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진강역을 출발역으로 하고 지평砥平역을 종착역으로 서울의 중심을 가로지르며 한강을 끼고 달리는 경의중앙선은 서울의 여느 전철과는 확연히 다른 특징을 가지고 오늘도 말없이 분단의 상징과도 같은 임진강과 지금의 대한민국을 있게 한 지평리 전투의 현장 속으로 하루에도 수십 번 왔다 갔다 하면서 물망초의 영어 이름 ‘Forget-me-not’처럼 한국전쟁을 잊지 말라고 외치며 오늘도 달리고 있다.
경의선은 1906년, 중앙선은 1941년에 개통된 대한민국 최초의 철도 노선 중 하나로, 이후 수도권 전철로 확장되어 통근객과 여행객 모두에게 중요한 교통수단이 되었으며, 경의중앙선은 수도권 주민들의 통근, 여행, 관광 등 다양한 목적으로 이용되고 있고 주변 관광지와의 연계도 활발하다. 이처럼 경의중앙선은 수도권의 주요 도시를 연결하는 중요한 교통수단으로 자리 잡고 있다.
철마는 달리고 싶다는 민족의 염원을 뒤로하고 임진각에 멈춰 선 파주장단역의 증기 기관차의 외관은 총탄의 탄흔으로 얼룩져 있고 서울에서 의주까지 통일의 꿈을 키웠던 남북 철도와 도로 연결 사업은 2000년 김대중 전 한국 대통령과 김정일 북한 국방위원장의 합의를 거쳐 시행됐었다. 남북분단으로 단절됐던 경의선과 동해선 철도, 그리고 육상 도로의 재연결은 남북 화해와 협력의 상징으로 여겨지는 대표적 대북사업이었다.
그로부터 24년이 흐른 2024년 10월 15일 한국 통일부의 구병삼 대변인은 북한을 강하게 규탄하는 아래와 같은 입장문을 발표하였다.
[녹취: 구병삼 대변인] “오늘 북한의 경의선, 동해선 북측 구간, 남북연결도로 폭파는 남북 합의의 명백한 위반이며 매우 비정상적 조치로서 우리 정부는 이를 강력히 규탄합니다. 경의선과 동해선 철도와 도로는 남북정상회담 이후 진행돼 온 대표적 남북 협력사업으로 북한 요청에 의해 총 1억 3천290만 달러에 달하는 차관 방식의 자재 장비 제공을 통해 건설된 것”이라며 해당 차관에 대한 상환 의무는 여전히 북한에 있다" 라며 북한이 남북 경의선과 동해선 도로에서 착수한 방벽 공사가 마무리된 것으로 나타났고, 한국과 북한을 잇는 육로가 최대 150m 길이의 방벽에 모두 막혔음을 확인하였다.
통일에 대한 백일몽으로 시작된 경의선 복원작업을 포함한 남북 정상 간의 합의가 북한 측이 설치한 방벽 공사로 좌절되었고, 남북관계는 끝을 알 수 없는 적대 관계로 내몰리면서 경색과 대치가 도를 넘고 통일은커녕 분단의 골만 키운 책임이 누구에게 있는지는 분명 하나 아무도 책임지지 않고 아무도 책임을 물으려 하지 않는다는 것이 사반세기를 끌어온 남북관계의 가장 큰 특징이기도 하다. 그 수많은 남한 국민의 혈세가 북녘 동포의 사람답게 살 권리에 조금이라도 보탬이 되기는커녕 민족을 배반한 독재자의 독재를 강화하고 그에 부화뇌동했던 종북진영의 권력기반을 강화하고 뇌물을 착복하여 지금의 이 지경을 만든 반민족적 행동에 대한 올바른 심판 없이는 앞으로도 통일을 향한 길은 가시밭길이 될 것은 불을 보듯이 명약관화하다.
1호선부터 9호선까지 거미줄 같은 지하교통망이 깔리면서 수도권 2500만 인구의 발이 되고 있는 수도권 전철망을 외로이 가로지르며 일부 도심구간을 제외한 대부분의 구간이 지상철로 운행되면서 임진강에서부터 지평역까지 마치 한국전쟁의 전황을 축약해서 보여 주듯이 지평리 전투에서 거침없이 밀고 내려왔던 중공군의 파상 포위 공격에 맞서 적진 한가운데 고립된 지평리 미군 제2사단 23 연대와 프랑스 외인 대대는 절체절명의 위기에서도 굴하지 않고 지름 1.6km의 원형 방어선을 이중 삼중 두텁게 구축한 후 곡사포로 적이 은폐·엄폐하고 있는 능선을 포격하면서 기어이 청천강 군우리 전투와 함경남도 장진호 전투에서 궤멸적 피해를 당하면서 속절없이 밀렸던 중공군 포비아를 순식간에 극복하고 중공군을 격퇴하면서 반격의 전기를 마련하였고 지평리 전투의 승리는 한강라인을 타고 임진강까지 이어지는 지금의 한강벨트를 굳건히 지켜내는 계기가 되었으며 결과적으로 한강의 기적을 완성시켜 지금의 대한민국을 있게 한 기념비적인 전투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그로부터 74년이 흐른 지금 지평역에서 지척에 있는 지평리 전투기념관에서 글벗이 만났다는 93세의 지평리 전투 참전 용사 이정훈 님의 사연은 우리의 심금을 울리기 충분하다. 한 번 갔다 오기도 어려운 군대를 무려 세 번이나 갔다 온 한국전쟁 지평리 전투 유공자 이정훈 님의 첫 번째 입대는 열일곱 살에 지평리 전투가 끝난 지 3일 지나 미 기병사단 군속으로 석 달 동안 미군과 함께 동두천까지 진격했고, 두 번째 입대는 켈로부대(KLO, Korea Liaison Office, 한국 민간 대원으로 구성하여 북한 후방에 침투하여 첩보 수집, 특수 임무 수행, 유격전 등을 펼친 부대)에서 군번 없이 1년 반 동안 나라를 지켰고, 그 기간이 끝나 고향으로 돌아오자 다시 국방부에서 정식 징집영장이 날아와 이제는 정식 군번을 달고 꼬박 3년 반을 현역으로 보내셨다고 한다. 이정훈 님과 같이 묵묵히 국방의 의무를 다하고 총을 들고 나라를 지킨 히든 히어로들이 있었기에 신생 대한민국은 지켜졌고 지금의 번영을 누릴 수 있게 된 것이다.
한국전쟁 발발 후 75년간 나라를 지키기 위해 소중한 청춘과 생명을 바친 히든 히어로들이 국민개병제라고 일방적인 의무를 말없이 참고 때로는 소총을 들고 때로는 삽을 들면서 우공이산의 마음으로 지키고 건설한 이 나라를 거짓과 간계 그리고 의무를 피해 도망 다닌 야비한 자들의 달콤한 교언영색에 속아 역사를 모르고 알려고 하지 않는 세대들에게 선전과 선동을 통해 지난 75년 간의 역사를 호도하고 착복하려는 매국세력들의 등장으로 대한민국은 풍전등화의 위기를 맞고 있다.
교언영색과 달콤한 말로 국민들을 기망하는 매국 무리들에게 우리 국민들은 글벗이 보내온 아래의 글과 같은 질문을 반드시 그들에게 묻고 검증해야 한다.
아아, 너는 조국을 위해 얼마나 뜨거운 사람이었는가? 아아 나는 조국을 위해 얼마나 애끓는 사람이었던가?
원래 삶이란 해보지 않는 사람이 더 큰소리치는 법, 절절한 심정으로 찢기고 할퀸 상처를 안고 가는 군대를 한 번도 아니고 두 번도 아니며 세 번을 갔다 온 93세의 이정훈 님과 같은 히든히어로들은 말이 없이 묵묵히 행동으로 애국하는 진정한 이 나라의 애국자이며, 이러한 애국자를 알아보는 분별심이 오늘의 위기를 타개하는 시금석이 아닐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