타이어 경고등 뜨면 아예 보험사를 부르세요, 제발.
그날은 Katy 집에서 칠리 스프(Chili Soup)를 만들기로 한 날이었다.
"칠리는 김치처럼 각 집마다 특별한 레시피가 있어"라는 케이티의 말에 한껏 들떠있던 나는, 드디어 '진짜 미국 가정식'의 비밀을 배울 수 있다는 기대감에 부풀어 있었다.
Katy 할머니가 당신의 할머니에게서 물려받았다는 레시피로 만든 칠리는 놀라울 정도로 깊은 맛이 났다. 콩과 토마토, 그리고 각종 향신료가 어우러진 그 맛은 한국의 된장찌개처럼 구수하면서도 이국적이었다.
남편에게도 이 특별한 점심을 맛보여주고 싶어 한 그릇을 정성스럽게 담았다. 로스쿨 도서관에서 Bar 시험 준비에 여념이 없을 남편을 위한 깜짝 배달이었다.
"엘리야, 아빠한테 점심 갖다드리러 갈까?"
여름방학이라 Katy 할머니 집에 같이 와있던 엘리가 신나서 뛰어나왔다. Wolf와 놀다가 따라나선 딸아이를 카시트에 태우고 시동을 켰다. 그런데 대시보드에 처음 보는 경고등이 켜졌다.
기계치인 나는 일단 시동을 껐다가 다시 켜봤다. 한국에서 흔히 하던 '전원 껐다 켜기' 신공이 미국 차에도 통할 거라 믿었던 것이다.
"엄마, 왜 안 가?"
"어... 잠깐만. 차가 좀 이상한가 봐."
경고등은 여전했지만, 일단 출발하기로 했다. 남편이 기다리고 있을 테니까. 하지만 핸들을 잡는 순간, 뭔가 이상한 느낌이 들었다. 차체가 오른쪽으로 기우는 듯한...
Street parking lot을 빠져나와 도로에 진입하는 순간, 확실히 알았다. 이건 정상이 아니다. 차가 오른쪽으로 확연히 기울고 있었고, 핸들은 점점 무거워졌다. 그리고 들려오기 시작한 소리.
'드르륵... 드르륵...'
타이어가 바닥에 끌리는 소리였다.
"엘리야, 조금만 참아. 엄마가... 엄마가 금방 해결할게."
떨리는 목소리를 감추려 애쓰며 주변을 살폈다. 구글맵에 'tire shop near me'를 급하게 검색했다. 기적처럼 0.2마일(약 320미터) 거리에 타이어 샵이 있었다. 하지만 그 짧은 거리가 그날따라 왜 그렇게 멀게 느껴졌는지.
시속 10마일도 안 되는 속도로 비상등을 켜고 천천히 움직였다. 뒤에서 빵빵거리는 경적 소리, 시선들이 백미러에 가득했다. 평소 같으면 미안해서 어쩔 줄 몰라했을 텐데, 그때는 오직 한 가지 생각뿐이었다.
'제발... 조금만 더 버텨줘...'
"드르르르륵!!!"
타이어 샵에 들어서는 순간, 정비 중이던 모든 사람의 시선이 우리 차로 집중됐다. 완전히 바람 빠진 타이어가 림(rim)에 끌려 들어오는 소리는 정비소 전체에 울려 퍼졌다.
주차 공간까지 가는 그 짧은 거리가 영원처럼 느껴졌다. 차에서 내리자 다리가 후들거려 제대로 설 수가 없었다.
"Mommy, why is everyone looking at us?"
엘리의 천진난만한 질문에 억지로 웃으며 답했다.
"우리 차가 좀 아파서 병원에 왔어."
정비사가 다가와 타이어를 확인하더니 휘파람을 불었다.
"Wow, you're lucky. This could've been really dangerous."
타이어 옆면이 완전히 찢어져 있었다. 어떻게 이런 일이? 도로 위의 못이나 날카로운 물체를 밟았을 가능성이 크다고 했다. 하지만 내가 보기엔 분명 옆에서 어떤 날카로운게 스치고 지나간 것 처럼 보였다. 마치... 청소차량 같은 것 말이다.
카운터에서 새 타이어를 고르는 동안, 손이 계속 떨렸다.
"한 개만 바꿀까요, 아니면 네 개 다?"
"보험 처리 되나요?"
"보험 처리가 가능하기는 한데... 일단 견적부터 줘보세요."
미국에서 처음 겪는 일이라 뭘 어떻게 해야 할지 하나도 모르겠더라. 다행히 정비소 직원이 친절하게 하나하나 설명해줬다. 일단 안전을 위해 같은 축의 타이어 두 개를 교체하기로 했다.
남편에게 전화를 걸었다.
"여보, 나 타이어 터졌어. 점심은 좀 늦을 것 같아."
"뭐?! 괜찮아? 엘리는?"
"응, 괜찮아. 지금 수리점이야. 한 시간쯤 걸릴 듯."
전화를 끊고 나니 그제야 실감이 났다. 정말 큰일 날 뻔했구나.
대기실에서 엘리는 아무것도 모른 채 이리저리 돌아다니며 구경했다. 벽에 걸린 타이어 포스터를 보며 "Mommy, look! Big wheels!"라고 외치는 딸을 보며, 이 아이와 함께 있을 때 사고가 커지지 않은 게 얼마나 다행인지 새삼 느꼈다.
오후 3시가 다 되어서야 정비를 마치고 UC Davis로 향했다. 새 타이어로 교체했지만 여전히 핸들을 잡은 손에는 땀이 났다. 평소 15분이면 갈 거리를 30분이 넘게 걸려 도착했다.
로스쿨 도서관 앞에서 만난 남편은 우리를 보자마자 안아줬다.
"진짜 놀랐어. 괜찮아?"
"응... 근데 칠리는 다 식었어."
"그게 중요해? 너랑 엘리가 안전한 게 중요하지."
식은 칠리 스프를 데워 먹으며, 우리는 한참을 웃었다. 아니, 웃을 수밖에 없었다. 미국 생활 1년 반 만에 경험하는 것들이 하나같이 '다이나믹'하다는 표현으로밖에 설명이 안 되니까.
그날 이후로 나는 몇 가지를 배웠다.
< 미국에서 타이어 펑크 났을 때 대처법 >
- 즉시 안전한 곳으로 이동: 비상등을 켜고 갓길이나 주차장으로
- AAA 가입 필수: 미국의 '긴급출동 서비스', 연회비 $60~120
- 타이어 보험: 렌트카는 보통 커버되지만, 개인 차는 별도 가입 필요
- 스페어 타이어 위치 확인: 대부분 트렁크 바닥에 있음 (한국에서는 스페어 타이어가 없을 수 있음)
- 가까운 타이어 샵 저장: 구글맵에 미리 저장해두기
- 정기 점검: 매달 한 번은 타이어 공기압 체크 (주유소에서 무료)
2025년, 한국.
"엄마, 한국 차는 안 아프지?"
그래, 한국 차는 안 아프단다. 아마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