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택
인생의 본질은 처음부터 주어져 있는 것이 아니라, 실존을 통해 완성해가는 것이다. - 장 폴 사르트르
아침에 일어나 요가를 한다. 요가를 하는 게 싫을 때가 있다. 그 때는 선택을 한다. ‘요가를 잘하자!’
내가 선택을 하고나면 나는 정말로 요가를 잘하게 된다. 한 동작 하나하나에 호흡이 함께 하고 마음이 함께 한다.
나는 서서히 사라져간다. 비로소 삼라만상의 일원이 된다. 인간은 선택할 때 진정한 자신이 된다.
그럼 ‘오늘 한강에 놀러 가자.’하고 선택을 했는데, 한강에서 느닷없이 괴물이 출현했다면 어떻게 해야 하나?
그때도 역시 선택을 해야 한다. ‘최선을 다하자!’ 봉준호 감독의 영화 ‘괴물’에서 미군이 한강에 무단 방류한 독극물로 인해서 어떤 생명체가 괴물로 변한다.
한강에서 편의점을 운영하는 주인공 ‘강두’는 백주대낮에 갑자기 출몰한 괴물로 인해서 중학생 딸을 잃게 된다.
강두가 “괴물이 딸을 납치해 갔다!”고 소리쳐도 아무도 믿지 않는다. 경찰도 의사도 강두의 말을 믿지 않는다.
그는 총을 들고 딸을 구하기로 한다. 그는 그 위급한 순간에도 자신의 삶을 선택했기에 ‘영웅’이 된다.
영화는 우리에게 ‘선택하는 삶을 살라’고 말하고 있다. ‘한강에 무슨 괴물이 나타나?’ 이런 안이한 생각에서 벗어나라고 다그치고 있는 것이다.
한 치 앞을 모르는 게 인생이다. 그런데 우리는 안락함에 빠지기 쉽다. 현대사회가 안전해 보이지만 실상은 항상 비상사태다.
핵은 인류를 한순간에 종말을 고하게 할 수 있고, 교통사고 같은 사고로 하루에 죽는 사람이 얼마나 많은가?
기후 위기는 서서히 인간을 죽음으로 몰아가고 있다. 코로나 19보다 훨씬 센 바이러스가 언제 출몰할지 모른다.
괴물은 일상을 깨는 존재다. 우리가 안전하다고 믿어버리는 허구를 한순간에 깨는 죽비 같은 존재다.
우리는 괴물을 온 정성을 다해 영접해야 한다. 괴물은 흉측한 얼굴로 나타난 천사인 것이다.
프랑스의 실존주의 철학자 사르트르는 말한다. “인생의 본질은 실존을 통해 완성해가는 것이다.”
인생은 본질적으로 정해진 것은 아무것도 없고, 오로지 선택해가는 삶만 있다는 것이다.
선택해가다 괴물을 만나면 큰 깨달음을 얻어야 한다. 괴물을 피하려고 하면, 그의 인생은 지리멸렬하게 된다.
산길을 가다 우연히 마주치는 생명체들, 다람쥐는 항상 깨어 있다. 그의 눈은 생기로 반짝인다.
나뭇가지에 앉아 있는 새들도 눈여겨보면 다들 긴장해 있다 푸드득 푸드득 날아다니며 서로 가까이 가기도 하고 상대방을 내 쫓기도 한다.
삼라만상 다 팽팽한 긴장 상태다. ‘편하게 살고 싶어!’ 인간만이 야성을 잃어버린 생명체다.
문명이 인간을 이렇게 망가뜨렸을 것이다. 문명은 흡사 사기꾼 같다. 항상 우리에게 안락한 삶을 보장해준다고 우리를 유혹한다.
나는 지금 여기 있다. ‘어디로 갈까?’는 내가 선택한다. 선택해갈 때 천지자연은 우리에게 다정한 이웃으로 다가온다.
팔이 없었기 때문에 누구도 나는 구제하지 않았다 그리고
먹고 사는 일만으로도 충분히 고통스러웠기 때문에
고행보다는 잠을 선택했다
- 최승호, <지렁이의 말> 부분
시인은 ‘지렁이의 말’을 듣는다. 그는 지렁이의 말을 듣기로 선택했기에 지렁이의 말을 들을 수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