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브런치북 가족사진 14화

잔소리에 대한 잔소리

by 김종열

눈을 뜬다. 사위는 아직 깜깜하다. 시간을 확인한다. 새벽 4시. 입을 헹구고 마실 물 한 잔을 챙긴다. 여기까진 ‘참 잘했어요’다. 그리곤 다시 온기가 남아있는 이불속으로 들어간다. 엎드려서 책을 편다. 좋다. 행복하다. 그런데, 방문이 열리더니 아내가 들어온다. 이미 많이 들었던 한마디를 또 한다. ‘엎드려서 책 보지 마’라는 말. 아주 어릴 때부터의 습관이라 편하고 좋은데, 그리고 아무런 문제도 없는데 볼 때마다 하지 마란다.

화장실에 두루마리 휴지가 떨어지면 새 걸로 교체해 놓으란다. 그래야 뒤에 사용하는 사람이 난처한 일을 피할 수 있단다. 맞는 말이다. 그런데 이게 웃긴다. 나도 볼일을 보고 난 후 텅 빈 화장지 걸이만 발견하는 경우가 왕왕 있었으니까. 우리 집만 그런 줄 알았는데 그게 아니었다. 그런 사례를 얘기하는 무슨 예능 프로그램을 본 적이 있었으니, 이건 집집이 끊임없이 일어나는 사회적인 현상인 건가?


설거지를 마치고 행주로 싱크대 주변의 물기를 닦아 낸다. 대충. 마무리가 잘 된 것 같다. 아닌가 보다. 이왕 할 거 좀 꼼꼼하게, 깔끔하게 정리하란다. 맞는 말이긴 한데 듣기는 싫다. 잔소리.


이번엔 내가 한다. 잔소리. 싱크대에서 들은 잔소리는 싱크대에서 일어난 일로. 싱크대에 음식물 찌꺼기 외 다른 것(비닐봉지 같은)은 버리지 말라고 한다. 물에 젖은 뭔가는 치우기가 영 성가시니까.


진공청소기로 먼지를 빨아들인다. 안방, 거실을 거쳐 부엌에 도착한다. 그런데 이런! 바닥에 또 물방울이 떨어져 있다. 저게 먼지와 엉기면 흡입구가 막힐 수도 있고 먼지 통 비울 때도 불편한데, 이미 지적했던 걸 또 한다. ‘바닥에 물 좀 흘리지 마’라는 말.


이번엔 문고리다. 왜 저기에다 옷이나 가방을 걸어놓는지 모르겠다. 옷걸이가 바로 옆에 있는데. 지저분해 보이게시리. 한마디 하려다 애써 눌러 참는다. 어차피 고쳐지지 않을 텐데,라는 생각으로.


늙어서인가? 잔소리하는 버릇이 생긴 것 같다. 심지어 반려견에게도 잔소리한다. 사료만 주면 먹지 않아서, 높은 데서 뛰어내리지 말라고, 소파 위 방석을 흩트려 놓지 말라고, 알아듣지도 못할 텐데, 아니 알아들어도 또 그럴 건데도.


잔소리는? 음~~~~ 잔소리다. 자질구레한 것들에 대한 참견이다.


잔소리는 방종에의 침해이다. 맞는 말이므로. 그러나 듣는 사람은 자유의 침해라고 한다. 듣기 싫으므로. 그리고 이 괴리는 좁혀지지 않는다. 절대.


잔소리는 가장 가까운 사람이 나 잘되라고 하는 듣기 싫은 말이다. 그리고 불행히도 대부분 맞는 말이다. 그러므로 잔소리는 사랑과 관심의 표현이다. 때론 사랑이 과해서 잔소리가 과해지면 미움이 움트기도 한다. 그래서 잔소리의 세계에서도 중용은 꼭 지켜야 할 덕목이다.


잔소리는 반복이다. 지겹도록 듣기 싫은 반복. 반복한다는 건 고쳐지길 바라는 마음이고, 반복해서 듣는다는 건 그런데도 고치지 않았다는 것이다. 그래서 잔소리는 고쳐지길 바라는 마음과 고쳐지지 않는 습관과 지루한 대결이다. 그렇다면


고치지 않을 잔소리를 반복해서 하고, 그것의 원인이 되는 습관을 굳세게 안고 사는 우리는 의지의 한국인인가? 아니면 똥고집을 장착하고 사는 그렇고 그런 꼰대인가? 뭐가 됐건 잔소리는 절대 없어지지 않을 것이다. 미루어 짐작건대 인류가 언어를 사용하기 시작했을 때부터 잔소리는 존재했을 것 같으니, 역사와 전통을 자랑하는 잔소리가 없어질 리가 있겠는가? 그러니


어차피 할 잔소리라면, 반복해도 고쳐지지 않을 것이 자명하니 하는 사람은 조금 줄여보자. 그리고 듣는 사람도 노력해 보자. 다음에 또 듣지 않도록.


이 또한 잔소리이려나? 그렇겠지. 잔소리에 대한 잔소리.


에곤실레-서 있는 여성 누드 블루.png 에곤실레-서 있는 여성 누드 블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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