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ouse of Hummingbird, 2018 / 김보라
은희에 집중하는 영화였다.
자주 나는 은희를 제외한 등장인물들이 화면 바깥으로 무심히 빠져나가는 것을 보았다. 은희를 제외한 등장인물에게 카메라는 굉장히 인색하다는 느낌도 받았다. 그만큼 은희에게, 특이 어떤 사건이 일어날 때마다 꼼꼼하게 보여주는 은희의 얼굴 표정. 그것을 관찰하는 영화라고 생각한다.
아리송하고 이해할 수 없다는 듯한 은희의 표정은 종종 나를 향해, 그러니까 스크린 밖의 관객에게 짓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 표정을 보며 생각하게 되는 것이다.
1994년 거의 은희의 나이였던 나는(성별은 다르지만) 저 상황에서 어떤 생각을 했을까? 어떤 표정을 지었을까?
당연히 생각나진 않는다. 그리고 훅 시간이 지나, 영화 속 영지(한문 선생님)의 나이가 돼버렸다.(아니면 조금 더 많을 수도.)
영지라는 인물이 우리들의 면죄부라고 말한다면 너무 가혹할까? 1994년에 중학생을 보내고 성장하여 이젠 어디 가서 절대 젊다고 말할 수 없는 나이가 된 나 같은 사람들의 면죄부. 가부장적이고 불합리하고 서울대에 몰빵 하는 1994년과 지금은 얼마나 다른가? 은희 같은 아이에게 나름 선생 노릇 선배노릇 하며 더 좋은 세상 만들어 보려고 노력했는데 잘 안돼더라, 미안하다 말하며 영화에서 슬쩍 빠져나갔다고 한다면 내가 너무 삐뚤어진 걸까? 마지막 장면, 영지의 내레이션으로 편지가 낭독될 때 어쩔 수 없이 울컥할 수밖에 없었던 나는 집에 돌아와 영화를 곱씹을수록 자꾸 그런 마을이 들었다. 면죄부.
은희의 등 뒤에서 시작하는 영화는 은희의 정면으로 끝난다. 2019년에 은희의 나이로 살고 있을 모든 분들에게 은근슬쩍 페이드 아웃되어 도망가는 것 같아서 미안하고 부끄러웠다. 영지의 존재가 면죄부로 끝나지 않기 위해 내가 지금 할 수 있는 일은 무엇일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