흰말은 말이 아니다
인간은 자신이 통제하지 못하는 말로 생각을 표현하면서... 자신의 뜻대로 말한다고 생각하지만, 사실은 자신이 말의 요구에 따른다는 것을 알지 못한다.
- 미셸 푸코, 『말과 사물』에서
중국 춘추전국시대의 제자백가 중 하나인 명가(名家)의 대표 사상가 공손룡이 주장한 백마비마(白馬非馬), 흰말은 말이 아니다.
이 말을 언뜻 들으면 궤변 같지만, 그가 주장한 논리를 떠나 우리는 흰말과 말의 관계에 대해 깊이 생각해 보아야 할 것이다.
우리가 ‘말(馬)’이라는 말을 할 때, 우리는 말에 대한 어떤 ‘생각의 틀’이 있다. 타는 수단, 운송 수단 등.
그러면 ‘흰말’은 어떤가? 우리가 자신을 흰말이라고 상상해보면 좋을 것이다. 이 세상에 태어났더니 자신이 흰말이라면?
초원을 뛰어다니며 신나게 살아가고 있는데, 어느 날 사람들이 몰려오고 강제로 잡혀갔다면?
그때부터 사람들을 태우고, 물건들을 나르게 되었다면? 사람들이 “너는 말이야!”라고 하는 말을 받아들일 수 있을까?
‘왜 내가 어떤 분류, 무리 속에 들어가 그렇게 살아가야 해? 나의 구체적인 삶은 어떻게 되는 거야?’
다정한 이웃이었던 유태인이 어느 날 독일군에게 강제로 끌려간다면? 우리는 그를 유태인으로 보아야 하는가?
다정한 이웃인 유태인으로 보아야 하는가? 만일 다정하게 함께 살아가던 이웃들이 그를 끝까지 다정한 이웃 유태인으로 보았다면, 인류의 역사는 달라졌을 것이다.
나는 어느 날 노인이 되었다. 나이가 들어가는 것은 항상 느끼고 있었지만, 어느 날 갑자기 이 세상이 나를 ‘어르신’으로 만들었다.
나는 흰 머리카락을 염색하지 않고 있다. 지인들이 말한다. “염색하면 십년은 젊어 보일 거야.”
그러면 나는 이렇게 주장해야 하나? “흰 머리카락 노인은 노인이 아니다!” 어쩌다 우리 사회가 노인을 혐오하게 되었을까?
구체적인 한 존재가 어떤 추상적인 분류 속으로 들어가게 될 때, 그의 존엄성은 흔적도 없이 사라지게 된다.
호적도 없이
되씹고 되씹어도 알 수는 없어
성한 사람이 되려고 애써도 될 수는 없어
어처구니없는 사람이올시다
나는 문둥이가 아니올시다
나는 정말로 문둥이가 아니올시다
성한 사람이올시다
- 한하운, <나는 문둥이가 아니올시다> 부분
우리는 한순간에 ‘어처구니없는 사람’이 될 수 있다. 노숙자, 노인, 아줌마, 실업자...... .
일단 한번 ‘어처구니없는 사람’으로 분류되고 나면, 어느 누구도 그 대열에서 헤어날 수가 없다.
시인은 절규했다. ‘나는 문둥이가 아니올시다’
그가 아무리 울부짖어도 아무도 그의 말을 들을 수가 없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