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05.14
부자가 삼대를 못 간다는 말이 있다.
우리는 무언가가 주어지면 그것이 저절로 주어진 것이라는 지독한 착각을 하고 산다.
그러나 세상에는 공짜점심이 없다.
사실 엄밀히 따지면 자연에도 공짜점심은 없는 것이다. 그러나 자연에 대해서는 샤머니즘을 거쳐 신을 만들어 세상을 사는 인간의 수준으로는 도저히 어찌해볼 수 없는 거대한 자연의 힘 앞에 굴복한 인간이 직면하는 자연의 불확실성을 관장하는 신의 영역을 과학이라는 도구를 가지고 야금야금 점령하기 시작하여 마침내 신학을 과학의 힘으로 몰아내고 지금의 자리까지 인간의 지적 수준을 고양한 사람들이 바로 자연과학자들이다.
이루 헤아릴 수도 없는 인과가 작동하므로 노자는 자연을 무위자연이라 하지 않았을까?
자연에 비하면 초라하기 짝이 없는 인간이 만든 세상에도 인과는 소리 소문 없이 우리의 의식을 점령하고 우리는 의식이 이끄는 데로 유전자를 전달하기 위해 무슨 일을 해도 이상할 것이 없는 유전자 전달체에 불과한 것이다.
삼대는 할아버지 아버지 나와의 관계다. 가깝다면 가깝고 멀다면 먼 삼대는 온전히 의식을 공유하는 수준까지 오르려면 백여 년의 세월을 거슬러 올라가야 한다.
더구나 흘러간 시간들의 편린들을 모아서 글로 만드는 역사는 태생적으로 온갖 서사와 바람 그리고 인과의 짜집기가 난무할 수밖에 없는 한계를 가진다.
이러한 한계 때문에 부자는 물론이고 사람과 사건의 진실은 삼대가 못 가고 현장감은 떨어져서 애국과 매국이 뒤바뀌고 충신과 간신이 교차되며 우직한 진실은 간교한 거짓으로 매장되는 것이 승자의 기록 역사인 것이다.
우주적 감각으로 보면 생명은 보였다 보이지 않았다 하는 것이고 세상의 질서도 세워지고 허물어 지고를 무심히 반복하는 것이다.
1897년에 세워진 대한제국은 동학농민 운동 청일전쟁 을미사변 갑오경장 아관파천이라는 격변기를 거치면서 타율적으로 탄생한 허울뿐인 제국이었으며 구한말 혼란기에 망국으로 가는 길목에서 조선이라는 국호가 대한으로 바뀌는 시발점이기도 하였다.
어느 누구 하나 할아버지가 살았던 그 시대의 정확한 역사를 알기도 힘들고 알려고 하지도 않는다.
2001년 9월 세계기록유산에 등제된 승정원일기라는 기록문화를 가진 우리가 무슨 이유인지는 모르나 대한제국 망국사라는 변변한 역사기록을 삼대가 다 가도록 만들지 못하고 끝없는 논란과 억측에 이은 왜곡에 왜곡을 더한 찌라시 수준의 사료, 찢어발겨져서 연결이 끊어져 맥락을 알 수 없는 외마디 비명으로 이루어진 쑥대밭이 대한제국 망국사라고 불러야 하지 않을까?
500년 동안 그렇게 철저하게 기록을 남긴 조선이 대한제국으로 이름을 바꾸고 10여 년 만에 한일합방을 통해 망국이 된 대힌제국의 기록은 정녕 벙어리 냉가슴 앓듯 꽁꽁 싸매어 묵혀야 했던 시크릿 코드여야 했는지 의문이 든다.
우리의 할아버지께서 사셨고 아버지께서 그 시기 즈음에 태어나셨던 격변과 혼란의 시기에 대한 역사의 부재가 지금 대한민국의 발목을 잡는 아킬레스건이라면 다들 수긍이 갈는지 마냥 궁금해진다.
역사는 돌고 돌아 제자리를 찾으려고 세상을 기웃거리지만 시대와 환경만 바뀔 뿐 등장인물이라는 주어진 배역은 역사의 평행이론을 시연이라도 하듯이 판박이로 연기한다.
대한제국에서 망국이 되고 번영된 대한민국에서 살고 있지만 망국이라는 무대에서 출몰했던 빌런들의 행적이 오리무중인 것은 대한제국 망국사의 참회록 한 줄 쓰지 못했던 사분오열의 역사 그 자체 때문이며 반복되는 역사 속에서 도도히 흐르는 역사를 잊어버리는 태무심이 지금의 대한민국을 위태롭게 하고 있는 것은 아닌지 생각해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