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4. 레고랜드에서 배운 관계의 법칙 (3)

그날, 우린 병풍이었다

by 유지니안

LA에서 남쪽으로 2시간 더. 캘리포니아 최남단의 대도시 샌디에고는 LA와는 또 다른 분위기였다. 멕시코 국경과 가까워서인지 좀 더 여유롭고 따뜻했다.

엘리를 위해 선택한 Safari Park와 San Diego Zoo, 그리고 Sea World. 동물들을 좋아하는 엘리는 신이 났다. Safari Park의 열기구에서 내려다본 광활한 초원, 곤돌라를 타고 본 동물원의 전경. 잠시나마 돈 걱정을 잊을 수 있었다.

범고래 쇼를 보며 복잡한 마음이 들었다. 5톤이 넘는 거대한 생명체가 좁은 수조에서 매일 같은 묘기를 반복한다니. 하지만 물기둥을 맞으며 깔깔대는 엘리를 보니, 그저 이 순간을 즐기기로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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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an Diego Zoo의 곤돌라 전경 / Sea World의 Orca Show


샌디에고를 떠나 북쪽으로 한 시간. 칼스배드의 레고랜드가 우리의 마지막 목적지였다. 사실 이곳은 특별한 의미가 있었다. 1번 국도 여행을 계획할 때, 데이비스에서 엘리의 절친 페이지와 여기서 만나기로 약속했었다. 페이지 엄마 제시의 친정이 LA에 있어, 5월에는 LA에서 머문다고 했었다.

"엘리!" "페이지!"

레고랜드에서 만난 두 아이는 서로를 껴안으며 반가워했다. 데이비스에서 매일 놀이터에서 만나던 절친이 캘리포니아 남쪽 끝에서 다시 만난 것이다. 제시가 우리에게 제안했다.

"같이 Police and Fire Academy 타지 않을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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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명이 한 팀이 되어 펌프질을 해야 소방차가 움직이는 놀이기구. 우연히 엘리, 페이지, 제시, 그리고 남편이 한 팀이 되었다. 신호가 떨어지자 남편이 열심히 펌프질을 시작했다. 그런데 이상했다. 제시는 펌프에서 손을 떼고 딸과 사진 찍기에 바빴다.

'저게 맞나?'

속으로 화가 치밀어 올랐다. 하지만 아이들 앞이라 티를 낼 수 없었다. 남편 혼자 진땀을 흘리며 펌프질을 했지만 역부족이었다. 엘리마저 작은 손으로 펌프를 잡고 도우려 했다.

"아빠 힘내!"

그 모습에 가슴이 찡했다. 우리 가족은 항상 이렇게 서로를 도우며 살아왔는데.

결국 꼴찌였다. 그리고 놀이기구에서 내리자마자 페이지 가족은 "우리는 따로 놀게요"라며 사라졌다.

"잠깐만..."

말을 꺼내려 했지만 이미 저 멀리 가고 있었다. 데이비스 친구들이 차로 8시간 거리에 있는 레고랜드에서 만났는데, 겨우 놀이기구 하나 타고 헤어진다니? 그동안 엘리는 "페이지 언제 만나?"를 수십 번 물었었다.

'우리를 뭐로 생각하는 거지? 배경? 소품? 아니면 "봐라, 나는 인종차별 안 한다"를 보여주기 위한 동양인 트로피?'

"엄마, 페이지 어디 갔어?"

엘리의 물음에 억지로 미소를 지었다.

"페이지는 오빠랑 놀아야 해. 우리끼리 더 재밌게 놀자!"

하지만 내 마음속에는 쓴맛이 남았다. 데이비스로 돌아가면 이 관계를 어떻게 해야 할지... 여행은 즐거워야 하는데, 왜 이렇게 복잡한 감정들만 쌓여가는 걸까.


씁쓸한 마음을 뒤로하고 엘리와 함께 레고랜드를 즐겼다. 회전목마를 10번이나 탔고, Junior Driving School에서는 면허증도 받았다. 적어도 엘리는 행복했다.


돌아가는 길, LA 애너하임에서 1박. 디즈니랜드는 못 가도 폭죽은 보고 싶었다. 하지만 그날따라 레이저쇼만 했다. 호텔 옥상에서 1시간을 기다린 게 무색했다.

그날 밤, 남편의 한숨소리에 잠에서 깼다.

"한국 집이 아직도 안 팔려. 부동산 시장이 완전히 얼어붙었어."

데이비스로 돌아오는 길은 왔던 길보다 훨씬 무거웠다. 일주일간의 여행 경비를 계산해보니 예상의 두 배를 썼다.

"우리 너무 많이 쓴 것 같아."

"그래도... 필요한 여행이었어."

395달러짜리 숙소에서 덜덜 떨었지만, 159달러를 멀미에 날렸지만, 레스토랑에서 차별받았지만, 그리고 페이지네한테 상처받았지만... 하지만 동시에 17마일 드라이브의 그 아름다운 바다를 봤고, 빅서의 상쾌한 아침 공기를 마셨고, 엘리는 레고랜드에서 그렇게 행복해했다. 무엇보다 우리 가족이 함께한 추억이 남았다.




드디어 데이비스의 아파트 주차장. 평화롭고 고요한 우리 동네.

하지만 우리를 기다리는 건 여전히 공용 세탁실이었다.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은 계속되고, 환율은 1,440원까지 올랐다. 페이지와의 관계에도 균열이 생겼다. 한국의 집은 팔리지 않는다.

꿈같던 여행은 끝났지만, 우리의 진짜 이야기는 이제부터 시작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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