였던 거야?”
순간, 무례한 질문이었다는 생각에 아차 싶었다. 하지만 그 아이는 담담히 대답했다. 여덟 살쯤에 걸린, 이름이 어려운 어떤 질병 때문이라고 했다.
“공부하기 힘들겠다. 매번 책 빌리는 것도…”
설이는 말끝을 얼버무렸다. 초등학교 때부터 앞을 보지 못했다는 이야기에 뭐라 대꾸해야 할지 몰라 막연히 튀어나온 말이었다.
괜찮아, 도움을 받는다고 해서 내가 완전하지 못한 건 아니니까.
돌아온 것은 무심코 던진 동정이 멋쩍게 느껴질 만큼 커다란 대답이었다. 어색했던 대화가 어떻게 마무리되었는지 잘 기억나지 않지만, 미처 예상치 못한 거대한 대답 앞에서 잠시 당황했던 짧은 순간은 잊지 못했다.
그 대답만큼이나 또렷이 기억나는 것은 그 순간 그 아이의 표정이었다.
초점이 맞지 않던 눈.
세상을 보기 위해서가 아니라, 세상을 받아들이기 위해 뜨고 있는 것만 같던 두 눈.
그 아이가 담은 세상은 동요 없이 아름다운 곳이었다.
설이는 가혹한 세상을 담담히 담아내던 그 아이의 얼굴을 기억했다. 어떻게 그럴 수가 있었을까.
휠체어에 앉혀지는 순간, 이 도시에서 자신이 들어갈 수 있는 곳이 절반도 되지 않는다는 사실을 깨닫고, 침대에 눕혀지는 순간, 이 사회로부터 철저히 배제되었음을 실감했던 그때 설이가 느꼈던 감정의 무게를 그 아이도 알고 있었을 텐데. 읽을 수 없는 시험지를 마주할 때마다 버림받은 것 같은 기분을 느꼈을 텐데. 선생님들이 무심히 내뱉는 한숨은 매번 그 아이의 심장을 모질게 찔러댔을 텐데. 자기 때문에 죄인처럼 구걸하러 다니는 제 엄마의 목소리를 들을 때마다 이 세상은 자꾸만 미워지려 했을 텐데. 그때마다 제 목숨처럼 여기던 피아노마저도 놓아버리고 싶었을 텐데.
설이는 부지런히 눈알을 움직여 안구마우스를 조작했다. 눈동자의 움직임에 따라 마우스가 이동하고, 몇 초간 응시하는 곳을 클릭해 주는 장치였다. 안구마우스를 갖추기 전까지 사용했던 글자판은 혹시 모를 안구마우스의 고장을 대비해 여전히 침대 옆에 놓여 있었다.
목소리마저 떠나간 뒤로 유일하게 움직일 수 있는 것은 두 눈뿐이었다. 글자판을 이용한 의사소통은 극도로 원시적이고 답답한 방식이었다. 엄마는 설이가 불편해 보일 때마다 글자판을 들고 손가락으로 글자를 하나씩 짚어 내려갔다.
추워요, 더워요, 가래 빼주세요, 대변, 소변, 배 아파요, 가려워요, 자세 바꿔주세요…
엄마의 손가락이 설이에게 필요한 글자를 가리키는 순간에 설이는 눈을 깜빡이면 되었다. 이 목록으로 해결되지 않는 일이라면, 자음과 모음이 하나씩 적혀 있는 글자판으로 넘어가야 했다. 기역부터 히읗까지 하나씩 짚어가며 하고 싶은 말을 써 내려가는 일은 때론 한 문장에 10분이 넘게 걸릴 때도 있었지만, 의사소통을 할 수 있다는 사실만으로도 감지덕지했었다. 하지만 글자판의 문제는 위급한 상황에 엄마를 부를 방법이 없다는 것이었다.
그래서 적지 않은 비용을 들여 안구마우스를 마련하게 되었다. 화면을 또렷이 응시해야지만 타이핑하거나 클릭할 수 있어 오래 사용할수록 눈알이 시렸다. 하지만 스스로 하고 싶은 말을 적어 음성으로까지 내보낼 수 있는 기술은 글자판에 비하면 훨씬 편리했다.
안구마우스로 인터넷을 사용하는 방법까지 터득하고 나자, 이제 남은 것은 두 눈뿐이라는 사실을 직시했기 때문이었을까. 까맣게 잊고 있던 그 아이가, 두 눈을 잃은 채 살아가던 그 아이가 문득 떠오른 것이다.
어떻게 지내고 있을까. 그 아이는 여전히 음악을 누리고 있을까.
굳어버린 두 다리가 한때 걷고 뛰던 자유의 감각을 잊지 못하듯, 그 아이도 시력을 잃기 전 보았던 색깔들을 여전히 품고 있을까.
남은 두 눈으로 잃어버린 목소리를 찾아 헤매는 자신처럼, 그 아이 역시 눈을 감은 채 건반의 소리로, 기억의 색으로, 공기를 물들이고 있을까.
여전히 할 수 있는 일이 남아 있다는 사실을, 그 기쁨을, 그 아이도 필사적으로 붙잡았을까. 안구마우스 조작법을 밤새도록 연습했던 자신처럼 그 아이 역시 그랬을까.
곡마다 일일이 점자 악보를 찾아야 했던, 또 그것조차 어려울 때에는 연주를 들으며 곡을 통째로 외워야 했던 아이. 촉각으로 음과 음 사이의 거리를 익히던 아이. 방학 때면 다음 학기 교과서를 미리 알아내 점자로 준비해야 했고, 갑자기 교과서가 변경되면 심란해하던 아이. 친구에게 빌린 필기를 제 엄마가 일일이 타자를 쳐 점자로 바꾸어주면, 시험 기간마다 그 점자를 수도 없이 문질렀을 아이. 우둘투둘한 점자만으로 세상과 맞서던 아이.
그렇게 마주한 세상이 고될수록 더 독하게 섬세해졌을 손끝. 그리고 섬세해진 감촉만큼 매번 더 찬란한 음악을 연주하던 아이.
자신의 잘못도 아닌 일로 끊임없이 고맙다, 미안하다는 말을 달고 살아야 했던 아이. 그러나 단 한 번도 초라한 표정을 지은 적은 없던 아이.
그 아이는 분명 알고 있었다.
장애는 죄가 아니라는 사실을.
질병은 다만 계절처럼 오고 가는 것일 뿐이라는 사실을.
주어진 계절 동안, 우리는 살아 있는 만큼 살아 있어야 한다는 사실을.
그 아이 이름은 가을이었다.
박가을. 왜 이제야 그 아이가 생각났을까.
설이에게 음악은 닿을 수 없는 완전함을 향한 몸부림이었다. 하지만 그 아이의 음악은 달랐다. 그 아이의 음악은 삶을 끌어안는 힘이었다.
스스로 실패라는 낙인을 찍어버린 뒤로는 음악을 견딜 자신이 없었다. 몸이 다 굳어 두 눈만 남을 때까지 여태껏 단 한 번도 음악을 찾아 들어본 적이 없었다. 하지만 그런 지금조차도 그 아이의 연주만큼은 괜찮을 것 같았다.
설이는 가능한 모든 시도를 해가며 그 아이의 흔적을 찾아 헤맸다. 음악에 대한 그리움만큼이나 애타는 마음으로 눈알을 움직였다. 하지만 아무리 검색해 보아도 소식은 끝내 찾을 수 없었다.
친구들의 자리를 걸음 수로 기억해 두었다가 직접 찾아와 교과서를 돌려주던 그 아이가, 흔들림 없는 표정으로 고맙다는 말을 반복하던 그 아이가, 세상이 자신을 매몰차게 제쳐둘 때마다 또다시 세상을 향해 몸을 내던지던 그 아이가 자신의 손으로 음악을 포기했을 리는 없었다.
두 눈을 뜨고도 버티기 힘든 이 세상을 오직 소리와 감촉만으로 살아낸 그 아이의 이야기가, 손에 쥔 모든 것은 언제든 사라질 수 있다는 사실을 너무 어린 나이에 깨달았을 그 아이가 다시 붙잡고 사랑해 낸 음악이, 왜 이렇게 흔적도 없이 지워진 걸까.
몇 년 전 교통사고를 당했다는 이야기를 전해 들은 기억이 어렴풋이 떠올랐다.
무언가에 의지해야 한다고 해서 온전히 살아 있지 못한 것은 아니라던 너의 말처럼, 수많은 이야기가 땅속에 묻혀있을 텐데. 삶의 밑바닥을 견뎌낸 사람들. 그곳에서도 왜 우리는 이 짧은 숨결을 피워내야 하는지. 세상을 향해 나서는 매 순간 이를 고민했을 사람들의 이야기는 왜 집 안에 갇혀 있어야 하는 걸까.
우리는 왜 살아가야 하는지, 왜 인간은 화장실까지 걸어가지 못해 기저귀에 대변을 누고, 엉덩이 살이 짓무르는 밤을 지나면서도 가슴에는 하늘을 품은 채 살아 있어야 하는지. 우리의 유한함이란 무엇이며, 그럼에도 살아가야 할 이유는 무엇인지. 연한 달빛처럼 빛났을 무한한 질문들은 왜 두터운 먹구름 같은 병실 커튼 뒤로 숨겨져야 했을까.
유한함은 두렵거든. 우린 모두 병들고, 언젠가는 죽게 되어 있어. 우린 모두 긁히면 붉어지고, 찔리면 피 흘리는 몸으로 살아가고 있어. 우린 설 수 있지만 영원히 서 있을 수는 없고, 걸을 수 있지만 영원히 걸을 수는 없어. 모든 것이 허무로 귀결되리라는 예감이 두려워서 우리는 끝내 그 현실을 외면해.
하지만 장애는 죄가 아니야. 질병은 저주가 아니야. 네가 품은 연약함은 너무도 아름다운 것이었어. 너의 일어서려는 노력은, 살아가려는 몸부림은 단 한순간도 저주받은 적이 없었어.
인간의 연약함을 외면하고 최상의 일부를 평범이라 정의 내린 이 도시는, 눈이 보이지 않거나, 귀가 들리지 않거나, 팔다리가 조금만 느려져도 도저히 쫓아갈 수 없는 속도로 달려 나가는 이 도시는, 나에게 이 시간을 견디는 법을 가르쳐준 적이 없었어. 하늘에 닿아야지만 온전히 아름다울 수 있다며 위로만, 더 빨리 위로만 올라가려는 이 사회는 땅에 두 발을 딛고도 하늘을 노래할 수 있다는 사실을 나에게 알려준 적이 없었어.
이 도시가 결국 그 아이를 다치게 하고 말았던 걸까. 빠른 것과 강한 것에서만 존재의 의미를 찾는 이 도시 속에서 그 아이도 마치 존재하지 않는 사람처럼 숨어 있을까. 병원에서 보았던 수많은 사람들처럼, 그 아이도 이 도시를 피해 숨어 있는 걸까. 버스와 지하철의 속도가, 사람들의 마음과 걸음걸이가, 그 아이에게도 위험할 정도로 빨랐던 걸까.
하루 종일 안구마우스와 씨름하던 설이가 그 아이의 소식 대신 마주한 것은, 반대로 자신을 찾고 있던 친구의 간절한 이메일이었다.
설아, 최근에서야 네 소식을 알게 됐어. 아무리 연락해도 통 답이 없길래 얼마나 수소문했는지 몰라. 네가 아파서 대학교도 자퇴했다고 들었어. 나한테 이야기 못 한 것도 다 이해해.
다른 연락은 안 받는 것 같더라. 예전에 이메일 주고받았던 게 생각나서 이렇게 연락해 봐. 나 다음 주에 한국 들어가. 한 달 정도 있다가 다시 나올 것 같아. 정말 보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