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하나의 세계다

by 고석근

나는 하나의 세계다


새로운 천국을 건설한 사람은 누구나 먼저 자신의 지옥에서 필요한 힘을 얻었다. - 프리드리히 니체



영화 ‘기생충’에서 보면 지하실에 사는 가족들이 대저택에 사는 가족들을 쉽게 등쳐먹는 장면이 나온다. 배울 만큼 배운 사람들이 배워먹지 못한 사람들에게 너무나 쉽게 당하는 것이다.

역사적으로도 그렇다. 중국의 진나라 말기에 명문 귀족 출신의 항우와 지방의 천민 출신 유방이 천하를 놓고 한판 대결을 벌인다. 결과는 천민 출신의 완승이다. 유방이 세운 한나라 말기에 삼국시대가 열린다. 황족 출신의 유비, 명문거족 출신의 손권, 환관의 손자 조조가 천하를 삼분한다. 최후의 우승자는 역시 조조다. 명나라를 건국한 주원장은 거지 출신이다. 조선을 건국한 이성계도 변방의 힘없는 시골 무사였다.

루저들이 승리하는 건, 그들은 알기 때문이다. ‘가장 완벽한 계획이 뭔지 알아? 무계획이야...... 계획을 세워봤자, 결국 그 계획은 계획대로 되지 않더라고(영화 <기생충> 중에서).’ 세상사 계획대로 되는가? 잘난 사람들은 오랫동안 ‘매뉴얼’ 대로 살아 왔다. 그래서 그들은 예상치 못한 상황이 벌어지면 한순간에 무너져버린다. 상황대처 능력이 뛰어난 루저들은 백전백승이다.

진실이 이러함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왜 많이 배운 사람, 출신 배경이 좋은 사람에게 지레 지고 마는가?


일찍이 중국의 병법가 손자는 ‘지피지기 백전불태 (知彼知己 百戰不殆)’라고 했다. ‘적을 알고 나를 알면 위태로워지지(지지) 않는다’는 것이다.

고등학교 다닐 때였다. 내가 다닌 고등학교는 서울에서 입학 성적이 꽤 높았다. 나는 학교에서 은근히 심어주는 ‘자부심’을 갖고 있었다.

어느 날 버스를 타고 가다 우연히 내 앞에 서 있는 학생의 얼굴과 마주쳤다. 교복과 모자를 보니, 그 당시 전국 최고의 ㄱ 고등학교 학생이었다. 나는 호랑이 앞의 하룻강아지처럼 주눅이 들었다.

나는 그에게 완패했다. 왜? ‘지레 쫄아서’ 나는 그 때 ‘쫄아 있는 내 마음’을 세심하게 살폈어야 했다. 그 아이에게 완패한 것 같지만 내 마음 속에 ‘지지 않은 마음’을 찾았어야 했다.

그와 겨뤄 결코 지지 않을 나의 잠재력, 그걸 집요하게 찾았어야 했다. 나는 그 뒤 세상이 심어주는 서열에 맞춰 살았다. 그러다 30대 중반이 되어서야 ‘나의 길’을 찾기 시작했다.

철학자 니체는 말했다. “새로운 천국을 건설한 사람은 누구나 먼저 자신의 지옥에서 필요한 힘을 얻었다.” 나는 오랜 방황 끝에 (그 방황은 그야말로 죽을 만치 힘들었다.) 오십이 넘어서야 ‘나의 길’을 찾았다. 인문학 강의와 글쓰기, 두 길은 나에게 주어진 소명, 천명 같았다. 그제 서야 남을 알고 나를 아는 삶을 살아갈 수 있을 것 같았다.

내가 잘 가는 술집이 있다. 주인은 시골에서 공업고등학교를 나와 오랫동안 막노동을 했다고 한다. 그러다 우연히 술집을 하게 되면서 ‘대박’이 났다고 한다. 항상 손님이 그득한 허름한 술집. 억대 연봉 월급쟁이가 부럽지 않을 것 같다.

그 주인은 어떻게 살아왔을까? 집안이 가난하고 공부를 못한다고 항상 구박을 받지 않았을까? 그는 스스로 ‘루저’라고 생각하며 살아왔을 것이다.

그에게 공부는 못하지만 ‘누구에게도 지지 않는 능력(술집경영능력)’이 있다고 말한 사람이 단 한사람이라도 있었을까?

‘듣보잡, 지잡대’ 이런 말들이 인터넷에 난무한다. 우리는 스스로 출신 집안과 출신 대학을 한 줄로 세우고 자신의 신분을 정하는 것이다.

만일 지잡대 출신이 ‘자신을 정확히 알고’ ‘스카이 출신을 정확히 알면’ 스카이 출신과 맞장을 뜨더라도 절대 스카이 출신에게 지지 않을 것이다. 자신들에게 그들보다 더 나은 점이 있다는 것을 분명히 알게 될 테니까

‘사람은 각자 하나의 세계(들뢰즈)’이기 때문이다. 사람은 다 다르게 태어난다. 산에 가보면 무수히 많은 생명체들이 살아간다. 어느 것이 어느 것을 이기지 못하고 서로 지지도 않으면서 더불어 잘 살아가고 있다.

인간은 각자 하나의 세계이기에 사실은 서로 이기지도 못하고 지지도 않는다. 지레 쫄지만 않으면.

우리는 각자 하나의 세계를 이루고 살아가야 한다. 각자의 왕국을 세우고 왕이 되어 살아가야 한다. 그럼 우리는 누구에게도 지지 않는다. 각자 당당한 자신의 삶을 살아갈 수 있다. 우리가 남에게 지는 건, 그가 속한 세계에서 그를 이기려하기 때문이다(자기 세계를 하찮게 보아서).

사람은 다른 누군가에게 당하면 반드시 다른 누군가에게 보복을 하게 되어있다. 그래서 우리는 아무에게도 당하지 말아야 한다. 남에게 지지 말아야 남을 이기려 하지 않는다. 서로 사랑하고 준중하며 살아갈 수 있다.


일찌기 나는 아무 것도 아니었다.
마른 빵에 핀 곰팡이
벽에다 누고 또 눈 지린 오줌 자국
아직도 구더기에 뒤덮인 천 년 전에 죽은 시체.

아무 부모도 나를 키워 주지 않았다
쥐구멍에서 잠들고 벼룩의 간을 내먹고
아무 데서나 하염없이 죽어가면서
일찌기 나는 아무 것도 아니었다

- 최승자,《일찌기 나는》부분

시인은 ‘일찌기 나는’ 울부짖는다. 우리는 자신을 제대로 모른다. 일찍이 우리는 자신을 비하하는 법부터 배웠기 때문이다. 그래서 우리는 항상 위태롭다.

하지만 그녀가 처했던 지옥은 그녀가 천국으로 가는 길목이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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