삶의 의미
니힐리즘이란 무엇인가? 그것은 최고의 가치들이 자신의 가치를 상실한다는 것이다. 목표는 (더 이상) 존재하지 않는다. ‘왜’라는 물음에 대한 답이 존재하지 않는다.
- <도덕의 계보>
한때 ‘삶은 계란’이라는 우스개가 유행했다. ‘삶은 무엇인가?’ 진지하게 묻는 사람에게 사람들은 대답했다. “삶은 계란”
언뜻 들으면 허무개그 같지만, 곰곰이 생각해 보면 삶에 대한 깊은 통찰이 담긴 선문답이라는 생각이 든다.
인류는 오랫동안 삶에 대해 진지했다. 과거의 종교와 철학들을 보면, 까마득하게 높은 고층 빌딩 같다.
올려다보면 눈이 부시다. 구름과 닿을 듯 높디높은 곳에 신이 살고 계셨다. 그러다 근대에 과학혁명이 일어나면서 이 빌딩들이 사상누각임이 밝혀졌다.
신의 성전이 신기루처럼 사라졌다. 사람들은 누추한 자신들의 세상을 보고는 경악했다.
‘사는 게 도무지 의미가 없어!’ 다시 사람들은 신을 그리워했다. 하지만 죽은 신이 되살아나지는 못했다.
온갖 사이비 종교들은 신이 부활했다고 소리쳤다. 하지만 대다수 사람들은 그것이 복음(福音)이 아니라 ‘화음(禍音)’이라는 것을 잘 알고 있다.
사람들은 선사처럼 말했다. “삶은 계란” 얼마나 오랫동안 우리는 ‘삶의 의미’에 시달려왔던가!
사는 게 고달프면 중얼거렸다. “전생에 무슨 죄를 지어 이 벌을 받나?” 자신의 고달픔을 간단하게 해결했다.
정신승리법이다. 자신의 삶을 주체적으로 꾸려가지 못하는 사람은 반드시 ‘희생양’을 필요로 하는 것이다.
이 희생양을 종교, 철학이 제공해주었다. 그러다 근대에 들어서며 사람들은 과학의 눈으로 세상을 바라보게 되었다.
사람들은 신이 어느 곳에도 없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신이 없는 세상에서는 삶의 의미도 한순간에 사라져버렸다.
니체는 현대 정신의 특징을 허무주의(니힐리즘)라고 말한다.
“그것은 최고의 가치들이 자신의 가치를 상실한다는 것이다. 목표는 (더 이상) 존재하지 않는다. ‘왜’라는 물음에 대한 답이 존재하지 않는다.”
사람들은 ‘삶은 계란’이라는 말로 니체의 철학에 화답했다. 그럼 인간은 앞으로 어떻게 살아가야 하는가?
신화학자 조셉 캠벨은 ‘신화의 힘’에서 다음과 같이 말했다.
“사람들은 우리가 궁극적으로 찾고 있는 것이 삶의 의미라고 말한다. 그러나 나는 우리가 진실로 찾고 있는 것은 살아 있음에 대한 경험이라고 생각한다. 살아 있음의 환희를 느끼는 것, 우리가 우리 안에서 찾아야 할 것이 바로 그것이다.”
불교에서는 인생을 ‘독화살을 맞은 병사’로 비유한다. 전쟁터에서 독화살을 맞은 병사가 죽어가면서 “이 화살은 누가 만들었는가? 왜 만들었는가?”하고 말했다.
이 병사가 안타까워 다른 병사가 독화살에 대해 알아보고 왔더니 그 병사는 이미 숨져 있었다.
석가는 우리의 삶이 이와 같다고 말한다. 죽어야 할 운명인 인간이 삶의 의미를 묻는 것 자체가 어리석다는 것이다.
지금 이 순간을 만끽하고 있는 아이들은 삶의 의미를 묻지 않는다. 이 순간의 삶을 제대로 누리지 못하는 어른들만이 이런 질문을 한다.
“왜 사는 거야?” 아이들은 이런 질문을 하는 어른이 있으면 이상하게 쳐다볼 것이다.
“뭐야?” 풋 웃으며 놀이에 몰두할 것이다. 아이처럼 살아가는 게 최고의 삶이 아니겠는가?
삶의 의미를 묻는 어른들이 ‘히틀러’를 만들어낸다. ‘위대한 게르만족’이라는 사상누각을 만들어 수백만 명의 유태인을 학살한다.
‘가미가제 특공대’를 만들어 수많은 젊은이들을 죽음으로 내몰게 된다. ‘구원받은 자’가 되어 사이비 종교에 한평생을 바치게 된다.
김상용 시인은 그의 시 ‘남으로 창을 내겠소’에서 ‘왜 사냐건/웃지요.’하고 노래한다.
‘구름이 꼬인다 갈 리 있소./새 노래는 공으로 들으랴오./강냉이가 익걸랑/함께 와 자셔도 좋소.’
인생은 삶의 의미를 찾아가는 고행이 아니다. 지금 이 순간, 눈부시게 피어나는 꽃이다.
인간은 수만 년 전 상상력이 생겨나면서 동물과 결별했다. 우리는 이 상상력을 사상누각을 만드는 데 쓰지 말아야 한다.
윌리엄 브레이크 시인처럼 ‘한 알의 모래에서 우주를 보고/들판에 핀 한 송이 꽃에서 천국을 볼 수 있어야’ 한다.
이 상상력이 고갈될 때 사람들은 삶의 의미를 찾는다. 사막에서 신기루를 보게 되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