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른 이름
그 사람은 나를 안으면서
불렀다
내 이름이 아닌 알지 못하는 다른 이의 이름을
알지 못하는 이의 이름에 대답하면서 나는
멀고 아득한 마을을 생각하고 있었다
거기엔 아직 태어나기 전의 내가 있어서
살구꽃을 쳐다보고 있었다
- 타까다 토시꼬, <다른 이름> 부분
아내 이름을 부른다는 게 애인 이름을 불러 불륜 행위가 들켰다는 남자들이 있다. 우리는 왜 다른 이름에 이다지도 민감할까?
시인은 다른 이름의 여인에게서 자신을 본다. ‘거기엔 아직 태어나기 전의 내가 있어서/ 살구꽃을 쳐다보고 있었다’
다른 이름은 전생의 자신이었다는 것이다. 이렇게 사고하는 사람이 얼마나 될까? 그런데 원시인들은 이런 사고를 하지 않았을까?
그들은 ‘자아개념(Self-concept)’이 희미했기에, 자신과 남들을 선명하게 구별하지 않았을 것이다.
자아(Ego)는 문명화와 함께 형성된다. 문명사회일수록 ‘사적 소유’가 강화된다. 부부도 서로를 소유로 보게 된다.
배우자의 불륜에 대한 강한 질투는 자신의 소유의식과 깊은 관련이 있을 것이다. 참으로 슬픈 일부일처제의 사랑이다.
오랫동안 결혼은 사랑과 관계가 없었다. 결혼은 가문과 가문의 연대였다. 근대사회가 도래하면서 사랑과 결혼이 하나가 되었다.
일부일처제가 무너지고 있는 듯하다. 앞으로는 여러 형태의 가족제도가 생겨날 것이다. 일부일처제의 사랑, 어떻게 가꿔가야 할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