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9 / 19 금)
그 많은 사진들 중에서 내가 고른 이 한 장의 사진을 올리며 잔디바르의 추억에 잠긴다. 그때의 아름다운 광경을 잘 그려낼 수 있을까!! 아마 그것은 불가능한 일일 것이다. 잔지바르 해변은 하나님이 주신 특별한 선물이라는 생각이 든다. 눈앞에 펼쳐진 이 모습, 말로 형용할 수 없는 감탄밖에~~!
잔디바르는 제주도보다 약 1.4배 정도 규모가 크고, 인도양의 쪽빛 바다와 끝없이 펼쳐지는 하얀 모래사장으로 유명하다. 그런데 지역 빈부격차가 엄청 심한 것 같다. 이곳으로 오는 동안, 거리의 가난한 사람들과, 허름한 집들을 무수히 지나왔다. 왜 그렇게 생각했는지 모르지만 나는 잔디바르섬 자체가 온통 아름다울 거라고 생각했었다. 그런 나의 막연했던 상상은 확실히 깨졌다. 어느 경계에서부터 신세계가 펼쳐지듯 나는 다른 세상에 던져져 있었다.
이 멋진 곳이 19세기 중반까지 노예무역항이었다고요~!
노예무역의 중심에 있는 도시가 잔디바르 스톤타운이다. 잔지바르의 남서쪽에 위치한 중요한 항구도시인 스톤타운은 잔지바르의 수도였는데 옛날에 돌로 지어진 건물들이 많아서 이렇게 이름이 불렸다. 많은 동아프리카 노예들이 이곳에서 인도, 아라비아, 유럽, 아메리카 대륙으로 팔려나갔다.
스톤타운은 좁고 구불구불한 골목길이 많고 그 길들 사이로 오래된 궁전, 시장, 모스크, 예전 슬레이브 마켓( Slave Market) 이 있어서 역사적으로 굉장히 중요한 장소다. 지금은 <슬레이브 체험 박물관>으로 변했는데 그곳에는 당시 노예들이 어떻게 거래되었는지, 그리고 그들의 끔찍한 삶에 대한 기록들이 있다. 당시 노예들이 겪었던 고통과 잔임 함을 기억하며 노예무역이 종식된 의미를 기리기 위한 노예 기념비도 세워져 있다. 스톤타운 근처의 prison lsland는 노예들이 갇혔던 섬인데 작은 이 섬은 자연경관이 아름다워 외국인들에게 인기가 좋다고 한다. 현재 스톤타운은 유네스코 세계유산에 등재되어 있다.
아쉽게도 일행들의 일정 때문에 스톤타운 거리를 돌아보지는 못했다. 한식당 <집밥>이 스톤타운에 있어 잠깐 들렀을 뿐이다. 이 글을 쓰면서 더 생생한 이야기를 전할 수 없음이 아쉽다. 그래도 스톤타운은 잔디바르에서 중요한 도시이기에 자료를 찾아보고 정리해 보았다. 훗날 방문할 누군가에게 도움이 될 수 있기를 바라며...
자연경관이 아름다운 능귀해변
우리가 묵었던 숙소 골든 튤립 리조트 호텔에서 가장 가까운 해변이 능귀해변이다. 잔디바르의 북쪽에 위치한 능귀해변은 리조트들이 많다. 인도양의 에메랄드빛 바다 위를 미끄러지듯이 움직이는 작은 배들, 하늘과 바다와 하얀 모래사장이 "여기가 천국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 정도로 놀랍다. 신발을 벗어 들고 모래사장을 걷다 보니 택시 보트라고 적힌 배가 정박해 있다. 먼 데서 일렁이는 파도는 바람 타고 출렁이겠지만 가까이서 보는 인도양은 잔잔한 해수면이다. 깊고도 푸른 인도양을 따라 오늘의 젊음도 흐르고...^^
모래사장 한 편에서는 젊은이들이 서커스를 연상시키는 퍼포먼스를 하고 있다. 날렵한 몸짓으로 훨훨 날아올라 삼각 구조를 만든다. 푸른 바닷물을 머금은 새들이 훨훨 날아오르는 것 같다.
켄다락 레스토랑 해변
점심 식사를 하기 위해 켄다락 레스토랑을 찾았다. 이곳은 능귀해변의 서쪽에 위치해 있는 리조트로 수영장과 바다가 이어지고 있는 멋진 관광지다. 우리가 도착했을 때는 많은 관광객들이 아프리카 특유의 파라솔 아래서 바다를 벗 삼아 햇볕을 쬐고 있었다. 둥근 형태로 만들어놓은 이벤트 홀에는 파티를 준비하고 있는지 분주하게 움직인다. 켄다락 레스토랑은 해양 스포츠와 파티가 주된 즐길 거리라고 했다. 확실히 이곳은 에너지가 넘친다.
파도가 크고 해수면의 변화가 심한 능귀해변이 그 자체로 위대한 예술이라고 한다면, 켄다락 레스토랑 해변은 잔잔한 해수면을 즐길 수 있는 최대의 피서지 같은 느낌이었다.
여기서 며칠 푹 쉬었다 가고 싶은 생각이 들었다. 마치, 지구에서 뚝 떨어져 내린 듯한 이들만의 세계는 너무 한가롭고 자연스럽고 부족함이 없어 보였다. 레스토랑에서 음식을 주문했다. 오늘 점심은 아드님이 주신 용돈이라며 정광덕 고문이 쏘셨다. 그런데 맛있는 것을 놓칠세라 이것저것 주문하다 보니 생각보다 더 많은 결제를 하게 되었다. 그래도 허허 웃으시는 고문님!~~~ 감사합니다^^
다시, 한식당 <집밥>으로
식당 가장 안쪽에 커다란 둥근 테이블이 있다. 우리는 어제 점심 식사를 하면서 오늘 저녁을 예약해 놓았는데, 덕분에 싱싱한 회를 맛볼 수 있었다. 씹을수록 고소하면서도 살이 쫄깃했다. 회와, 부침개, 고구마 순 무침, 김치, 된장찌개 등으로 한국의 맛을 흠뻑 느꼈다.
식사를 마치고 둘러앉아 팀원들은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눴다. 선교사님 두 분은 손님이 오셔서 바쁜 관계로 함께 교제할 시간이 부족했다. 자연스럽게 동역회 이야기가 나왔다. 백만 원으로 선교 펀드를 시작했었던 것과 책자 발간, 그리고 선교 스토리북을 통해 세계선교사님들 소식을 받고 선교지에 관심을 갖게 되었다는 것, 힐링캠프를 실시했던 것과 올해부터 시작된 일본, 라오스, 아프리카 선교지 방문에 관한 이야기 등이었다.
호프 스쿨에 대한 못다 한 이야기와 선교사님의 마인드를 들려주세요~!
윤상범, 오경신 선교사가 두 아이와 함께 들어왔다. 이제야 한숨을 돌리는 모양이다. 호프스쿨을 현지인에게 이양하게 된 이야기를 전해준다. 현지인인 아나 교장에게 리더십을 이양하고 훈련시키는 과정이 10년 걸렸다고 한다. 그녀를 18세 때 만나게 되었으며 교육대학까지 시켰고, 컴퓨터도 가르쳤다. 그리고 3년 전 초등학교를 시작하면서 그녀에게 리더십을 이양했다는 것이다. 지금은 호프 스쿨에 들어오고 싶어 하는 학부모들이 많지만 초기에는 너무 황당한 일도 많았다. 비가 오면 아이들이 학교에 안 오더라는 것이다. 그때마다 집까지 가서 다 데려왔단다.
선교사의 마인드에 대해 오경신 선교사는 이렇게 말한다.
"죄짓기 전에, 더 주자"
나는 이 말의 의미를 알 것 같았다.
이런 마인드로 그들에게 베풀었더니 재정적으로 정직하게 하더라는 것이다.
잔디바르에 오신 이유와 기도제목 좀 말씀해 주세요~!
한국에서 교도소 소년원 사역을 했던 윤상범 선교사와 오경신 선교사는 잔지바르에서 만나 결혼을 했다. 두 분 모두 신학을 했지만 지금은 학교 사역을 하고 있는 것이다. 이곳에 오게 된 이유를 들었다.
"파송된 선교사님들이 파송교회에 말씀드리기 어려운 것은 무엇인지 그리고 사역의 어려운 점은 무엇인지, 함께 들어주고 싶었습니다."
"올해 안에 유치원 재건축이 마무리되었으면 좋겠어요. 집밥이 잘 되어서 필요한 재정이 채워지고. 집밥을 통해 믿음의 바운더리가 넓혀지기를 기도합니다. 현지에 교회 한개를 세웠는데, 바람이 있다면 앞으로 신학대학도 하기 원하며 강사를 초청해서 목회자 세미나를 하고 싶어요. 목회자를 키우기를 원합니다. 잔디바르 90프로 이상이 무슬림이다 보니 교회가 모두 몇 개가 되는지 통계조차 없습니다."
이렇게 아프리카에 있다 보니까 GPTI 소속감을 못 느꼈는데
여기까지 와 주셔서 너무 감사합니다.
이렇게 기도했어요~!
어린 자녀들과 함께 사역하고 있는 이들 부부에게 집밥이 아름다운 공동체가 되어 이 가정을 통해 하나님 나라가 세워지기를, 그리고 좋은 동역자를 보내주시기를. 호프 스쿨뿐만 아니라 바운더리가 넓어지기를, 그리고 케냐에서 공부하고 있는 수지가 하나님의 보호 아래 학업을 잘 감당할 수 있기를, 함께 기도했다. 네 명의 자녀 수지, 수호, 지아, 수오가 이들 부부의 든든한 동역자처럼 느껴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