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쟁과 평화

by 고석근

전쟁과 평화


전쟁은 불가결하다. 인류가 전쟁을 하는 것을 잊어버렸을 때, 인류에게서 여전히 많은 일을 기대한다는 것은 헛된 몽상이며 어수룩한 이야기다. - 프리드리히 니체



저녁 강의를 끝내고 자전거를 타고 오다 공원에서 쉬고 있었다. 어디서 싸우는 소리가 난다.


고개를 돌려보니 술집 앞에서 주인인 듯한 젊은 부부와 젊은 남자 둘이 싸우고 있다.


언뜻 보면 큰 일이 날듯하다. 하지만 그들은 저러다가 언제 싸웠느냐는 듯이 주인 부부는 술집으로 들어가고 젊은 남자들은 다른 곳으로 갈 것이다.


그들의 싸움을 자세히 보고 있으면 흡사 연극을 하는 것 같다. 각자 배역이 있어 각자 역할에 충실한 듯이 보인다.


주변 사람들은 멀찍이서 구경을 하고 있다. 곧 연극이 끝나리라는 것을 잘 알기 때문일 것이다.


우리는 학교에서 싸우지 말라는 말을 수없이 들어서 싸우는 것은 나쁘다고 생각한다.


그래서 많이 배운 사람들은 싸울 줄을 모른다. 약자에게 ‘갑질’은 잘 하지만 부당한 것에 대해 분노하며 떨쳐 일어날 줄은 모른다.


가끔 ‘갑질 사건’을 접하면 가슴이 아프다. 젊은 여자가 술집에서 가족이 보는 앞에서 가장을 마구 폭행하는 경우도 있었다.


그 젊은 여자는 술에 취해 왜 그런 천인공노할 짓을 했을까? ‘싸우면서 자라지 못해서’라고 생각한다.


아마 그녀는 유복한 가정에서 태어나 열심히 공부를 하며 교양 있게 자라야 했을 것이다.


그녀는 속에서 분노가 일어날 때 표현할 수 있었을까? 서로 싸우며 타협하는 법을 배웠을까?


그렇게 자랐다면 어느 날 갑자기 술에 취해 억눌렀던 분노가 일시에 폭발하진 않았을 것이다.


다음 날 술에서 깨어났을 때 그녀는 자신의 행동이 황당했을 것이다. 하지만 그녀는 그 가족들에게 사과하고 용서를 구하지 않을 것이다.


그녀는 싸우고 사과하고 사과를 받아주며 더불어 살아가는 방법을 터득하지 못했을 테니까.


만일 공원에서 보았던 술집 부부에게 그녀가 행패를 부렸다면 그 부부는 어떻게 대응했을까?


분명히 그녀에게 대들었을 것이다. 그렇다고 크게 사고는 나지 않을 것이다. 그 부부는 싸우는 기술을 터득했을 테니까.


평화는 싸우지 않는 것이 아니다. 평화(平和)는 입(口)에 들어가는 쌀(禾)이 공평(平)한 것을 말한다.


영화 ‘웰컴 투 동막골’의 동막골의 촌장에게 마을의 평화를 유지할 수 있는 비결에 대해 묻자 그는 이렇게 말하지 않았던가. “머를 마이 멕이지 머.”


니체는 말한다. “인류가 전쟁을 하는 것을 잊어버렸을 때, 인류에게서 여전히 많은 일을 기대한다는 것은 헛된 몽상이며 어수룩한 이야기다.”


‘조용한 가족’이라는 영화가 있었다. 그들은 얼마나 무서운 존재들이었던가! ‘조용한 사람’이 무섭다.


그의 안에 켜켜이 쌓인 분노의 불길은 한 순간에 활화산처럼 폭발할 수 있다. 그 자신도 상대방도 주변 사람들까지 다 태워버릴 수 있다.


인간은 동물에서 진화했기에 동물적인 본능이 강하다. 싸우며 살아가야 한다. 그러면서 ‘싸움의 기술’을 배워야 한다.


서로 몸과 마음이 다치지 않게 싸우는 법을. 서로 타협하고 존중하며 살아가는 법을 터득해가는 싸움을.

싸움의 기술을 익힌 국민이 많을수록 그 나라는 강할 것이다. 서로 죽고 죽이지 않고 평화롭게 살아가는 법을 잘 알 테니까.



외톨이가 되었다
외톨이가 되었다
멍석 위는 쓸쓸해

난 몰라
그 애가 먼저야
그렇지만 그렇지만 쓸쓸해

인형도
외톨이가 되었다
인형을 끌어안아도 쓸쓸해

- 가네코 미스즈, <싸움 뒤> 부분



시인은 ‘싸움 뒤’ 아이들은 더 친해지리라는 것을 안다. 어른들이 싸우지 못하게만 하지 않으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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