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은 나무

도서관 옆 나무

by 기억나무

아이가 초등학생이 되니 나도 초등학생이 된 듯하다. 아이는 교실에서 우리들은 일 학년이 되고 난 도서관 사서 도우미가 된다. 교실 문을 열고 들어가는 아이의 뒷모습을 확인하고 혼자서 도서관 문을 연다. 서가에 깨끗하게 정리된 새 책들 벽면 한쪽에 네모반듯한 모니터와 컴퓨터, 가시 하나 일어나지 않은 책상과 걸상들, 투명한 유리 속으로 기분 좋은 빛이 들어오고 빛 따라 바람도 들어오라고 창문을 열어둔다. 바람이 들어와 서가의 책 먼지를 흔들면 코끝이 간질간질 해지고 어린 시절 기억이 재채기 나오듯이 툭 떠오른다.

내가 다니던 국민학교에는 도서관이 있었다. 도서관은 누구보다 빨리 학교에 가는 이유가 되었다. 새벽 수탉의 알람 소리에 벌떡 일어날 수 있는 이유가 되었고 학교 가는 버스를 타기 위해서 어린 종종걸음으로 20분가량 걸을 수 있는 이유가 되었고 선생님들만 잔뜩 앉아 있는 교무실 문을 열 수 있는 용기의 이유가 되었다. 교무실 한쪽 벽에 걸려있는 열쇠함에서 도서관 열쇠를 손에 쥐고 도서관 앞으로 달음박질친다.

도서관 문이 마룻바닥을 끄르륵 긁으면서 열린다. 코끝으로 훅 들어오는 책 먼지 냄새, 미로처럼 세워져 있는 키 작은 서가들, 그 안에 순서도 질서도 없이 들쑥날쑥 제멋대로 꽂혀있는 오래된 책들. 걸쇠를 풀고 창문을 활짝 열어서 먼지가 앉은 오래된 책들에게 바람을 쐬어주고 싶어도 오래된 나무 창문은 창틀을 꼭 부여잡고 바람이 들어오는 것을 허락하지 않았다.

창문이 허락해 준 따뜻한 아침 햇살의 온기를 느끼면서 키 작은 서가 옆 마룻바닥에 엎드려서 책 읽는 것이 좋았다. 거친 마룻바닥이 가끔 스타킹의 올을 뜯기도 하고 하얀 실내화 등을 시커멓게 만들어도 좋았고 책장을 넘기느라 팔을 옮기거나 앉았다 엎어졌다 하면서 몸을 뒤척일 때마다 삐걱거리면서 내 움직임에 반응해 주는 마룻바닥도 좋았다.

이른 아침 아무도 없는 도서관은 수업 종이 울리기 전까진 누구나 올 수 있는 장소에서 아무도 모르게 나만의 세상을 상상할 수 있는 신비하고 비밀스러운 공간이 되어주었다. 마지막 잎새를 읽을 땐 도서관 창문 밖 너머로 흔들리는 잎새들을 보면서 꺼이꺼이 울음을 삼키면서 울었다. 지금 생각해도 그때 왜 그렇게 눈물이 났는지 모르겠지만 늙은 화가 베이먼의 마지막 그림인 담쟁이 잎새를 곱씹을수록 더 울음이 났었다.

사람은 무엇으로 사는가를 읽은 후엔 많은 생각과 고민을 했었다. 이해가 잘되지 않아서 읽고 또 읽으면서 어렴풋이 알 것 같았던 정답들을 어른이 되어가고 있는 지금도 찾아가고 있다. 어쩌면 그때부터 찾고 있는 정답의 힌트를 엄마가 되어서 다시 만난 도서관에서 찾을 수도 있겠다. 어린 시절 내가 맡았던 도서관의 책 냄새, 책 사이를 훑고 지나온 바람 냄새를 맡으면서 책장을 넘기는 내 아이의 모습을 보고 있는 나를 향해서 햇살보다 더 활짝 웃어줄 때 도서관은 이제 나 혼자만의 신비하고 비밀스러운 공간이 아닌 아이와 나의 행복한 세상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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