눈 #6

소설 연재

by 바달



설이는 당황스러움을 감추지 못해 미세하게 흔들리는 친구의 눈동자를 바라보았다. 무엇이 이 아이를 놀라게 했을까. 눈꺼풀만 간신히 움직이는 무표정한 얼굴이었을까, 아니면 목구멍에 꽂힌 기다란 관이었을까. 아마 살아있는 사람의 허벅지가 무릎 관절보다도 가늘어질 수 있다는 사실은 몰랐겠지. 이런 처참한 몰골로 친구를 마주할 용기는 도대체 어디에서 솟아난 걸까.

“아줌마는 방에 들어가 있을게. 편하게 있다 가렴.”

엄마가 친구를 위해 깎아 둔 과일을 내어주며 말했다.

“설아, 뭐 필요한 거 있으면 친구한테 부탁해서 바로 엄마 불러, 알았지?”

엄마는 설이의 머리를 가볍게 한 번 쓰다듬고는 안방으로 들어가 방문을 닫았다. 너무나 다른 두 청년의 모습을 한눈에 담는 일은 엄마에게도 고통스러운 일이었을 터였다.

친구는 무슨 말부터 해야 할지 갈피를 잡지 못하는 듯했다. 어쩔 줄 몰라하는 친구를 대신해, 설이는 천천히 눈동자를 움직이기 시작했다. 친구는 침대 위 거치대에 달린 컴퓨터 화면을 같이 보기 위해 설이의 머리맡으로 다가왔다.


와줘서고마워


억양 변화 없이 기계적인 목소리가 컴퓨터에서 흘러나왔다.

“이걸로 이메일 답장 썼던 거야? 어쩐지 띄어쓰기가 하나도 안 돼 있더라. 처음에는 장난치는 줄 알았잖아…”

친구는 묵묵히 서서 설이가 새 문장을 완성할 때까지 기다려주었다.


띄어쓰기까지힘들ㄹ어


“아니야, 내가 괜한 말을…”

친구는 당황해하며 말했다.

“네가 연락도 안 받고 소식도 없으니까 무슨 일이라도 생긴 줄 알고 걱정했어.”

젖어드는 친구의 두 눈에서 두려움을 읽었다. 죽음과 동떨어진 삶을 살고 있는 이 친구에게도 죽음은 어쩔 수 없이 두려운 것인가 보다.

“오랜만에 보니까 좋다, 설아.”

대학생이 된 이후로 항상 검은 아이라인을 길게 빼서 그리고 다니던 친구가 웬일로 화장기 없는 얼굴이었다. 그래도 잘 관리된 탈색 머리를 보니 여전히 평소에는 꽤 멋을 내고 다니는 듯했다. 전보다 젖살이 조금 빠진 얼굴이 예뻐 보였다.

친구를 집에 부르기로 결심했던 것은 단지 출국하기 전에 꼭 설이를 만나야만 하겠다고 주장하던 친구의 고집 때문만은 아니었다. 실은 설이 역시 오랫동안 보지 못했던 옛 친구의 얼굴이 그리웠다.


어떻ㄱ게지냈어


“나는 뭐 미국에서 석사 과정 밟고 있고...”

친구가 말을 이어가길 기다렸지만, 친구는 자꾸만 설이를 걱정하는 눈치였다.

“설아, 너는 어떻게 지냈어?”


나야맨날똑같지


설이가 화면에 쓴 내용을 지우고 새로운 문장을 쓰는 동안 짧은 정적이 흘렀다.


미국생활은어ㅓ때


“지낼 만해. 가끔 집이 그립긴 한데 그래도 재밌는 것도 많아…”

친구는 그 재밌다는 것을 늘어놓기에는 조심스러운지 말끝을 흐렸다.


괜찬ㅎ아더얘기해줘


친구는 잠시 머뭇거리다가 다시 입을 열었다

“전엔 학교 기숙사에 살다가 이젠 작은 방 하나 구했어.”

설이는 대답 대신 친구의 눈을 가만히 들여다보았다. 잘 듣고 있어. 더 이야기해 줘.

친구는 침대 난간에 몸을 기대고 이런저런 이야기를 들려주었다. 연주 프로젝트에 참여했다는 이야기, 최근에 독주회를 열었다는 이야기, 한국 음식이 먹고 싶어 요리 솜씨가 늘었다는 이야기. 예상외로 그 이야기들을 듣는 것이 괴롭지 않았다.

조심스러워하던 것도 잠시, 변한 건 없다는 듯이 살갑게 떠드는 친구가 한편으로 고맙기도 했다. 변한 건 머리카락 색깔뿐이었다. 넉살 좋은 성격은 그대로였다. 친구는 설이도 함께 웃고 있다는 사실을, 눈동자를 통해 이해해 주는 듯했다.

“가서 새로 알게 된 사람도 많고, 학교생활도 영어만 빼면 그럭저럭 할만해. 그래도 가끔 외로울 때가 있어. 타지 생활이라는 게 원래 그런가 봐.”

친구가 고개를 갸웃할 때마다 노란 머릿결이 같이 팔랑거렸다. 설이는 그것이 봄에 핀 민들레 꽃잎 같다고 생각했다. 자신만의 바람을 견디고, 자신만의 햇살을 받으며 피어난 길가의 민들레처럼 그 머릿결이 예쁘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짧게 잘린 자신의 머리카락이 부끄럽지는 않았다. 의외의 일이었다. 설이는 서서히 깨닫고 있었다. 자신과의 화해가 곧 세상과의 화해임을.

친구는 침대 난간 위로 팔을 뻗어 설이의 오른손을 붙잡아 주었다. 친구의 손은 따뜻했다. 어릴 때부터 알고 지냈지만 이렇게 오랫동안 손을 잡고 있었던 적은 없었다. 친구는 뻣뻣하게 굳은 설이의 손을 말없이 주무르고 있었다. 따뜻한 침묵이었다. 한 손을 잡힌 채로 더 시간을 보내고 싶었지만, 이내 기도에서 가래 끓는 소리가 나기 시작했다. 아까부터 목구멍에서 거슬리던 가래를 이제는 빼내야 할 것 같았다.


엄마불ㄹ러ㅈ


“어, 그래. 잠깐만 기다려.”

친구는 급하게 자리에서 일어나 안방 문을 두드렸다. 엄마는 서둘러 설이에게 다가왔다.

“왜 그래? 가래?”

밤낮없이 설이의 가래를 빼주어야 했던 엄마였다. 요즘 들어서는 그 빈도가 늘어 한 시간에 한 번씩은 석션이 필요했다. 설이가 부를 때마다 엄마는 항상 가래 때문인지를 먼저 확인했다. 자칫 기도가 막힐 수도 있는 문제였기 때문이었다.

엄마가 석션기를 집어 들자, 친구는 일부러 먼 곳을 바라보며 멀찍이 서 있었다.

엄마가 다시 안방으로 들어가자, 친구는 설이의 머리맡으로 다가왔다. 설이는 다시 눈알을 움직이기 시작했다.


부탁이ㅣ 있어.


“부탁? 뭔데 그래?”


피아노쳐줄래


화면을 보고 있던 친구가 안쓰러움과 미안함을 담아 다정하게 웃었다.

“말만 해. 듣고 싶은 거 있어?”


물의유희


“라벨의 물의 유희 말이지? 저 방에 있는 피아노로 치면 돼?”

설이는 두 눈을 천천히 깜빡였다.

친구는 피아노가 있는 방으로 걸어가 방문을 활짝 열어 두었다. 방 안에서 피아노 건반 뚜껑을 여는 소리가 들렸다. 이내 물방울 같은 음들이 솟아나기 시작했다.


작은 물결이 일렁인다. 햇빛이 반짝인다. 투명한 물방울이 튀어 오르고, 긴 호흡과 함께 깊은 잠영이 시작된다.

푸른 빛줄기, 바람처럼 흔들리는 물결. 흩어지는 물줄기와 선율을 따라 몸이 흐른다.

푸른 물살, 하얀 빛깔. 노란 태양과 청색으로 휘몰아치는 소용돌이.

깊은, 더 깊은 곳. 끝없는 빛깔과 묵직한 색감.


설이는 그동안 억눌러온 슬픔을 생각했다. 왜 누군가의 물속은 부질없는 하소연이 되고, 누군가의 물속은 음악이 되는 걸까. 오래도록 눌러두었던 슬픔이 마지못해 터져 나올 때, 그것은 강물이 되어 흐를 수 있을까.


마음속에는 바다 같은 슬픔이 있었다.


…19세기 후반 프랑스의 작곡가들은 음악에 색채감과 순간적인 감정을 담아내기 위해 노력했어요.


슬픔을 온전히 끌어안으며 깊은 물속으로 잠겼다. 기억은 치열했던 순간으로 되돌아갔다.

고등학교 2학년 때의 첫 실기시험은 불에 덴 듯 아찔한 기억으로 남아 있었다. 대학교 입시가 다가오는 만큼 단 한 치의 실수도 없이 남은 시간을 보내야 한다는 압박에 시달리던 시기였고, 밤잠을 줄여가며 연습했다. 하지만 심사위원들 앞에서 악보 없이 연주하던 도중, 열 손가락은 곡의 한 구간에 갇혀 버리고 말았다. 분명 어느 시점엔가 이 패시지를 벗어나 마지막 절정을 향해 달렸어야 했는데, 두 손은 이미 지나온 길로 몇 번이고 되돌아가고 있었다. 아득히 하얘지던 건반. 정신을 차렸을 때는 이미 그 자리에 멈춰 서고 만 뒤였다.


… 인상주의 음악은 전통적인 화성을 탈피하고, 모호한 분위기와 강렬한 색채감을 만들어냈어요.


가만히 앉아만 있어도 땀에 몸이 젖던 그 해 여름, 방학 내내 악을 쓰며 피아노를 연습하던 설이는 이따금 하염없이 악보를 들여다보곤 했다. 먼 과거에 지구 반대편의 머나먼 대륙에서 살았을 한 사람의 이야기. 강물처럼 하나가 되어 흐르는 이 유기적인 음표들은 어떤 삶을, 어떤 세상을 담고 있는 걸까. 설이는 궁금했다.


… 조성 중심의 구조에서 벗어나, 찰나의 상태와 빛, 색감을 담아내려 했던 거죠.


끝없는 연습을 반복하던 어느 날이었다. 몇 시간째 피아노를 연주하던 중에 눈에서 눈물이 한 방울 흘러내렸다. 그 순간 설이는 곡 전체를 열 손가락으로 움켜쥐는 법을 알게 되었다. 아슬아슬한 사다리를 한 칸씩 오르듯 한 마디씩 연주하던 때와는 달랐다. 하염없이 움켜쥐다가 끝내 심장으로 이해한 음악은 결코 흔들리는 법이 없었다.


아름다움이란 무엇인가. 인간의 짧은 호흡은 한 시대를 스쳐 갈 뿐이지만, 그 속에서 뜨겁게 떨리던 찰나의 공명은 결코 허상만은 아니었다.


변화해 온 선율과 깨져가던 화성과 무너져 내린 형식들.

그 불완전한 것들로 쌓아서 노래한, 지나가는 것들.

순간과 생애와 시대.

영원하지 않은 것들은 얼마나 찬란한가.


설이는 흐르는 음악과 함께 다시 마음으로 무대에 섰다.


차가운 무대, 쏟아지는 조명, 팽팽하게 흐르는 공기.

떨리는 걸음, 질주하는 심장.

숨을 가다듬고 하얀 건반 위에 두 손을 올려놓던 순간.

시작된 이상 멈춰서는 안 되는 시간의 예술.


무대는 스스로를 믿는 것이 허락된 유일한 공간이었다.

자신에게 주어진 것을, 읽어낸 감정과, 연습한 시간과, 쥐고 있는 모든 것을 쏟아내는 그 순간 스스로의 육체를.


무대는 자신이 가진 것을, 그 불완전한 것들을 온 힘을 다해 사랑해 보는 곳이다. 그 사랑이 곧 아름다움이라는 사실을 믿어 보는 곳이다. 관객은 단순히 연주를 들으러 오는 것이 아니다. 그들은 한 사람의 믿음을 보러 오는 것이다. 한 번의 호흡으로 심해를 가로질러 해저를 딛고 떠오르는 한 사람의 터질 듯한 가슴과 흔들림 없는 믿음을.


설이는 깨달았다. 자신은 단 한순간도 음악을 잃어버린 적이 없다는 사실을. 음악은 여전히 가슴속에 박혀 단단한 힘으로 빛나고 있다는 사실을.


연주자의 손은 움켜쥐는 법과 놓아주는 법을 알고 있다. 거칠게 쏟아내는 대신 단단히 움켜쥐는 법을, 지나간 것에 얽매는 대신 부드럽게 놓아주는 법을 알고 있다. 음악은 오직 시간의 흐름 속에서만 존재하기 때문이다.


설이는 알고 있었다. 이 도시가 가르쳐 주지 않은 것을 자신은 음악을 통해 배웠다는 사실을. 영원하지 않은 것과 불완전한 것을 사랑하는 법을 이미 연습해 왔다는 사실을. 삶이라는 무대에 선 자신에게는 아직 사랑할 힘이 남아 있다는 사실을.


마음속에 바다 같은 슬픔이 있었다. 그 깊은 슬픔을 온전히 끌어안을 때에야 비로소, 뜨겁게 사랑했던 것들을 건져 올릴 용기가 차올랐다. 그토록 증오했던 이 몸으로 얼마나 많은 것을 보고, 듣고, 만지며 사랑해 왔던가.


직접 일어나 가족들을 위해 남길 유품조차 정리할 수 없는 이 몸은, 곧 썩어 없어질 이 몸은,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 무엇보다도 아꼈고, 또 그 어떤 것보다도 익숙했던 이 몸은, 여전히 설이의 세상을 담고 있었다


견뎌온 세월만큼 질겨진 발뒤꿈치와,


선율을 모아주던 귓바퀴가.


쉼 없이 페달을 밟던 발목과,


유체로 이루어진 것마냥 매끄럽게 맞물리던 손목의 뼈들과,


힘 있게 펼쳐지던 손가락의 힘줄들이.


설이는 자신의 유품이 오래도록 누군가의 서랍장에 갇혀 있을 물건이 아니라, 곧 썩어 사라질, 이 몸이라는 사실이 싫지 않았다.




https://youtu.be/Z1QrFd7lNcU?si=HCUBd85G9EzjAix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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