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붕과 참새

by 고석근

대붕과 참새


‘리좀’은 출발하지도, 끝에 이르지도 않는다. 그것은 언제나 중간에 있으며, 사물들 사이에 있는 ‘사이’ 존재이고 간주곡이다. ‘나무’는 친자 관계를 이루지만 ‘리좀’은 결연 관계를 이루며, 오직 결연 관계일 뿐이다.


- 질 들뢰즈,『 천개의 고원』에서



장자가 지은 ‘장자’에는 ‘대붕과 참새’가 나온다.


‘대붕이 한번 높이 날아갈 때 두 날개를 활짝 펴면 마치 하늘의 구름과 같다. 이 새는 바닷바람이 크게 일어날 때 남쪽 바다로 떠나간다.’


이때 대붕이 날아가는 모습을 본 참새가 대붕을 비웃으며 말한다.


“저놈이 몇 리를 날아가려는 것인가. 나는 한번 날아올라도 몇 길을 가지 못하고 떨어져서 쑥 풀 사이를 날아다닌다. 이것도 날아오르는 대단한 기술인데 저놈은 도대체 몇 리를 날아가려 하는 것인가?”


이 글을 읽으며 많은 사람들은 ‘대인(대붕)과 소인(참새)’을 생각할 것이다. “참새가 어찌 대붕의 뜻을 알겠는가?”


그럴까? 인간이 대인과 소인으로 나눠질까? 우리는 위인전에서 많은 대붕들을 보았다.


우리는 그들을 추앙한다. 수많은 사람들이 그들을 흉내 낸다. 노자는 대인을 숭앙하지마라고 했다.


그는 현자(賢者, 대인)를 숭앙하면, 세상 사람들이 서로 싸우게 된다고 말한다. 그런 사례가 표도르 도스토예프스키의 ‘죄와 벌’에 나온다.


주인공 라스콜리니코프는 비범한 사람들은 더 나은 세상을 만들어가는 과정에서 범인(凡人)에게 폭력과 살인을 저질러도 된다고 생각한다.


아마 많은 사람들이 이런 생각을 할 것이다. 긴 인류사에서 ‘히틀러’는 수없이 등장했다.


인간의 원초적인 죄와 벌은 인간에 대한 차별의식이다. 인간을 대인과 소인으로 나누는 이분법이다.


이러한 생각은 프랑스의 철학자 들뢰즈가 말하는 ‘수목형의 사유’다. 나무는 하나의 뿌리에서 수많은 줄기와 잎사귀가 나온다.


나무에게 가장 중요한 것은 뿌리다. 뿌리는 세상에서 말하는 신(神), 도(道), 로고스(Logos)다.


그러면 이 근원에 가까운 사람, 근원을 수호하는 사람은 인간 세상에서 가장 중요하지 않겠는가?


인간을 대인과 소인으로 나누게 된다. 대인은 이 세상의 근원(뿌리)을 수호하기 위해 소인들을 희생해도 된다고 생각하게 된다.


들뢰즈는 이런 사유에 대응하여 리좀형의 사유를 내세운다. 리좀은 고구마 같은 뿌리줄기 식물이다.


고구마는 한 곳에 뿌리를 내리고 살다가도 다른 곳에 뿌리를 내리고 살아간다. 하나의 뿌리가 없다.


수목형의 사유와 리좀형의 사유, 어느 게 인간다운 생각일까? 인간 세상을 잘 살펴보자.


다들 고구마처럼 살아가고 있지 않는가? 계속 장소도 이동하고 생각도 바꾸며 살아가고 있지 않는가?


한 인간의 동일성(同一性)은 없다. 하나의 뿌리를 갖고 살아가는 사람은 단 한 사람도 없다.


우리가 하나의 뿌리라고 생각하는 것들은 허상이다. ‘나는 왕족이야!’ ‘나는 ㅇㅇ맨이야!’ ‘나는 ㅇㅇ야!’


다 허상이다. 하나의 언어에 불과하다. 왕후장상의 씨가 따로 있는가? 평생직장이 있는가? 직업이 나인가?

인간은 리좀이다. 출발하지도, 끝에 이르지도 않는다. 그것은 언제나 중간에 있으며, 사물들 사이에 있는 ‘사이’ 존재이고 간주곡이다.


인간은 항상 누구와, 무엇과 만나며 자신의 존재를 만들어 간다. 오직 결연 관계일 뿐이다.


인간의 ‘나’는 두 개다. 의식의 중심에는 자아(ego)가 있고, 마음 전체의 중심에는 자기(self)가 있다.


자아가 마음 전체의 중심이 되면, 인간은 자신 밖에 모르는 소인배가 된다. 자기가 전체 마음의 중심에 들어서게 될 때, 인간은 대붕이 된다.


대붕은 인간의 이상상이다. 그 이상형에 도달하려 노력하는 것은 좋다. 하지만 자신이 대붕이라고 착각하지는 말아야 한다.


자신을 대붕이라고 생각하게 되면, 마음 안에 어두운 자신, 그림자가 생겨난다. 그림자가 자꾸만 커져 나중에는 그림자에 사로잡히게 된다.


인류사에 등장한 수많은 히틀러들이다. 우리는 다른 사람보다 낫다는 우월감을 갖지 말아야 한다.


인간을 대인과 소인으로 분류하지도 말아야 한다. 인간을 그저 이해하려 노력해야 한다.


스스로 인간의 한계를 자각하고, 자신과 다른 사람에 대한 연민을 갖고 살아가야 한다.


인간은 너무나 나약하다. 서로 사랑하며 살아가야 한다. 모든 사람은 대붕과 참새 사이를 한평생 오가며 살아간다.



폭풍우를 드나들며 포수를 비웃던 그가

야유의 한 가운데 지상에 유배되어

거대한 날개가 걷는 것을 방해하는구나.


- 샤를 보들레르, <알바트로스> 부분



젊은 시절, 나는 보들레르의 시를 읽으며 스스로를 ‘알바트로스’라고 생각했다.


‘창공의 폭풍우를 드나들며 포수를 비웃던 내가 지상에 유배를 와 저런 녀석들에게 야유를 당하고 있구나!’

대학 1학년 때, 직장을 다니다 늦게 대학을 와 동생뻘들인 학우들과 어울리지 못해 외톨이로 지내며 나를 위로했다.


‘이상사회’라는 명저를 쓸 계획을 세웠다. 나의 이론대로만 하면 이 세상은 이상사회가 되리라고 생각했다.

이런 망상이 깨지는 데 10여년이 걸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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