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들을 구하라!

by 고석근

아이들을 구하라!


갑자기 젠장 아주 행복한 기분이었다. 우리의 피비가 계속 빙글빙글 돌아가는 모습. 나는 빌어먹을 고함을 지를 뻔했다. 나는 그럴 만큼 젠장 행복한 기분이었다. 솔직히 말해서. 이유는 모르겠다. 그냥 아이가 아주 젠장 멋져 보였다. 아이가 파란 코트나 그런 걸 입고 계속 빙글빙글 돌아가는 모습이.


- 제롬 데이비드 샐린저,『호밀밭의 파수꾼』에서



아침에 인터넷 뉴스를 보다가 온 몸에서 힘이 다 빠져나갔다. 잠시 자리에 드러누웠다.


‘故 ㅇ 교사에게 400만원 받은 학부모… 고인에게 치료비를 요구한 사실이 없다’ ‘조만간 입장을 정리해 내놓겠다’


그 학부모는 아이가 수업 도중 페트병을 자르다가 커터 칼에 손을 베이자 담임이던 ㅇ 교사에게 민원을 제기하여 학교안전공제회로부터 두 차례 치료비를 보상받았다고 한다.


하지만 그 학부모는 휴직하고 입대한 ㅇ 교사가 전역한 후 ㅇ 교사의 월급에서 8개월간 50만 원씩, 총 400만 원을 전달받았다고 한다.


8개월간 400만원을 받고서 돈을 요구한 적이 없다고? 그런 말을 공개적으로 하는 학부모가 너무나 무섭다!

교사 시절, 아이들에게 돈을 빼앗는 아이들이 있었다. 그 아이들을 잡고 보면, 그들은 한결같이 말했다.


“우리는 돈을 빌렸을 뿐이에요. 돈을 빼앗지 않았어요. 아직 돈을 갚지 못한 것뿐이에요.”


그렇게 말하는 아이들의 얼굴은 해맑다. 전혀 죄의식을 느끼지 않는 듯하다. 그 학부모도 전혀 죄의식을 느끼지 않을까?


어쩌다 우리 사회가 이렇게 되었을까? 최소한의 양심이 사라진 세상, 약육강식, 적자생존의 정글이다.


제롬 데이비드 샐린저의 소설 ‘호밀밭의 파수꾼’을 읽으며 이 소설이 왜 수천만부가 팔렸는지를 알 것 같다.

인류는 지금 ‘잃어버린 아이’를 애도하고 있는 것이다. 아이들은 ‘좋은 것과 싫은 것’을 척 보면 안다.


하지만 어른들은 헷갈리게 된다. 눈앞에 언어의 안개가 서려있기 때문이다. 세상에 하도 엉터리 언어들이 난무하다 보니까 판단력이 흐려진 것이다.


거짓말을 자꾸 하다보면, 그게 진실인 것처럼 되고 나중에는 진짜 진실이 된다. 인간은 생각하는 동물이라 세뇌가 가능한 것이다.


하지만 이 세상은 아무리 타락해도 멸망하지 않는다고 한다. ‘계속 아이가 태어나고 어른은 죽으니까.’


내 귓가에 ‘나이 서른에 우린 어디에 있을까’라는 노래가 아득히 들려온다.


‘어느 곳에 어떤 얼굴로 서 있을까./ 나이 서른에 우린 무엇을 사랑하게 될까./ 저 거친 들녘에 피어난 고운 나리꽃의 향기를 나이 서른에 우린 기억할 수 있을까/ 긴 가슴마다 울려나던 참된 그리움의 북소리를 나이 서른에 우린 들을 수 있을까.’


‘호밀밭의 파수꾼’의 주인공 16살 홀든 콜필드는 퇴학을 당하고 나서 여동생 피비와 함께 놀이공원에 간다.

‘우리의 피비가 계속 빙글빙글 돌아가는 모습. 나는 빌어먹을 고함을 지를 뻔했다... 그냥 아이가 아주 젠장 멋져 보였다, 아이가 파란 코트나 그런 걸 입고 계속 빙글빙글 돌아가는 모습이.’


그는 회전목마를 타고 있는 어린 여동생 피비를 보며, 자신 안의 아이를 느꼈을 것이다.


‘순진무구한 아이, 천지자연과 하나인 나의 영혼, 내가 죽고 나서도 영원히 살아 있는 신(神).’



장난감을 받고서는

그것을 바라보고 얼싸안다 기어이 부숴버리고,


내일이면 벌써 장난감을 준 사람조차 잊어버리는

아이처럼


- 헤르만 헤세, <아름다운 사람> 부분



아이의 최고의 미덕은 ‘망각’이라고 한다. 과거가 없으니 아이들은 매순간, 천지창조가 일어난다.


어른들은 과거의 기억 때문에, 현재를 즐길 수가 없다. 그들은 한평생 업보(業報)의 형벌을 받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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