끝이 보인 자리에서 비로소 시작된 회복의 시간
내 인생에서 가장 길고 낯선 여정이 시작되었다.
3주 간격으로 여덟 번의 항암.
그리고 2025년 12월 24일,
마지막 항암을 끝으로
그 여정은 조용히 마침표를 찍었다.
끝났다는 말이 먼저일 줄 알았는데,
몸이 먼저 반응했다.
마지막 항암이어서였을까.
몸속에 쌓인 약 때문이었을까.
부작용은 이전보다 오래, 그리고 깊게 남아 있었다.
아침마다 얼굴은 퉁퉁 부어 있었고
눈을 뜨는 일조차 쉽지 않았다.
근육통이 심한 날에는
다리를 굽히는 간단한 동작마저 버거웠다.
그럼에도 신기하게
항암 일정은 한 번도 미뤄지지 않았다.
그 시간을 모두 지나온 나에게
그날은 꼭 말해주고 싶었다.
정말 잘 버텼다고.
항암을 받는 동안
왼쪽 쇄골 아래에는 작은 장치 하나가 함께 있었다.
케모포트였다.
혈관을 찾기 어려운 나에게
그 장치는 고마운 존재였지만,
가끔 느껴지는 이물감은
‘아직 끝나지 않았다’는 신호 같았다.
그래서 항암이 끝나자마자
가장 먼저 내려놓고 싶었던 것도
그 장치였다.
제거 과정은 생각보다 수월했고
상처는 본드로 봉합되었다.
별도의 소독 없이
시간이 지나면 자연스럽게 떨어진다고 했다.
몸에서 무언가 하나가 사라졌다는 사실만으로도
마음은 조금 가벼워졌다.
수술 후 여섯 달 만에 찾은 아산병원은
여전히 분주했다.
수술 부위는 약간 부어 있었고
항암 중 흔히 나타날 수 있는 반응이라는 설명을 들었다.
그제야 마음을 조금 내려놓을 수 있었다.
그리고
이제부터 시작될 호르몬 치료에 대한 이야기를 들었다.
두 가지 선택지가 있었다.
어느 쪽이든
긴 시간 함께 가야 할 치료였다.
조금 더 효과가 좋다는 설명과
남편과의 긴 상의 끝에
나는 한 가지를 선택했다.
완벽한 선택이라기보다는
그 시점의 나에게 가장 납득이 되는 선택이었다.
첫 주사를 맞던 날,
‘아프다’는 이야기를 너무 많이 들어서
오히려 마음을 단단히 먹었다.
막상 맞고 나서는
이상하게도 이런 생각이 들었다.
이 정도면 괜찮다.
아픔은 분명 있었지만
순간이었고,
나는 또 한 번
그 시간을 지나왔다.
약을 복용한 지 열흘쯤 지났을 때까지
몸은 여전히 무거웠다.
걷는 것조차 힘들 만큼 붓던 날도 있었지만
어느 순간부터
아침 스트레칭을 다시 시작할 수 있었고
저녁에는 짧은 산책도 가능해졌다.
회복은 늘 이렇게 온다.
눈에 띄지 않게,
하지만 분명히.
재활의학과에서는
“꾸준히 스트레칭하세요”라는 말을 들었고,
성형외과에서는
“정말 자연스럽게 잘 되었다”는 말을 들었다.
그 말들이
나를 다시 일상 쪽으로 조금씩 밀어주었다.
다음에는 방사선 치료가 기다리고 있다.
또 하나의 고개다.
하지만 여기까지 온 내가
못 해낼 이유는 없다고
이제는 조금 믿게 되었다.
그동안
말없이 마음을 보태준 사람들,
기도와 응원을 보내준 모든 분들께
진심으로 감사하다.
그리고
이 글을 읽고 있는 누군가가
나와 같은 길 위에 있다면
이 말을 전하고 싶다.
우리는 이미 충분히 잘하고 있다고.
오늘을 살아낸 것만으로도
이미 대단하다고.
오늘도,
끝까지 씩씩하게.
그리고 내일도,
오늘의 나보다
조금 더 단단하게.
이 기록이
누군가에게는
오늘을 버티는 작은 이유가 되기를 바라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