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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시인의 숲 Feb 09. 2024

르완다에서 부는 바람 10화

하나님의 섭리가 이곳에서도 이루어졌다.

우리가 계획한 것은 아무것도 없었다. 돌아보니, 그분의 계획 속에 우리가 서 있었다.  



우리가 르완다라는 적도 부근의 땅에 온 것도, 정착을 위해 집을 구해야 하는 모든 과정들이 돌아보니 꿈만 같다. "모든 일은 내가 알아서 할 테니 너는 어서 떠나라!" 하는 음성을 다시 듣는 듯했다. 길이 보이지 않을 것 같았는데도 희미하게나마 희망의 끈을 붙잡았을 때, 그것은 기도가 되었고 기도의 힘은 믿음의 고백이 되었다. 


정작 집을 구하기 위해 움직인 것은 한 일주일 정도 되었을까.  교육이 끝나고 남편이 NIRDA에 출근을 하게 되면서 마음은 더 바빠졌다. 그 사이에 짬짬이 정착할 집을 구해야 한다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었다. 물론 코이카에서 르완다 출발 전부터 소개해 준 집이 두어 곳 있긴 했지만 눈으로 보지도 않고 덥석 계약할 수는 없는 일이었다.  


집을 구하는 방법은 직접 발품을 파는 것과 지인이나 중개소를 통해 집을 구하는 것이다. 먼저 와서 활동하고 있는 봉사자들 이야기를 들어보니 집 구하는 문제가 가장 힘들었던 부분이라고 다들 입을 모은다. 이동차량도 마땅찮았고 중개인을 통해 집을 얻는 방법은 더더군다나 초행인 우리들에게는 힘든 것이었다. 운 좋게 한국 사람들이 거주하다가 고국으로 돌아가게 되는 그런 집을 찾는 건 대단한 행운이라 했다. 


살아가면서 우리는 뜻밖의 사람과 만남을 갖게 된다. 누구보다 나를 더 잘 아시는 하나님! 그분의 섭리가 있으면  낯선 땅을 디디더라도 염려할 게 없다.  


르완다에 오기 전부터  출석하던 교회 집사님을 통해 르완다에서 치과의사로 사역하시는 토마스 선교사님 부부를 소개받았다. 우리가 집을 구해야 할 당시 토마스 선교사님은 아프리카 선교사역에 필요한 기금 모금과, 장비 구입을 위해 미국에서 체류 중이었다. 그래서 르완다 정착에 손수 도움을 주지 못해 아쉬워하면서 현재 사역하고 있는 His Hands On Africa(NGO) 소속 치과의사인, 한국인 장경민 선교사님을 소개해 주었다. 이렇게 만난 사랑 한인교회 장경민 선교사님을 통해 우리 일행은 르완다를 가까이에서 있었고 가장 어려웠던 시기에 많은 도움을 받았다. 


한 날, 예배가 끝나고 우리 일행을 태우고 키갈리 투어에 나섰다. 처음으로 키갈리 여러 곳을 돌아본 날이었다. 집 형태를 보면 선택이 더 쉬울 거라면서 먼저 본인이 살고 있는 아파트를 보여 주었다. 한국의 대단지 아파트같이 많은 가구들이 모여 사는 곳이었는데 낯설지 않아 좋았다. 처음에 우리는 아파트가 안전할 거라 생각하며 이곳도 고려해 보았는데 남편 직장까지의 거리가 너무 멀었다. 그곳에서 직장까지 출퇴근을 위해 승용차와 운전기사를 고용하는 방법도 고려했는데 400불이라는 돈을 내면서까지 그럴 필요는 없을 거라는 결론에 도달했다. 


출국 전에 코이카에서 미리 메일로 보내 주었던 집은 남편 직장과 가까운 곳이었는데 우리가 방문했을 때는 빈 집이 없다는 얘기를 들었다. 1월 말에 집이 비는 게 하나 있는데 그것도 이미 들어올 사람이 정해져 있다는 것이다. 결국 아무 결정도 없이 숙소에 돌아온 날, 나는 나 때문에 집을 구하는 선택의 폭이 좁아진 것 같아서 함께 온 것을 잠시 후회했다. 아무래도 집에 있는 시간이 많은 내게 더 적합한 집을 골라야 했기 때문이다. 갑자기 마음이 가라앉는 것 같았다. 


무슨 일이든 우리의 의지대로 되는 것이 아님을 또다시 고백할 일이 생겼으니 바로 이런 것이 아닐까. 


그런데  남편이 존 루이스에게 갑자기 전화를 한 건 분명 하나님의 뜻이었던 것 같다. 우리는 이를 놓고 매일 기도를 하던 참이었고 무슨 생각인지 남편은 존 루이스에게 전화를 서둘렀던 것이다. 집이 없다고 했지만 혹시 다시 한번 집주인과 연락을 넣어볼 것을 요청했다. 존 루이스에게 전화가 온 것은 그로부터 3일 후였다. 우리는 놀라움을 금치 못했다. 갑자기 일정이 변경되어 빈 집 하나가 생겼고 우리가 이사 가려던 18일, 그 날짜에 입주가 가능하다는 것이었다. 서둘러서 주인을 만나보란다. 하나님은 어떻게 한 치의 오차도 없이 날짜까지 정확하게 짚어주실까. 


코이카 봉사자들의 안전을 담당하는 존 루이스와 한국인 코디네이터와 함께 소개해 준 아파트를 방문했다. 레바논 남자가 거주하고 있었는데 우리는 잠시 기다렸다가 집을 둘러보았다. 사람이 거주하고 있어서 자세히 보지는 못했지만 한눈에 다 들어오는 집 안이 오히려 내게는 편하게 다가왔다. 무엇보다 마당의 정원이 아름다워서 외롭지 않을 거라는 생각을 먼저 했다. 서울의 빌라 같은 곳인데 르완다에서는 아파트라고 불렀다. 마당을 지나오면서 나는 남편에게 이만하면 괜찮다고 사인을 보냈다. 남편도 고개를 끄덕였고, 우리는 바로 이 집을 계약하기로 했다. 코디는 다른 집도 있으니 더 볼 수도 있다고 배려했는데 나는 마치, 이 집이 우리를 위해 남겨진 것 같은 느낌이 들었다. 그리고 분명 하나님이 정해놓으신 집이라는 확신이 들었다. 


결국, 우리는 하루 만에 일을 끝냈다. 오전에 집을 보고 직장 일을 다 마친 남편이 오후에 계약을 했다. 주인은 체격이 좋고 맘씨가 좋아 보이는 흑인이다. 주인은 계약서를 쓴 후, 7킬로 떨어진 임시 숙소까지 남편을 차로 데려다줬다. 설마, 여기까지 데려다 줄 줄은 몰랐노라고 얘기하는 남편은 주인이 아주 젠틀하다는 말까지 한다. 주인과 차를 함께 타고 오면서 우리가 제노사이드추모관을 방문해서 화환과 꽃을 헌화했다는 얘기를 하자 주인이 놀라더라는 얘기도 했다. 또한 르완다 총선에 관심을 표명하자 폴 카가메 대통령이 국민들에게 90프로가 넘는 지지를 받고 있다면서 이미 당선된 거나 마찬가지라도 했단다. 


나는 르완다의 정치에 대해서 잘 알지는 못한다. 다만 오래 집권하고 있는 대통령이며 올해 4선에 도전한다는 것, 30년 전 내부의 어려움을 제압하고 지금의 르완다를 있게 한 장본인이라는 것, 그 때문에 아프리카 중에서 가장 발전하고 있는 나라라는 것 정도이다. 일단, 겉으로 보기에는 평화로운 나라다. 치안은 안전하고 거리는 깨끗해서 아프리카에서 이만한 나라가 있을까 싶다. 주인이 내게 전해준 말도 그랬다. 저녁에 나가서 산책해도 아무 걱정 없어요. No Problem!!!



집의 형태와 정원


이곳은 외국인들이 많이 거주하는 곳이라고 했다. 특이한 것은 집마다 커다란 대문이 있고 대문을 지키는 사람이 따로 있다는 것이다. 피델리라는 젊은 남자는 이 집의 집사인데 집 안 곳곳의 어려운 문제들을 척척 해결한다. 아침 일찍이 자동차 세척을 하고 나면  빗자루로 마당을 쓴다. 아파트의 아침이 피델리가 쓸고 있는 빗자루 소리로 시작된다. 하루에 몇 번을 만나도 웃으며 인사하는 젊음이. 비록 그가 거처할 곳은 대문 한편 아주 좁은 공간이지만 반복되는 듯한 자신의 일에 최선을 다한다. 



우리가 계획한 것은 정말 아무것도 없었다. 


다만 그분의 계획 속에 있었다는 것은 사실이었다. 하루하루 르완다의 아침을 맞이하면서 오늘도 새로운 힘을 낸다. 밤새 사그라들었다가 아침이면 활짝 피어나는 분홍색 꽃은 나무를 타고 올라 꼭대기에까지 아름다움을 펼쳐 놓았다. 하루에도 몇 번씩이나 변덕을 부리는 날씨지만 밖에 행거를 갖다 놓고 빨래가 말라가는 모습을 바라본다. 참 오랜만에 마당을 밟는다. 언젠가 꿈꾸었던 집의 풍경 한 자락이 놀랍게도 지금 이곳으로 소환되어 있다. 놀라우신 하나님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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