디아스포라 Diaspora, 나라가 망하면 나와 너는 흩어진다. 즉 나와 네가 모인 우리라고 하는 공동체의 우리가 봇물 터지듯이 터져 공동체를 구성하는 나와 너는 사방팔방으로 기약 없는 이별을 하면서 뿔뿔이 흩어져 정처 없는 생활을 하다가 우연한 기회를 잡아 기회의 땅으로 이주하고 정착하면서 그곳에 뿌리를 내린다.
디아스포라는 고전 그리스어로 파종播種을 의미하는 단어에서 유래한 표현이다. 고향을 떠나 타향에서 살아가는 공동체 집단 혹은 이주 그 자체를 의미한다. 유대인, 아르메니아인, 남중국계 화교, 아일랜드인, 스코틀랜드인, 남인도인, 그리스인 등이 세계사 속에서 전 세계를 누빈 디아스포라 Diaspora 민족으로 유명하지만, 바빌론 유수 이후 2000년 이상 디아스포라를 겪은 유대민족이 20세기 제2차 세계대전 기간 동안 혹독한 유대인 박해를 이겨내고 시오니즘을 통해 하나로 뭉쳐 이스라엘을 건국한 기적의 알리야 Aliyah는 그 어떤 디아스포라 사례와 비교해 봐도 극적이며 기적적이다.
호모사피엔스는 공간을 통해 시간을 창조하는 지혜자이다. 따라서 세상 속의 인간으로 정착하면서 나름의 공간을 창조하고 있는 인간을 디아스포라 시키는 방법은 어떤 의미에서 대단히 폭력적이다. 즉 웬만해서는 정착민들을 그들의 거주지에서 내 보낼 수단은 없다. 전쟁을 통하여 나라가 망하거나 극심한 자연재해가 몰려와 도저히 그 땅에서 살 수없다고 판단되는 순간 고국을 등지고 타국으로 흩어지는 것이 고금을 통한 디아스포라의 전형적 형태이다.
663년 백강 전투에서 나당연합군에 패한 백제 의자왕과 수많은 유민들이 당나라로 끌려가고 백제의 수많은 지배층이 일본으로 망명하면서 백제의 디아스포라는 시작되었고, 그로부터 5 년 뒤 고구려 평양성이 나당연합군에 의해 떨어지면서 고구려 보장왕을 비롯하여 고구려 유민들은 당나라로 강제로 끌려가는 디아스포라를 온몸으로 겪으면서 광활한 만주 대륙과 연해주 마저 발해의 멸망으로 한민족의 강역에서 멀어지는 역사적 비극과 마주해야 했던 것이다.
삼국통일 과정에서 시작된 한민족의 디아스포라는 서쪽으로는 당의 서역정벌의 선봉에 서서 아바스왕조의 이슬람문명과 충돌한 탈라스 전투의 고선지장군을 필두로 동쪽으로는 일본 지배층을 형성한 백제계까지 사방팔방으로 한민족의 디아스포라가 시작된 것이 전쟁에서 패한 유민의 서글픈 운명이라고 여겨도 무방할 것이다.
페치카 최라고 불리며 구한말과 망국의 격동 속에서 연해주沿海州의 독립 전쟁을 실질적으로 주도했던 1858년 8월 15일생 최재형崔在衡 선생은 일찌감치 연해주沿海州에 정착하여 국제적 무역 감각과 뛰어난 전시사업 수단을 발휘하여 망국 후 뿔뿔이 흩어진 애국지사들의 후원자로서 안중근 의사의 이토 히로부미 처단의 후원자로서 연해주 독립운동가들의 대부로서 독립운동사의 한 획을 그은 분이다.
독립운동의 디아스포라는 상해 임시정부 중경 임시정부를 거쳐 갔지만 망국 후 최초의 독립전쟁을 주도한 구심점은 한반도와 가장 가까운 연해주로부터 시작되었고, 연해주沿海州 독립 전쟁사에서 최재형 선생의 공적은 이루 헤아리기도 어렵다. 평생 모은 거금의 재산을 오로지 일제에 대항하는 군자금으로 제공한 그가 동토의 러시아로 디아스포라 한 독립지사들이 자리를 잡고 뿌리를 내리기 위해서 그가 희생한 자신의 삶은 마치 주위에 온기를 전하며 자신을 불사르는 페치카와 같았다 하겠다. 1919년 상해 임시정부의 재무총장에 오른 최재형 선생은 1920년 연해주沿海州 일대에서 적극적으로 러시아 내전에 참가 중이던 일본군이 우수리스크를 급습하여 연해주 4월 참변을 일으키면서 그를 제일 먼저 즉결 처형했다.
향년 61세. 그는 충분히 피신이 가능했으나 피하지 않았는데 자기가 사라지면 가족이 고통당할 것을 잘 알았기 때문이었다. 그는 왕바실재 산기슭에서 동지 김이직과 엄주필 등과 함께 처형되었다. 1962년 건국훈장 독립장이 추서 되었다. 우수리스크에 위치한 그의 옛 집이 독립운동기념관으로 지정되었다.
그 후 연해주沿海州에서 파종된 독립전쟁의 디아스포라는 만주와 중국 대륙 일본과 하와이까지 전 세계로 흩어지면서 1932년 매헌 윤봉길의사의 훙커우 공원 의거를 비롯하여 미주 하와이에서 활약한 우남의 독립외교전쟁의 모태가 되고 불씨가 되어 독립전쟁의 온기로 작용한 페치카 최, 최재형 선생의 한 생은 명실상부한 독립전쟁사의 족적으로서 손색이 없는 삶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