명쾌함은 최악의 상태이다

by 고석근

명쾌함은 최악의 상태이다


왕이 대답했다. “그게 가장 어려운 일이로다. 다른 사람을 판단하는 것보다 제 자신을 판단하는 게 훨씬 더 어려운 일이니라. 네가 자신을 잘 판단할 수 있게 된다면, 그것은 네가 참으로 슬기로운 사람이기 때문이니라.” 어린 왕자가 말했다. “저는 아무 데서나 제 자신을 판단할 수 있습니다.”


- 앙투안 드 생택쥐페리,『어린 왕자』에서



젊은 시절에는 신념이 강한 사람이 좋았다. ‘정의의 투사’ 그들을 볼 때마다, 나의 가슴은 불타올랐다.


역사의 강물이 회오리치던 때였다. 나도 그 강물을 타고 함께 흘러갔다. 역사를 위해 목숨까지 버릴 수 있을 것 같았다.


긴 시간이 흐른 후, 나는 차츰 ‘신념’에 대해 의구심을 갖게 되었다. 왜 그들은 자꾸만 자신들이 증오하는 모습이 되어가고 있는가?


철학자 니체는 말했다. “괴물과 싸울 때는 괴물이 되지 않도록 주의하라!” 우리는 누구나 불의에 대해 분노한다.


인간에게는 ‘양심’이 있기 때문이다. 양심은 우리 안의 ‘어린 왕자’다. 그는 척 보면 안다.


“임금님은 벌거숭이야!” 그의 눈에는 세상 사람 어느 누구도 정확하게 보인다. 하지만 사람은 나이가 들어가며, 눈이 흐릿해진다.


어린 왕자의 눈을 가리는 마음의 상처들 때문이다. 사람은 자라면서 많은 마음의 상처를 받게 된다.


그 상처가 남에게 투사된다. 어릴 적 아버지에게 폭력을 많이 당한 사람은 커서 ‘아버지 같은 사람’을 미워하게 된다.


그런 사람들은 언뜻 보면, 정의의 투사로 보이게 된다. 그런 사람들이 높은 자리에 올라가고, 권력을 잡게 되면 잔혹하게 바뀌게 된다.


괴물과 싸우며 괴물이 되어버린 것이다. 그래서 우리는 항상 자신의 마음을 성찰해야 한다.


위대한 사람들 중에 ‘아버지가 없는 사람’이 많다고 한다. 어릴 적 아버지에게 폭력을 많이 당한 사람도 아버지가 없는 사람이다.


그는 모든 아버지를 부정한다. 뭔가 힘이 있는 듯한 사람은 무조건 미워한다. 그들은 반사회적인 범인이 되기도 한다.


하지만 자신의 마음을 성찰하여 ‘아버지들에 대한 미움의 근원’을 깨닫게 되면, 그들의 가슴은 엄청나게 커진다.


많은 사람들을 품게 된다. 그들은 ‘큰 사람’이 된다. 그래서 소크라테스는 “성찰하지 않는 삶은 살 가치가 없다”고 했다.


자신의 마음을 성찰하지 않으면, 자신이 살아오면서 받은 마음의 상처들을 다른 사람들에게 투사하게 된다.

이 세상이 생지옥으로 보이게 된다. 하지만 그건 자신의 마음일 뿐이다. 미움이 많은 사람은 자신의 마음을 미워하는 것이다.


따라서 ‘다른 사람을 판단하는 것보다 자신을 판단하는 게 훨씬 어렵고, 자신을 잘 판단하는 사람이 참으로 슬기로운 사람’인 것이다.


‘명쾌함은 최악의 상태이다.’ 헤르만 헤세의 말이다. 나이가 한참 들어서야 그 말을 서서히 이해하게 되었다.


은행의 통장 정리기 앞에 서서

타르르르...., 명쾌히 찍혀나온 임금을 확인할 때

명쾌하지 못한 내가 아니라

누구나 그렇다는 이 청춘이 싫어졌다


- 김소연, <누구나 그렇다는> 부분



‘누구나 그렇다는 이 청춘’ 얼마나 무서운가! 그렇게 우리의 청춘은 허공으로 날아가 흩어져 버렸다.


지금도 여전히 ‘누구나 그렇다는’이 우리를 꼭꼭 감싸고 있다. ‘바깥은 언제나 위험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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