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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인경 Apr 11. 2024

엄마의 긴 투병으로 변화되는 자녀의 위치


퇴원한 지 일주일이 지났다. 집에서의 생활은 하루하루가 마치 살얼음판을 걷는 기분이다. 다음 주 수요일 입원 예약 일까지, 일상의 작은 기쁨들을 소중히 여기며 아이들과 지내고자 한다최대한 집안에 머무르며 건강을 유지하고 있다.    

 



학교에서 돌아온 아들은 편안한 옷으로 갈아입고 다용도실로 향했다. 그의 일과 중 하나인 빨래를 하기 위해서다. 하루는 속옷하루는 겉옷을 번갈아 가며 자신이 맡은 일을 성실히 수행하고 있었다. 아들을 위해 건조기를 사주고 싶지만, 공간이 부족했다.     


불만 없이 아들은 새로운 빨래를 널기 위해 기존의 빨래를 정리해서 각 방에 가져다 두었다. 말없이 자신의 책임을 다하고 있는 모습을 보며 나는 미소를 지었다. 처음 딸이 빨래를 정리하자는 말에 아들은 할 줄 모른다며 구경만 하고 있었다.     


그런 아들을 딸은 인내심을 가지고 하나하나 가르쳐 주었다설거지 또한 아들에게 깨끗이 닦는 법을 알려주면서이젠 아들도 집안일에서 자신의 몫을 당당히 해내고 있었다. 아빠가 집안일을 도울 수 없게 되자, 딸은 아들에게 집안일 반을 분담시켰다.      


딸이 화장실 청소와 식사를 맡는 대신아들에겐 설거지와 빨래쓰레기를 맡겼다집 청소는 반반씩 일주일에 한두 번 청소기를 돌렸다모든 일들이 엉성하고 내 마음에 드는 건 없었지만, 그렇다고 내가 할 수도 없었다. 아들딸이 자신의 역할을 찾아가는 과정 자체가 소중했다.     




오늘도 딸은 닭갈비를 한다며 하굣길의 마트에서 닭 다리 살과 고구마, 야채 등을 사 왔다. 기특하고 감사했다. 도와준다고 하자 스스로 한 음식이 맛있다며 그냥 앉아 있으라고 했다. 예전에 내가 한 말이다. 내 음식이 가장 맛있다고 자화자찬한 말.     


고구마를 본 나는 맛탕이 먹고 싶다고 지나가는 말로 했다딸은 인터넷을 찾아보더니 망설임 없이 만들어 주었다한마디로 감동이었다맛있게 먹은 우리는 저녁의 닭갈비는 내일 먹자고 했다. 점심으로 매운 쭈꾸미를 먹고 온 나는 달달한 맛탕이 최고의 만족을 주었다.     


“딸! 정말 맛있다. 여기에 뭘 넣은 거야?”라는 나의 질문에 딸은 만족스러운 웃음으로 대답했다.


“기름으로 볶고 조청, 설탕 꿀을 썩었어.”


“그래서 이렇게 맛있구나! 속이 편해. 아들도 맛있지?”     




아들은 나의 질문에 말없이 고개만 끄덕이며 무표정으로 먹기만 했다. ‘어쩌면 이렇게 남편과 똑같을까?’ 속이 터졌지만, 그럴 때마다 내 아들이라는 이름 아래 아들을 사랑하고 배려하며 변화하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대화를 이어갔다.      


“아들아! 정말 맛있지? 이런 거 밖에서는 못 사 먹어. 단가가 맞지 않아 팔지도 않지만, 꿀 넣은 맛탕을 어디서 먹어보겠니? 그럼 아들아먹으면서 누나정말 맛있다누나가 최고야!’라고 말해주면 어떨까둘이 있을 때 그냥 먹기만 하면 얄밉지 않을까?”     


딸은 ‘엄마가 또 시작이다.’라는 만족한 표정으로 웃으면서 나를 쳐다보았고, 아들도 나를 빤히 쳐다만 보았다.     


“아들아! 여자 친구를 만나도 친구들을 만나도 상대방이 잘한 일이 있을 때는 칭찬하고 좋은 말을 해줄 줄 알아야 해아들도 엄마랑 누나가 칭찬해 주면 좋지 않아?”라고 말하자, 아들은 웃으면서 고개를 끄덕였다.     


엄마는 아들이 항상 웃으면서 이쁜 말을 할 줄 아는 멋진 아들이 되었으면 좋겠어. 세상은 공부만 잘한다고 살 수 있는 게 아니야. 항상 말하잖아. 엄마가! 지식은 핸드폰이 다 말해준다고.      


정말 중요한 건 남들과 잘 융화되는 거야사회성이 중요하다는 거지. 그래서 아들 춤도 배우라고 한 거고. 입시 끝나면 기타도 배우라고 한 거야. 잘 노는 것도 중요해. 인생 뭐 있니? 항상 즐겁고 행복해야지.      


근데 생각보다 이상한 사람들이 많아. 무슨 생각을 하고 사는지 우리 기준과 다른 사람들이 많더라고. 그들을 이해하려고 애태우지 말고 적당히 넘기면서 아들딸이 행복할 수 있는 걸 찾았으면 좋겠어.”      




딸은 웃으면서 “공부라도 잘하면?”이라고 말하며 아들을 놀렸다. 아들 기를 살리기 위해 나는 아들 편을 들 수밖에 없었다.     


“아들이 열심히 하니깐 점점 좋아지겠지? 우리 멋쟁이 머리도 좋고 마음만 먹으면 잘할 수 있어. 아직 실력 발휘를 못 해서 그래. 조그만 기다려 봐 딸. 혹시 알아? 정말 SKY 갈지?”라며 아들 기를 세워주었다.     


“맞아!”라며 목소리가 커지는 아들을 보면서 나는 아들 머리를 쓰다듬어 주었다. 이렇게 말하면서도 한편으로 걱정되는 엄마 마음을 아들은 알까 모르겠다.     


그래도 춤을 배우고 난 후, 아들은 예전보다 훨씬 밝아졌다. 처음에는 가기 싫다며 억지로 갔지만, 지금은 좋다고 했다. 설거지하면서도 몸은 흔들거리며 웃는 아들을 보면서 마음이 놓였다. 

    



며칠 전, 2학년 새로운 담임 선생님께서 전화를 주셨다. 아이가 잘 웃고 긍정적이며 착하다고 하셨다다시 한번 확인했다. ‘정말 잘 웃는지?’ 선생님은 나의 질문에 의아해하며 아주 잘 웃으며 친구들과도 잘 지낸다고 했다.     


아들이 점점 변화되어 가는 모습에 감사했다. 아들이 선생님께서 지금 성적에서 한 등급씩만 올리면 경희대도 갈 수 있다고 했다며 자랑한 기억이 났다. 아이에게 긍정적으로 말씀해 주셔서 감사하다고 인사하며 앞으로도 많은 격려를 부탁했다.     




이들의 변화와 성정을 보며나는 감사한 마음을 간직했다. 건강상의 이유로 집을 많이 비우는 나는 아들이 말 못 하고 속으로만 삭힐까 걱정했는데 생각보다 누나의 보살핌에 잘 지내고 있는 것 같았다.     


집에서 두 아이의 편안한 생활을 지켜보며 비록 내 몸이 편하지 않아도 잘 지내고 있는 두 아이가 자랑스러웠다시간이 될 때마다 동생이 힘들어하는 영어독해와 물리 등을 가르쳐주는 누나를 보면서 하나님께 진심으로 감사했다.     


우리 집은 나로 인해 많은 것이 부족하지만, 서로를 돌보고 배려하는 마음으로 가득 차 있었다. 앞으로 얼마나 아이들과 지낼 수 있을지는 모르겠지만, 아이들과의 매 순간은 나에게 가장 큰 선물이다지금이 순간을 감사하며 살고자 한다     


아이들이 세상을 살아가면서 직면할 모든 도전과 기쁨 속에서 서로를 사랑하고 응원하는 마음을 잃지 않기를 바란다. 오늘도 나는 부족한 아들딸이 이 세상에서 자신의 자리를 잡고 잘 살아갈 수 있도록 도와달라고 기도한다.     


가족이라는 이름 아래 우리는 각자의 역할을 수행하며 서로를 지탱해 준다나의 건강 상황이 아이들에게 부담 주지 않기를 바라며 그들이 각자의 길에서 빛나길 기도한다.     

202404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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