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접시물에 코박기

by 기억나무

접시물에 코 박고 죽는다.

새빨간 거짓말.

접시물에 코 박고 죽는다.

경고의 말.

어린 나는 접시물에 코 박고 죽는다는 말을 믿었다.

동그랗고 옴폭한 접시에 물을 받아놓고 경건하게 무릎을 꿇고 앉아서 흘러내린 머리카락을 고무줄로 질끈 묶었다.

접시에 담긴 물에 얼굴을 담갔다.

난 이제 죽을 것이다.

난 죽을 수가 없구나.

접시물에 코 박고 죽는다 는 말은 거짓말이었다.


어른이 된 나는 접시물에 코 박고 죽는다는 말을 믿지 않는다.

동그란 지구에서 숨 쉬는 사람으로 살고 싶어서 눈에 힘 빡 주고 살았다.

눈에 보이지 않고 접시에 담기지도 않는 물속으로 얼굴이 담가진다.

난 이제 살아보고 싶다.

난 죽을 수도 있겠다.

보이지 않는 접시물에 코 박고 죽는다는 말은 어쩌면 접시물이 깊어지고 있다는 경고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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