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과 창녀
천사이며 창녀인
그래, 한 입으로 두말하게 만드는
너,
정말 누구니?
- 강기원, <저녁 어스름처럼 스며든> 부분
독일의 철학자 발터 벤야민은 말한다. “책과 창녀는 잠자리에 갖고 들어갈 수 있다. 책과 창녀는 시간을 헷갈리게 만든다.”
충격을 준다. 아득히 멀다고 생각했던 책과 창녀가 하나로 묶이다니! 이런 사유를 ‘성좌의 사유’라고 한다.
성좌, 별자리는 원래 있는 것이 아니다. 사람이 이 별 저 별을 하나로 묶어 만든 것이다.
벤야민도 여기 있는 책, 저기 있는 창녀를 하나로 묶은 것이다. 이런 사유를 할 수 있을 때, 우리는 삼라만상을 평등하게 볼 수 있다.
‘저녁 어스름처럼 스며든’ 시간, 우리는 ‘천사이며 창녀인’인 존재를 볼 수 있다. 경계가 사라졌기 때문이다.
우리는 그동안 ‘명확한 지성(知性)’을 최고의 가치로 여겨왔다. 그러다 보니, 세상은 갈가리 찢겨 진다.
산, 하늘, 나무, 사람… 모두 따로 존재한다. 이런 사유에서는 존재는 계속 찢어지게 된다.
사람이 사람에게 다가갈 수 없고, 사람의 몸도 부위별로 나눠진다. 나눠진 부위는 더 작게 나눠진다.
우리는 평등의 가치를 높게 친다. 그런데 왜 우리는 불평등한 세상에 살아가야 하는가? 먼저 우리의 사고를 바꿔야 한다. 지성을 넘어서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