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간

by 고석근

시간


빛을 보기 위해 눈이 있고 소리를 듣기 위해 귀가 있듯, 시간을 느끼기 위해 가슴이 있다. - 미하일 엔데



호르헤 루이스 보르헤스의 소설 ‘끝없이 두 갈래로 갈라지는 길들이 있는 정원’에 다음과 같은 구절이 나온다.

‘시간은 셀 수 없는 미래들을 향해 영원히갈라지지요.’


우리는 시간이 직선으로 흐른다고 생각한다. 오늘 내일 모레...... . 올해 내년 후년...... . 근대산업사회의 시간관이다.


산업사회에서는 시간은 돈이기에, 시간을 들인 만큼 생산물이 많이 나오기에 산업사회에서는 직선으로 보이게 된다.


인류는 오랫동안 순환의 시간관을 갖고 있었다. 오늘 하루는 가지만 내일 다시 하루가 시작되는 것이다.


‘봄 여름 가을 겨울’은 다시 ‘봄 여름 가을 겨울’이 되는 것이다. 농경사회의 시간관이다.


시간은 원래 가슴으로 느끼는 것이다. 삶 그 자체이다. 우리 앞에는 ‘셀 수 없는 미래들을 향해 영원히갈라지는 시간’이 있는 것이다.


우리는 산업사회가 강요하는 직선의 시간에서 벗어나야 한다. 직선의 시간은 우리에게 계속 의무의 짐을 지우고 쉼 없이 앞으로 나아가라고 다그친다.


우리는 기계의 톱니바퀴가 되어야 한다. 우리는 ‘삶의 시간’을 잃어버린다. ‘살아있음의 환희’가 사라져 버린다.


니체는 인간의 정신의 변모를 세 단계로 설명한다.


묵묵히 자신의 짐을 지고 사막을 걸어가는 낙타, 어느 날 낙타는 자신의 짐을 벗어던지고 울부짖는다. “나는 자유다!” 사자가 된다. 하지만 사자는 더 나아가야 한다. 사자는 새로운 가치를 창조할 수 없다.


최고의 인간 ‘창조적 유희, 아이’가 탄생한다.


‘어린 아이는 순수이며 망각이다. 새로운 시작이며 유희이다. 스스로 굴러가는 바퀴이며 최초의 운동이자 하나의 신성한 긍정이다.’


아이는 자신을 쉽게 잊어버리기에 항상 ‘최초의 운동’이다. 아이는 늘 태초의 시간 속에 있다. 그래서 아이는 모든 게 신난다.



겨울 안개 길고 긴 터널

모든 것이 무사해서 미친 중년의 오후

〔......〕

돌아보니 텅 빈 무대 아래

반수면 상태로 끝없이 삐걱이는 의자들

저기가 진정 내가 지나온 봄의 정원이었던가


- 문정희,《우울증》부분



‘모든 것이 무사해서 미친 중년의 오후’ 우리는 무료하다. 도무지 살아 있는 것 같지 않다. 도박을 하고, 번지점프를 하고, 팔에 칼을 긋는다.


잠시만 눈앞에 놓인 것들을 아이처럼 무심히 바라보자. ‘반수면 상태로 끝없이 삐걱이는 의자들’ 조차도 ‘봄의 정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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