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딧불이 나무
이제 곧 수능날인데 나는 깜깜이다.
수능을 보는 아이가 없어서이기도 하지만 두 아이가 수능을 볼 때도 난 깜깜이었다.
고3 수능생인 아이를 위해서 내가 한 일은 수능날 점심 도시락을 따뜻하게 싸주는 일이었다.
요란하지 않은 아이가 먹고 싶다던 반찬들로.
시험 치를 학교에 자가용으로 태워다 주는 일이었다.
수능일은 유별나게 춥다는 생각에 추운 날 아이의 손이 시릴까 봐.
대학 갈 모든 준비를 스스로 한 아이들 덕분에 고3 수험생 엄마의 불안함을 모른 체 혼자만의 여행을 다녔다.
어련히 저희들이 스스로 잘할까 싶었다. 그 아이의 인생이니 아이가 결정하도록 했다.
대학생이 되고 무엇을 하든지 아이가 그러겠다고 하면 그렇게 하라고 했다.
졸업을 하고 대학원에 가겠다고 하길래 그렇게 하라고 했다.
졸업을 하고 바로 취업을 하겠다고 하길래 그렇게 하라고 했다.
길지 않은 인생이지만 내가 살아보니 초등학교는 중학교에 비하면 아무것도 아니고 중학교는 고등학교에 비하면 아무것도 아니고 고등학교는 대학교에 비하면 아무것도 아니고 대학교는 직장인이 되어보니 아무것도 아니더라.
지금 겪고 있는 일들이 감당해야 하는 책임들이 아무것도 아니란 걸 아이들이 알아가길 바랐다.
선택한 길에서 만나는 능선을 하나씩 넘을 때마다 새로 다가오는 능선에 비하면 넘어온 등뒤 능선은 아무것도 아니었음을 알게 되기를 바랐다.
지나 보니 아무것도 아니더라 말할 수 있을 만큼 선택한 모든 순간에 후회 없이 최선을 다하는 사람이 되길 바랐다.
미련이나 후회가 남더라도 그것들의 무게에 눌려서 앞으로 나아가는 걸음이 느려지지 않기를 바랐다.
지금 아이들을 보면 각자의 걸음 속도에 맞춰서 지치지 않고 걸어가고 있는 것처럼 보인다.
깜깜이 엄마 밑에서 반짝 거리는 빛을 내는 아이들로 자라주어서 반딧불이 빛이 깜박거리듯 내 인생도 한 번씩 반짝 거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