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면서 우리를 가장 힘들고 가파른 길을 걷게 만드는 일이 무엇일까?’라는 생각을 해봤다. 뭐라고 해도 사람이 부딪치며 사는 세상이니 인간관계의 미로가 그중 하나일 것이다.
복잡한 생활 속에서 우리는 다른 이들과 매일 같이 부딪치며, 그들과 조화를 이루며 살아야 하는 무거운 짐을 지고 걸어간다. 내 마음을 이해해 줄 수 있는 이를 만나는 일은 마치 사막에서 오아시스를 찾는 것만큼이나 어렵다.
결혼하고 아이 낳고 학원을 운영하면서 나의 사회생활은 점점 좁아졌다. 거기다 유방암이란 큰 병이 11년째 떠나지 않자, 나의 사회적 교류는 점점 희미해져 이제는 외톨이가 되었다.
처음 유방암이란 큰 손님이 찾아왔어도 지금처럼 건강 상태가 심각하지 않았다. 운동이 암에 좋다는 소리에 스포츠센터 여기저기를 기웃거렸다. 그러다 은평구에 새로 생긴 대형 스포츠센터는 나에게 또 다른 세계의 문을 열어 주었다.
그곳은 사우나, 헬스, 골프, 암벽, 요가, 필라테스, 스피닝 등 다양한 운동시설이 갖춰져 은평구라는 지역의 품격을 한층 더 높여주는 곳이었다. 회원제로 호텔식으로 운영된 그곳은 일만 하며 돈만 벌던 나에게 신세계를 알게 해주었다.
아침 식사 후 오는 대부분의 여성분은 직장생활의 경험이 없는 가정을 지키는 삶을 살아온 여유로운 사모님들이었다. 이들은 우리가 말하는 금수저로 부와 명예가 그들의 인생을 이끌어 온 분들이거나, 재개발로 갑자기 부자가 된 졸부들이었다.
나는 그 속에서 새로운 인연을 맺기 시작했다. 특히 남편이 의사라며 재산을 여유롭게 물려받은 언니와 단짝이 되었다. 언니는 나를 예뻐해 주었고 세심하게 챙겨주었다. 언니와 내 주위에는 사람들이 점점 몰려들었다.
이러한 행복도 잠시 나를 소개해 준 아들 학부모 엄마의 시기가 시작되었다. 나를 사람들에게서 떨어뜨리려고 했다. 내 상식으로 이해가 되지 않았기에 처음에는 신경 쓰지 않았다. 일이 점점 확대되어 수습할 수 없을 지경에 이르렀다. 내가 하지도 않은 말을 했다며 여기저기서 나를 이상하게 보기 시작했다.
병원에 자주 다녔던 나는 병원에만 갔다 오면 이상한 소문이 일파만파로 퍼져있었다. 어디서부터 꼬였는지도 알 수 없었다. 친했던 분들이 한둘씩 멀어져갔다. 그들은 나를 소개해 준 학부모의 패거리 입김을 무서워했다. 학생들보다 더 심한 왕따였다.
친한 언니 몇 명과 이야기할 때, 가장 친했던 의사 부인 언니는 “편히 놀고 싶은데 너와 연관된 사람들을 다 괴롭히고 협박하고 다녀. 나도 마찬가지고. 계속 와서 이야기하는데 어떻게 할 수가 없어.”라며 힘들다고 표현했다.
또 다른 언니는 “들을 수가 없어. 하지만 누구도 그들을 막을 수 없어. 단순 시기라는 걸 알지만, 만만치 않아. 그냥 조용히 있어. 너의 적수가 못돼.”라며 나에게 아무것도 하지 말라고 했다. 아니면 조용히 불러서 이야기를 해보라고 했다.
나는 이해가 되지 않아 그 친구를 불렀지만, 그 친구는 나를 피하기만 했다. 내가 너무 힘들어하자, 남편이 나섰다. 나중에 그 집 부부와 우리 부부 4명이 만났지만, 그 집 남편도 아내를 어떻게 하지 못했다.
그 집 남편은 우리 남편에게 미안하다고 하면서 나에게 정말 미안하다고 했다. 처음 겪는 일이었다. 아줌마들의 거짓말과 시기가 이렇게 무서운 줄 몰랐다. 그 뒤로 나는 동네 아줌마들을 피했다. 꼭 필요한 업무가 아니면 내 볼일만 보고 왔다.
그 센터에 남편과 아이들까지 다니고 있었기에 더 이상 시끄럽게 만들기 싫었다. 그때 ‘이유 없이 당하는 게 이런 거구나!’라고 생각하며 새로운 인간관계를 피했다. 그런 어려움 속에서도 나를 진심으로 걱정해 주고 잘해 주는 분들이 몇 분씩 계셨다.
어리석게도 마음이 약한 나는 사람들에게 마음을 주어 여러 번 상처를 입으면서 큰 깨달음을 얻었다. ‘거짓말하는 사람은 이길 자가 없구나! 무슨 일이 생기면 피하는 게 아니라 처음에 죽여버려야 하는구나!’라는 걸 배웠다.
그렇게 시간은 흘러, 코로나라는 돌풍이 전 세계에 몰아치며 많은 것들이 닫쳤고 변했다. 사람들은 각자의 길을 가기 시작했다. 은평구의 대형 스포츠센터도 예외는 아니었다. 연신내 수준에 맞지 않는 그곳은 적자를 면할 수 없었다. 4년간 운영하면서 매달 몇억씩 적자라고 했다.
그러나 보증금을 받고 5년이라는 회원과의 약속 때문에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했던 차에 코로나 구상권 핑계로 문을 닫았다. 회사는 보증금 반환도 신청하는 즉시 다음날 입금해 주었다. 그 많던 회원들은 뿔뿔이 흩어졌다.
그곳은 나에게 많은 것을 가르쳐준 삶의 교실이었다. 그곳에서의 경험은 나에게 인간관계의 깊은 교훈을 주었고, 내면의 강함을 키워주었다.
나는 거기서 만난 사람들을 아무도 만나고 싶지 않았다. 하지만 몇몇은 계속 연락이 왔다. 감사했지만, 내가 먼저 연락하지 못했다. 그 후, 새로운 헬스장에서 나는 과거의 인연들과 다시 마주쳤다. 그들의 반가움은 겨울철 햇살처럼 따스했다.
오늘은 정말 오랜만에 만난 분이 아는 척을 하셨다. 인사를 하고 같이 사우나를 하면서 그분 하시는 말씀에 마음이 찡했다. 내가 걱정되어 기도를 항상 하고 계셨단다. 진심이 느껴졌다. ‘나랑 친하신 분도, 나를 자세히 아시는 분도 아닌데.’
가끔 도로 위에서 아시는 분들이 반갑게 인사해 주신다. 나는 그때 이후로 아무도 알고 싶지도 잘 지내고 싶지도 않았다. 내가 먼저 보면 못 본 척하지만, 상대가 아는 척하면 웃어줄 수밖에 없다.
이때 그들은 나에게 한결같이 똑같은 이야기를 하셨다. “몸은 괜찮아졌어? 얼굴은 나빠 보이지 않네. 내가 많이 기도하고 있어!”라고. 그때마다 나는 “감사합니다. 저를 기억하세요?”라고 웃으면서 묻어보았다.
그들은 그렇다며 젊고 이쁜데 마음이 아파 자주 생각난다고 했다. 나는 놀라웠다.나를 이쁘게 기억해 주는 사람이 주위에 이렇게 많다는 것에. 나는 왜 기억 나는 사람이 없는지. 내가 인생을 잘못 살고 있는 건지.
오랜 시간이 지났음에도 나를 기억하고, 나를 걱정해 준 이들의 존재는 내 삶에 큰 위안이 되었다. 그들의 진심 어린 말 한마디, 한마디는 내게 큰 힘이 되었다.
세상은 넓고, 사람은 다양하다. 우리가 마주치는 모든 인연이 우리에게 무언가를 가르치고, 우리를 성장시킨다는 사실을. 비록 어떤 관계들은 우리를 아프게 하기도 하지만, 그 속에서도 우리는 더욱 강해질 수 있다.
나를 진심으로 걱정해 주고 응원해 준 이들에게 더욱 깊은 사랑과 감사를 느낀다. 오늘도 그 언니의 따뜻한 말 한마디에 내 마음에 사랑이 들어와 내가 얼마나 사랑받고 사는 사람인지를 확인시켜 주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