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식이 어디 가서든 부당한 대우를 받는다면 부모는 자기 일보다 더욱 흥분하게 된다. 고등학교 1학년 사춘기 시절은 우리의 인생에서 가장 중요한 과도기이다. 이때 선생님이나 친구의 지지를 받으면서 사춘기를 극복하지 못하면 평생 트라우마로 남을 수 있다.
내가 아픈 모습을 자녀들에게 보여주지 않는 가장 큰 이유는, 혹시나 엄마가 투병 생활로 고통받다 죽는 모습을 볼 경우, 자녀들은 평생 죄책감을 안고 살게 된다. 나는 항상 아이들에게는 밝고 건강한 모습만 보여준다. 엄마처럼 밝게 살라고.
잠시 후, 딸의 전화가 다시 왔다.
“엄마! 이 담임 정말 이상해? 까도 까도 끝이 없어.양파 껍질도 아니고 정말 대책이 안 서.”라고 말하는데 나는 아직 화가 풀리지 않은 상태였다. 하지만, 차분한 목소리로
“이쁜 딸! 또 무슨 일이야?”라고 묻자,
“엄마! 이 선생님이 아이들에게, 좆같으면 과중 때려치우라고 했데. 그리고 공부하기 싫으면 목매달아 죽으라고 했데. 옥상 가서 목매달라고. 목줄이 없으면 목줄 주겠다며. 엄마! 정말 미친 거 아니야? 그리고 종례 조례에 들어오면 욕을 입에 달고 산데.”라며 말하는데 피가 거꾸로 올라오는 기분이었다.
“이쁜 딸! 진정하고 무슨 욕을 어떻게 한대?”라고 나는 차분히 물었다.
“시 팔을 입에 달고 산데. 말할 때마다 시 팔 어쩌고저쩌고. 이런 식으로. 엄마아들이 죽겠나 봐. 학교 가기 싫데.”라고 말하는데, 갑자기 퇴원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딸! 요즘 아들 표정이 어땠어? 얼굴이 안 좋았어?”라고 묻자,
“글쎄. 말을 안 하니깐.”이라며 모호하게 대답했다. 나는
“내 아들!-- 대답해 봐. 학교 가기 싫어. 담임이 이상해?”라고 묻자,
“어. 조금 그래. 그렇다고 학교를 옮길 순 없잖아.”라며 처음으로 학교에 대한 불만을 말했다.
“왜 못 옮겨? 정말 상황이 안 좋으면 옮겨야지. 엄마가 이야기해 볼게. 솔직하게 아들 생각을 말해줘.”라고 말하자,
“학교는 가능하면 옮기기 싫어. 이 동네에서 가고 싶은 학교 없어. 여기가 괜찮은데.”라며 걱정의 목소리가 담겨 있었다.
“걱정하지 마! 엄마가 담임과 잘 이야기해 볼게. 그래도 안 되면 그땐 우리도 다시 생각해 보자. 정말 아니다 싶으면 이사를 해야지. 다른 동네로 그러니깐 걱정하지 말고 있어 아들. 엄마가 아들 학교 옮길 때는 S 학교를 가만두진 않을 거야.”라고 말하자, 이때가 기회다 싶은 딸은,
“엄마! 그러면 경희대 앞으로 가자. 나 학교 좀 편하게 다니게.”라며, 신나서 말했다.
“딸! 지금 그런 농담을 하고 싶어. 엄마랑 아들은 심각해.”라고 말하자,
“ㅋㅋㅋ 알았어. 정말 이상해 그 담임”이라고 말하면서 엄마의 해결을 기다린다며 전화를 끊었다.
우리 집은 남편이 젊잖아서 그런지 아이들도 욕을 하거나 듣는 것을 안 좋아한다. 내가 가끔 운전하다가,
“저 미친놈이 죽으려고. 어디서 운전을 저따위로 하고 지랄이야”라며 흥분하면, 뒤에 있던 아들이,
“엄마, 나도 화나면 욕해도 돼. 욕하지 마.”라고 말하는 아이다.
집 앞 건널목에서 신호가 바뀌어서 내가 “뛰어!”라고 말하면서 뛰어도 아들딸은,
“엄마 건널목은 저쪽이야. 여긴 불법이야.”라고 말한다. 나는
“신호 바뀌었으니깐 뛰라니까. 차 오지 않잖아.”라고 말하면, 아들은 “나도 아무 곳에서 건너도 돼?”라고 말하는 답답한 고지식한 공무원 스타일이다.
이런 아이가 아침 오후로 담임의 막말을 듣고 있으면서 받았을 스트레스를 생각하니깐 머리가 터질 것 같았다. 같은 반 학생이 욕해도 같이 다니지 않는 아이다.
나는 학교 교무실에 여러 번 전화했다. 선생님은 회의에 들어가셨고, 오늘은 통화가 어려울 것 같다고 했다. 내일 전화해 달라고 메모를 남겼다.
남녀 공학이라고는 하지만, 남학생반에서 가끔 욕하는 것을 이해할 수는 있다. 친근한 표현으로 “이 자식이. 이 새끼가.”라며 웃으면서 장난식으로 말하는 정도의 욕은 누구도 뭐라 하지 않는다. 하지만 신학기에 아이들을 잡는다는 이유로 신성한 학교 교실에서 “시 팔”이란 욕을 서슴없이 한다는 것은 이해하기 힘들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