좁은 문
앙드레 지드의 소설 ‘좁은 문’을 읽으며 숨이 막혀왔다. 사랑하는 두 사람이 좁은 문으로 들어가려니 얼마나 힘이 드는가!
사랑하지만 끝내 파멸에 이르는 사랑, 왜 이렇게 되었는가?
‘사랑’은 짐승들도 잘 하지 않는가? 그런 것들은 사랑이 아니라고? 이 오만함이 그들을 파멸로 이끌었다.
인간다움이라는 환상. 신(神)을 향해 나아가야 가장 인간적인 삶을 살아갈 수 있다는 망상.
인간은 ‘생각하는 동물’로 진화하면서, 생각 한번 잘못하면 한순간에 파멸에 이르는 동물이 되어버렸다.
‘인간의 길’에 대해서는 이미 성인(聖人)들이 답을 주었다. ‘네 본성(本性)을 따르라!’ 본성을 따르게 되면 자연스레 좁은 문으로 들어가게 된다.
좁은 문은 하나의 비유다. 그런데 정말 글자 그대로 좁은 문으로 들어가려는 두 남녀.
그들은 먼저 자신들을 믿었어야 했다. 자신들의 본성에 답이 있다는 것을 알았어야 했다.
그들의 본성은 말할 것이다. “사랑하라!” 너의 몸이 원하는 대로. 그러면 너의 영혼이 깨어나 너를 이끌 것이다.
몸이 깨어나기도 전에 알리사는 영혼을 깨우려 한다. 몸이 없는 영혼이라니! 영혼은 몸 그 자체다.
우리의 몸은 욕망의 덩어리 같지만, 깊은 속에는 몸을 제어하는 영혼, 신성(神性)이 있다.
건전한 몸에 건전한 정신이 깃 들게 되는 것이다. 몸을 떠난 영혼은 허공을 떠돌게 된다.
몸은 점점 쇠약해지고 알리사는 요양원에서 쓸쓸한 죽음을 맞게 된다. 제롬은 멀리서 알리사를 바라보기만 한다.
우리는 언제나 자신을 믿어야 한다. 마음을 고요히 하고 있으면, 누구나 가야할 길을 선명하게 알 수 있다.
딸아! 연애를 해라!
호랑이 눈썹을 빼고도 남을 그 아름다운 나이에 무엇보다도 연애를 해라.
네가 밤늦도록 책을 읽거나 컴퓨터를 두드리거나 음악을 듣고 있는 모습을 보며 나는 몹시 흐뭇하면서도 한편 안타까움을 금치 못한단다.
(...)
연애란 사람의 생명 속에 숨어 있는 가장 아름답고 고귀한 푸른 불꽃이 튀어나오는 강렬한 에너지를 말한다.
그 에너지의 힘을 만나보지 못하고 체험해보지 못하고 어떻게 학문에 심취할 것이며 어떻게 자기의 길을 개척할 수 있을 것이냐.
- 문정희, <딸아! 연애를 하라> 부분
연애는 ‘사랑’의 첫걸음이다.
연애를 하며 자신을 다 버릴 수 있는 강렬한 체험은 이후 자신에 대한 사랑, 다른 사람에 대한 사랑, 세상에
대한 사랑으로 확장되어 갈 것이다.
그런데 많은 사람들이 거꾸로 사랑을 배우고 있다.
자신부터 사랑하라는 인문학 서적을 읽고, 남을 사랑하고 세상을 사랑하라는 고전을 읽으며 시들어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