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해 12월 15일부터 <생활인의 시>라는 매거진을 만들어 시를 올리고 있다. 타이틀은 내가 참 좋아하는 수필가, 김진섭 님의 <생활인의 철학>을 흉내 낸 것이다. 작가가 아닌 생활인의 시선으로 세상을 바라보겠다는 의도였다. 다시는 안 써질 것 같던 시가 매주 한편 이상 그야말로 행운처럼 써졌다. 서랍 속에 있던 시를 꺼내 다시 만진 게 열여섯 편이고, 6개월 동안 새로 창작한 게 서른네 편이다. 졸작이지만 이만하면 다작이 아닌가! 행복한 시간이었다. 자축하며, 이런 호사를 즐기게 해준 브런치스토리가 감사하다.
30년 동안
신문방송학과에 다니던 나는 시를 너무 쓰고 싶어 문예창작학과 교수님을 찾아가 2학년 때부터 사사를 시작했고, 대학 졸업과 동시에 스승이 계신 문예창작학과 대학원에 진학했다. 등단해야 오래 쓸 수 있다며 문예지에 추천을 해주겠다는 스승에게 매번 개인시집으로 등단하겠다는 호기를 부렸다. 그런 스승의 배려를 거역한 죗값을 치른 것인지 학교를 떠나자마자 시가 써지지 않았다. 그때 나이가 스물일곱이었으니 30년 동안 시를 쓰지 못하고 살아온 것이다. 돌이켜구차한 변명 다 차치하고, 그 긴 세월시를 쓰지 못한 이유는 단 하나였으리라. 나의 글쓰기 실력과 시를 대하는 나의 소양과 살아온 나의 경험이 미천했기 때문이리라.
밤새도록
1993년 5월, 광고대행사 입사시험에 합격해 내달부터 출근하게 된 상황에서 난 갑자기 계획을 바꿔 친구와 함께 출판사를 창업했다. 책도 내고, 내 글도 실컷 쓸 수 있다는 꿈에 부푼 생각이 그런 결정을 하게 했다. 그러나 사업은 역시 사업이었다. 5년 동안 55권의 단행본을 출간하느라 남의 글만 밤새도록 만졌다. 물론 출판사를 운영하면서기획을 하고, 작가들을 만나고, 글을 가까이한 것은 정말이지 큰 행복이었다. 하지만내 글이, 내 시가 써지지 않는다는 허탈감은 좀처럼사그라들지 않았다.
계속 써지기를
시는 쓰는 게 아니라 써지는 것이다! 매번 느끼지만, 시 작품은 다른 문학 장르의 작품과는생산되는 경로가 완전히 다른 것 같다. 지금 난 20년째 대학에서 스토리텔링기법과 시나리오창작을 가르치고 있는데, 그런 글쓰기 장르는 그래도 가까이에 있는 느낌이다. 그런데 시는 유독 멀고 어렵게만 여겨진다. 여하튼 시인으로서의 자질은 여전히 부족하지만, 그래도 시가 계속써지면 좋겠다. 지가 알아서 저절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