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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윤 해 록] 수연소구업隨緣消舊業

by 윤해

기원전 6세기경 인도 마가다 왕국에서 고타마 싯다르타에 의해 전해진 불교는 인도와 동아시아, 동남아시아, 티베트, 몽골, 유럽 등 전 세계로 전파되면서 다양한 형태로 변형되면서 현대에 이르고 있는 인류가 만든 가장 오래된 종교 중의 하나이다.

다른 종교와 달리 불교는 오염된 세상의 원리를 자연의 섭리로 바로잡아 문명과 자연과의 조화를 통하여 새롭게 자연을 재해석한다는 의미에서 그 자체로서 매우 독특하게 출발한 종교이다.

대부분의 인류 문명은 탑을 쌓듯이 차곡차곡 한 계단 한 계단 올라가는 적층의 방식으로 발전하였지만 인류의 정신문명인 종교는 기원 전후 500년 부근에서 불교, 기독교, 이슬람교가 차례대로 출몰하였고, 이보다 앞서 기원전 1500년경에 시작된 힌두교와 더불어 현대까지도 이들 4대 종교는 건재하다.

믿음은 바라는 것의 실상이며 보지 못하는 것들의 증거라면서 믿음을 강조하는 종교에서부터 신의 뜻을 내세우면서 살육과 정복전쟁을 통해 교세를 확장했던 종교까지 세상 속의 종교는 결국 믿음을 기반으로 실상의 영역을 넓혀가고 실상이 정복되면 새로운 가상의 영역까지도 늘려가는 탐심과 욕심이 콜라보되는 갖가지 논리와 히스테리 그리고 미스터리까지 진리로 재포장하여 혹세무민 하는 것에 다름 아님을 역사는 번번이 실토하지만 피안과 소도로 도망간 종교는 늘 히드라처럼 되살아나고 있는 것도 사실이다.

불교는 가상의 세상에서 보기 드문 실상의 종교다.

수연소구업隨緣消舊業, 그저 인연 따라 다만 묵은 업을 녹여낼 뿐이라는 불교의 핵심 원리를 따라가다 보면 거시계의 온갖 갈등의 시작도 미립자로 출발한 138억 년 전 우주 빅뱅에서 출발하였다는 팩트 자체를 부정할 수 없는 불교의 연기법과 만난다는 사실 앞에서 불교는 단순한 종교가 아니며 미시계의 근원까지 파고드는 치열한 종교임을 어렴풋이 짐작할 수 있다.

이처럼 자연 종교인 불교는 법화경과 황제내경 그리고 법구경이라는 산사의 언어로서 전승되는 운문 형태의 시로써 선한 마음이 선한 말을 부르고 선한 행동으로 까지 이어지면서 행복으로 다가간다.

바늘 가는데 실이 가고 실타래와 같은 억겁의 인연이 모이고 엉켜서 한 생의 역경과 희망을 만들어 내면서 오욕칠정과 희로애락이라고 하는 희비쌍곡선이 마치 뫼비 우수의 띠처럼 영원히 끊어지지 않고 이어지는 카르마를 수연소구업隨緣消舊業하기 위해 불교라는 종교가 있기 전부터 용맹정진勇猛精進에 매진하여 보지만 마치 수레바퀴가 소의 발자국을 따라가듯이 억겁의 연은 우리에게 찰싹 붙어 떨어지지 않아서 매번 구업을 털어낸다는 것은 늘 도로와 허사일 수밖에 없는 것이다.

이러한 한 생의 카르마 앞에서 우리 인간은 때로는 좌절하고 때로는 희망에 들떠 있는 가련한 존재가 바로 너이고 나이며 우리이기도 한 것이다.

한 생을 살면서 덕을 쌓고 살지는 못할망정 업을 짓고 살지는 말라는 우주법은 자연 종교인 불교에 그대로 녹아들어 반복되는 삶의 마디마디에서 어쩔 수 없이 살기 위해 짓기 마련인 따라붙는 인연의 오래된 업을 태워 없애는 업장소멸을 통해 삶의 윤회에서 벗어나는 해탈을 지고지순한 생과 사의 가치로 생각했던 수많은 각자들이 있었기에 세상은 악세 속에서도 선세를 바라보며 실상의 빛과 소금으로 가상의 어둠과 달콤함을 몰아내면서 우리 인류는 여기까지 달려온 것은 아닐까? 한 번 깊은 사유를 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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