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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긴오이 Dec 08. 2022

내향인들의 스트레스 제조과정

내향인들은 마음 대화가 많죠?  그렇다마다요.


물론 마음 대화는 속으로 나누는 1인칭 대화를 말합니다. 정식으로 존재하는 단어인진 모르겠으나 방금 생각나서 지어봤습니다. 그런데 내향인들의 마음 대화는 재미있는 특징들이 있습니다. 또 반대로 위험한 특징들도 있고요. 그게 뭘까요? 지금부터 한번 풀어보겠습니다.


"K야 그때 지시한 일 아직인가?"

"아! 그 사안은 그때 과장님이 잠시 보류하라고 말씀하셔서...."

"뭔 뚱딴지같은 소리야, 분명 차질 없이 진행하라고 했잖아. 도대체 일을 어떻게 하는 거야?"


K는 난감합니다. 전후 사정도 억울하지만 어쨌든 직원들 다 있는 사무실에서 이런 무안을 당한 것이 벌써 몇 번째인지 모릅니다. 표정 관리하려 도망치듯 밖으로 나왔으나 파르르 떨리는 얼굴 근육 탓에 물었던 담배마저 떨어뜨릴 뻔했습니다.

【마음 대화 시작】
자기가 그때 분명 놔두라고 했으면서. 아 진짜 드러워서 못해먹겠네. 과장이면 다야. 과장이 과장다워야지. 나원 참!
【마음 대화 고조】
아 진짜 ㅈ같네!  ㅆ발!  머 이런 또라이같은 ㅅ퀴가 다 있어. 그럴 거면 진즉 얘기했을 때 결재나 할 것이지 젠장,


다소 과격하게 표현했지만 내향인들의 마음 대화는 대충 이런 식으로 전개됩니다. 상대 앞에서 하지 못한 말들을 그 사람이 없는 곳에서 내뱉는 것이죠. 위 인물의 경우엔 마음 대화가 고조될수록 욕설이 많아지고 있습니다. 상대에 대한 울화, 공분 등이 커지면서 극도의 흥분 상태로 자신을 몰아가고 있는 중입니다. 두 단락으로 간략하게 표현했습니다만 아마 지금쯤은 과장의 멱살을 잡고 있는지도 모르겠네요. 물론 상상 속에서요.


욕 대신 심한 자책으로 자신을 몰아가는 사람도 있습니다. 난 왜 이리 못났을까? 멍청할까? 운이 없는 걸까?

세상만사 무기력은 죄다 끌어오죠. 앞에서는 한마디도 못해놓고 왜 나중에야 논리적인 대꾸들이 따박따박 떠오르는 것인지. 그야말로 환장 대파티죠.


그런데 냉정히 돌아보면 참 우스운 상황 아닙니까?

감정의 배설이 나면 속이 시원해야 하는데 전혀 시원해지지 않습니다. 행여 진정되었더라도 그것은 너무 오래 곱씹어서 다소 앙금이 가라앉은 상태이거나 혹은 스스로가  문제로부터 지쳐 나가떨어진 것뿐입니다. 한바탕 눈물을 흘리거나 소리를 지른 후의 시원함과는 거리가 있습니다. 마음속 응어리들이 근본적으로 증류되지 못한 까닭입니다. 이야기를 잠시 돌려볼까요?


양주(증류주) 제조 과정에 증류와 숙성이란 과정이 있습니다.

증류는 물보다 끓는 점이 낮은 점을 이용해 기화한 알코올을 액화하는 과정이며, 그렇게 얻어진 증류주를 오크통에 넣어 숙성을 시키면 오크통에 따라 (금색 혹은 갈색)과 (과일향, 스모크향, 커피향)이 다른 다양한 맛과 풍미를 만들어 내게 됩니다.



우리의 몸도 일종의 오크통과 같습니다.


외부에서 받아들인 여러 종류의 자극으로 인해 우리의 몸은 매일 같이 스트레스를 이 통 안에 담게 되죠. 외향인들은 활동적 에너지를 통해 이 스트레스를 밖으로 날려버리는 경우가 많습니다. 운동이나 사람들과의 만남을 통해서요. 그런데 내향인들은 위에서 보시다시피 자기 안의 마음 대화를 통해 이 스트레스에 열을 가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그런데 화력은 외향인들의 그것에 비해 다소 떨어지는 것 같습니다. 같은 스트레스를 받아도 민감도가 커서 내향인들의 증류는 외향인들에 비해 좀 더 높은 화력이 필요한데도 말이죠.


열의 순환도 문제입니다.

밖에서 안으로 가하여 스트레스를 증류시켜야 하는데 안에서 열을 가하니 속이 타는 것은 본인 자신입니다.

끊임없는 상황 설정으로 권상우처럼 한껏 찡그린 얼굴을 하고 거울 속 자신을 향해 '옥상으로 따나와'를 웅얼거리거나, 그때 이랬더라면, 저랬더라면을 자꾸 가정합니다. 1인 2역의 다중 대화도 마찬가지입니다. 스트레스 안에서 대화가 회오리치다 보니 그 안에 심한 욕설이나 자책이 섞이면 모래알처럼 내면의 오크통을 향해 자꾸만 데미지를 가하게 되죠. 내면의 오크통은 바로 자신인데 말입니다. 실상 자신에게 욕하고 자학하는 것과 다름없습니다.


우리는 스트레스란 놈을 잘 관찰할 필요가 있습니다.


스트레스도 술과 마찬가지로 독(毒)입니다. 해독되지 못하면 몸에 치명적이죠. 스트레스 자체는 무형의 정서(情緖)상태와 같아서 그 자체가 몸에 해가 되지는 않습니다만, 무서운 것은 이 스트레스가 증류되지 못할 때 몸에 대하여 어떤 성분을 쥐어짜게 만든다는 것입니다. 바로 호르몬이죠. 가령 호르몬이 췌장에 영향을 미치면 췌장은 췌액을 쥐어짜게 되는데 이렇게 흘러나온 췌액은 몸속의 다른 장기들을 녹일 수도 있습니다. 마찬가지로 뇌나 갑상선에도 이런 일들이 발생할 수 있습니다. 손에 잡히지 않는 무형의 위협이 손에 잡히는 유형의 위협으로 어떻게 전환되는지 잘 보여주는 과정이라고 보시면 됩니다.


우리는 우리 내부에 들어온 스트레스를 건강하게 증류시켜 올바른 숙성과정을 통해 밖으로 병입(출시)시킬 필요가 있습니다. 스트레스 자체가 이미 60% 이상의 독한 증류주인데 여기에 욕설이나 자학을 더해 70~80% 이상의 알코올을 만들 필요가 있을까요? 내향인들이 사건에 처했을 때 자주 애용하는 일종의 상황극 설정은 가장 안 좋은 방법입니다. 음악이나 독서, 미식을 통해 물을 타듯 스트레스 농도를 낮추고 40% 정도 근처에서 건강한 방법으로 알코올(스트레스)을 즐겨야겠죠. 적당한 스트레스는 좋은 위스키나 브랜디처럼 인생의 맛과 풍미를 높일 수도 있습니다. 그 맛과 풍미는 자신이 어떤 오크통(몸통)을 갖추고 있느냐에 달려있습니다. 정신과 신체가 지닌 가치와 철학이 중요한 이유죠.


고백하자면 저 위의 욕설을 통한 증류를 자주하던 사람이 바로 저였습니다. 요즘도 가끔 저러는 적이 있는데 스스로 생각해도 이건 사이코패스적 성향이 아닌가 의심될 때가 많습니다. 오늘 이 글을 써놓고 나니 조금 안도가 되네요. 앞으로 좋은 스트레스만 제조해야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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