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저지와(井底之蛙)

by 고석근

정저지와(井底之蛙)


사람들은 살아있으면서 살아 있음의 기적에 대해 느끼려고 하지 않는다. - 틱낫한



심층심리학자 융은 정상적인 생활을 하던 사람이 어느 순간, 강박증 환자가 되는 한 사례를 다음과 같이 보여주었다.


그녀는 집을 나서다 생각했다. ‘가스 밸브를 제대로 잠그고 나왔나?’ 다시 집으로 들어가 가스 밸브가 잠겨있는 것을 확인했다.


하지만 뒤돌아서며 그녀는 생각했다. ‘혹시 내가 밸브를 잠갔다고 착각한 게 아닐까?’


다시 의심이 들어 문을 나서던 그녀는 주방으로 갔다. 두 눈으로 똑똑히 보았다. 가스 밸브는 잠겨있었다.

하지만 뒤돌아서며 다시 의심이 생겼다. ‘내가 헛것을 볼 수도 있지 않나?’ 그녀는 이제 자신도 믿지 못하게 되었다.


사람은 한 생각에 빠지면 그 생각에서 벗어나기 힘들 때가 있다. 우물에 빠진 개구리가 되는 것이다.


우물 안에서 보는 세상은 밖에서 보는 세상과 전혀 다르다. 조그만 세상만 보이는 것이다.


하지만 그 개구리는 눈에 보이는 세상이, 이 세상의 전부인 줄 알고 살아가게 된다.


나는 불안장애에 걸려 오랫동안 마음고생을 하며, 한 생각에 빠질 때마다 호흡에 집중했다. 길게 복식 호흡을 했다.


생각을 배꼽 아래 호흡이 내려가는 끝, 단전에 머물게 했다. 차츰 나는 한 생각에서 풀려났다.


사람의 단전에는 생명의 샘이 있다고 한다. 나의 생각이 생명의 샘에 머물면, 생명의 샘물이 온 몸으로 솟아올라오게 된다.


나의 한 생각들은 하늘의 뜬 구름처럼 흩어져 버리게 된다. 나는 오롯이 ‘살아 있음’이 된다.


우리는 언론매체에서 수많은 범인들을 본다. 그들은 모두 한 생각에 빠져 그런 범죄를 저지르게 된다.


최근에도 한 범인이 끔찍한 스토킹 범죄를 저질렀다. 그는 공부를 아주 잘했다고 한다.


공부를 잘한다고 해서 한 생각에서 자유로울 수 있는 게 아니다. 공부는 지식을 쌓는 것이다.


모든 지식은 언어로 이루어져 있다. 언어가 우리의 생각이다. 따라서 지식을 쌓는 것은 여러 우물에 빠지는 것이다.


물론 여러 우물에 빠져서 보는 세상은 다양하다. 다른 우물에 빠진 사람을 볼 수 있는 눈도 생긴다.


하지만 자신의 생각에 빠져 있는 것은 변함이 없다. 우리는 아예 우물에 삐지지 않는 방법을 찾아내야 한다.

언어를 끊어버리는 것이다. 자신의 마음을 다 내려놓고 고요히 앉아 마음을 가다듬는 것이다.


언어가 끊어져 몸만 남은 나, 그 나가 진짜 나다. 몸만으로 존재하면, 몸은 친지자연과 하나로 연결된다.


우주의 기운과 하나로 어우러진다. 한 생각에 빠져있던 자신의 헛된 망상들이 하나하나 사라진다.


텅 빈 충만, 이 시간이 진짜 우리의 모습이다. 여기에는 한 생각의 우물이 없다. 온 세상이 생명의 기운으로 가득 차 있다.


교도소에 갇힌 사람들은 자신들이 죄가 없다고 생각한단다. 자신의 우물에서 보면 자신의 죄는 보이지 않는 것이다.


우리는 언어를 사용할 수밖에 없지만, 가끔은 언어를 넘어서는 세상 속으로 들어가야 한다.



우리가 키운 옥수수라고

어머니께 자랑해야지.


〔......〕


우리가 키운 게 뭐 있나

지놈들이 이만큼 자란다고 애썼지.


- 이응인, <한 생각> 부분



시인은 ‘우리가 키운 옥수수라고/ 어머니께 자랑해야지.’라고 ‘한 생각’을 하게 된다.


그러다 순간, 번개가 번쩍이듯이 다른 ‘한 생각’이 떠오른다. 이 한 생각은 그의 온 몸에서 솟아난 것이다.


우리는 이 ‘한 생각’을 할 수 있어야 한다. 우물 밖에서 보는 세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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