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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 해 록]백년전쟁 73, 제철보국 1973

by 윤해



말과 글이 문명을 밝히는 정신적 그릇이라고 한다면 도구와 재료는 문명을 뒷받침하는 물질적 그릇이다.
나라가 말과 글을 잃으면 혼이 날아간 겨레가 되듯이 나라가 도구와 재료를 잃어버리면 몸이 산산이 흩어진 백성이 되어 겨레와 백성들은 혼비백산하여 망국으로 달려간다.

이처럼 정신문명과 물질문명은 국가의 흥망성쇠를 견인하고 추진하며 굴러가게 만드는 양대 축이자 수레바퀴와 같고 1910년 대한제국의 망국과 1948년 대한민국의 건국사이에서 이역의 하늘 밑에서 풍찬노숙했던 애국지사와 순국선열들이 독립전쟁을 통하여 망국의 군주제를 건국의 민주정으로 체제를 바꾸고 국민들의 정신문명을 개조했던 엄혹하고 지난한 시간이었다고 한다면, 거악의 일제강점기 식민지에서 태어나 성장하여 자강하고 실력을 기른 식민지 청년 출신들이 한국 전쟁을 거치면서 잿더미가 된 국토를 재건하기 위해 그들이 그토록 원했던 것은 도구와 재료를 만들어 물질문명을 일으켜 대한민국의 번영을 이끌 수 있다는 산업화를 향한 단심丹心 뿐이었다.

그리고 1917년 11월생 식민지 청년출신의 대통령 박정희의 곁에는 같은 식민지 청년 출신의 1927년 9월생 박태준이 있었다. 박태준은 한국 전쟁이 휴전될 쯤에 새긴 "짧은 인생을 영원 조국에"라는 좌우명을 가지고 조상의 혈세로 짓는 제철소다 실패하면 우향우 해서 영일만에 빠져 죽자 제철보국製鐵保國을 우리 인생의 신조로 삼자라며 목숨 걸고 대일청구자금과 베트남 파병, 파독 광부 간호사들의 피땀으로 얻은 자금으로 1973년 7월 3일 포항종합제철을 준공시킴으로써 제철보국의 첫발을 내디뎠다.

철은 산업의 쌀입니다. 쌀이 생명과 성장의 근원이듯, 철은 모든 산업의 기초소재입니다. 따라서 양질의 철을 값싸게 대량으로 생산하여 국부를 증대시키고 국민 생활을 윤택하게 하며 복지사회 건설에 이바지하자는 것이 곧 제철보국입니다. 우리는 국민과 인류에게 복락福樂을 줄 수 있는 제철산업에 종사하고 있다는 것을 무한한 영광으로 생각해야 합니다 라는 소신과 지론을 바탕으로 포항제철을 준공한 박태준은 뼛속까지 철강인이요 일제의 심장부 일본 육사 입교 권유를 거부하고 와세다대 공대로 진학하였고 2차 세계대전 말 학병에 끌려나가는 대신 제철소 소결로공장 노력봉사대원으로 배치받아 제철과 인연을 맺고 자강 하고 실력을 쌓았던 식민지 청년 출신의 진정한 산업화 세력이었다.

1908년 1월생은 망국과 건국 사이에 겪었던 독립전쟁과 만주사변 중일전쟁 제2차 세계대전 건국 이후 6.25 전쟁까지 5번의 크고 작은 전쟁에서 살아남아 우리의 말과 글을 지키며 번영된 대한민국을 이끌 동량들을 길러냈던 만감이 교차하는 대학강단을 떠나야 할 정년퇴임을 앞두고 있었다. 망국의 식민지 청년으로 태어난 동갑내기 1908년 6월생 매헌과 같이 독립전쟁에 뛰어들어 순국하지 못하고 살아남은 죄인이 되어 건국과 전쟁을 거치면서 1875년 생 우남이 민주화를 이 땅에 심고 민주화의 제물이 되어 사라졌고 1917년 11월생 박정희가 산업화를 통해 대한민국 번영의 시동을 걸었고 1927년 9월생 박태준이 포항제철을 준공하여 제철보국의 닻을 높이 올린 그 해 드디어 1908년 1월생은 말과 글로 문명을 세우고 대한민국 번영의 일익을 해냄으로써 24세 꽃다운 나이로 순국한 매헌에게 진 평생의 빚을 조금이나마 갚을 수 있게 되었다는 안도감에 감사했다.

1973년은 1월 20일 리처드 닉슨 미국 대통령이 재선 취임식을 가져 두 번째 임기를 시작하였다. 1월 24일 박정희 대한민국 대통령은 베트남전 종전에 대해 성명을 발표하였다. 2월 26일 대한민국의 가정용 전기의 전압을 110V에서 220V로 승압하는 사업이 시작되었다. 4월 4일 미국 뉴욕시에서 세계무역센터가 완공되면서 뉴욕에서 가장 높은 빌딩으로 기록되었다. 4월 10일 이애리사, 정현숙, 박미라, 김순옥 등을 중심으로 한 한국 여자탁구 대표팀이 유고슬라비아 사라예보 세계탁구선수권대회에서 우승을 차지하였다.

6월 23일 박정희 대통령이 내정 불간섭, 남북 유엔 동시 가입 등을 제안한 '6.23 평화통일 선언'을 발표했다. 8월 8일 일본 도쿄에서 김대중 납치 사건이 발생했다. 그러나 김대중은 닷새 만에 서울로 돌아왔다. 8월 28일 남북조절위원회 평양 측은 김대중 납치 사건을 빌미로 남한 측과의 대화 중단을 성명하여 남북관계가 또다시 경색되기 시작했다. 9월 6일 북한 평양 지하철도 천리마선이 개통되면서 한반도에 첫 지하철이 생겼다. 서울 지하철 1호선은 이보다 한 해 늦었다. 개통된 구간은 붉은 별역 - 봉화역 구간이었다. 11월 26일 오일쇼크의 여파로 정부는 TV 아침 방송시간대를 6시 55분부터 9시 55분까지로 단축하였다. 12월 6일 미국에서 탈세 혐의로 사임한 스피로 애그뉴의 후임으로 제럴드 포드가 부통령에 취임했다. 12월 23일 OPEC이 석유 가격을 2배로 올렸다.

제철보국으로 산업화의 시동을 건 대한민국은 닉슨독트린으로 신냉전 데탕트 질서가 몰려오면서 국제질서가 어수선한 가운데 연말 국제유가가 2배로 뛰면서 산업화의 위기가 찾아왔으나 대한민국은 온 국민이 허리를 졸라매고 산업구조조정을 통해 중화학공업으로 전환하는 후발국의 이점을 최대한 활용하면서 위기를 기회로 바꾸는 기적을 써 내려가기 시작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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