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점을 연 첫날 서점 의자에 앉아 창밖을 바라본 순간 영주는 자기가 벌인 모든 일의 무게가 비로소 느껴져 울었다. 그렇게 매일 울고불고 하면서 책을 들여놨고 손님을 맞았고 커피를 내렸다. 어느덧 정신을 차리고 났더니 휴남동 서점을 찾는 손님이 조금씩 늘고 있었고 영주는 중학생 시절처럼 매일 책을 읽는 사람이 되어 있었다. 어서 오세요, 휴남동 서점입니다 - 황보름-
살면서 문제가 생기면 나는 받아들이기보단 원인을 파악하고 문제를 해결해 보려는 쪽이었다. 이도 저도 안 되면 그 상황을 이해라도 하려고 했다. 그래도 안 되면 말 그대로 혼자 속을 끓였다. 당장은 힘들더라도 받아들이려 하거나 흘려보낼 수도 있었을 텐데 내겐 없는 옵션들이었다.
학창 시절 성적하고는 거리가 먼 내가 뒤늦게 오른 유학길에서 고생 고생하며 학업에 매진할 때였다. "공부가 제일 쉬웠어요"라는 말은 이런 거구나라는 생각이 들었던 때가 있다. 내가 그만큼 전공을 좋아했다기보단 공부는 내가 성실하게만 해 내면 어떤 답이든 내릴 수 있었기 때문이었다.
세상살이는 책과 나와의 일대일 관계가 아닌 훨씬 입체적이며 타인과의 끊임없는 상호작용을 필요로 한다. 아무리 촘촘히 면밀하게 계획을 세우고 성실히 수행한다고 해도 변수는 끊임없이 생긴다. 세상만사를 100% 이해하고 가겠다는 것 자체가 넌센스인 것이다.
세월이 가도 나는 많이 달라지지 않은 것 같다. 쓸데없는 아집은 되려 더 강해진 것 같기도 하다. 다행인 건 힘이 빠지기 시작했다는 것이다. 에너지가 달리니 뭔가를 극복해 보려는 열성을 덜 기울이게 되었다. 어쩔 땐 상황을 피할 힘도 없을 만큼 다리가 후들거릴 때도 있다. 그러니 비든 바람이든 그 자리에서 그대로 맞게 되었다. 화나고 눈물 난다고 피하지 않고 그때 그 자리에서 내가 해야 하거나 할 수 있는 것을 하기 시작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