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이지연 Jun 12. 2016

비가 내리는 날을 유독 좋아했다.

이번 주말엔 소나기가 내린다 


주말 동안 소나기가 내린다고 한다. 

그 소식을 듣고, 나는 나도 모르게 가슴이 설렜다. 


어릴 때부터 유독 비를 좋아했다. 

비가 내릴 때 창문을 열고 손바닥을 내밀어 손 가득 비를 만지는 것을 좋아했다. 

비가 내리는 날, 밖에 나가 한참 동안 내리는 비를 바라보는 것을 좋아했다. 

비가 내릴 때 느껴지는 냄새와 소리, 순식간에 바닥을 적시는 비의 속도를 좋아한다. 


내리는 비를 손바닥으로 만질 때면, 언제든 동심으로 돌아간 듯한 기분이 들었다. 

다시 장화를 신고 밖을 뛰어다닐 수 있을 것 같았고, 

우산 하나를 여러 명이 옹기종기 쓰며 시끌벅적한 시간을 보낼 수 있을 것 같았고, 

언제라도 롤러브레이드를 타고 친구 집에 가서 함께 보드게임을 할 수 있을 것 같았다. 


빗줄기가 내 손에 머무르면서 나는 비와 얽혔던 나의 추억들이 하나 둘 생각났다. 

그리고 겨우 눌러뒀던 감정들이 하나 둘 터지기 시작했다. 

툭, 툭. 


나는 유독 비 내리는 날을 좋아했다. 

내리는 비를 보노라면 마음이 씻겨지는 기분이 들었다. 

그리고 왠지 모르게 마음이 서글퍼졌다. 

그럼에도 좋았다.  


흘러가는 빗물을 볼 때면, 지나간 삶들이 생각났다. 

그때 그 사람. 

소꿉친구. 

지금은 잘 지내는지, 그때 있었던 미끄럼틀은 아직도 있는지, 유치원 이름은 바뀌진 않았는지. 


그리운 것들이 더 그리워지고, 

잡을 수 없는 시간들이 홀연히 지나가버린다. 

그 시간들이 더 아련해진다. 


내 몸을 적시는 비의 감촉은 항상 나를 설레게 했다. 

어릴 때 비가 오든, 눈이 오든 항상 뛰어다녔던 그때의 추억이 생각났고 

돌이킬 수 없는 시간들에 그때 그 사람들이 하나 둘 생각났다. 


그렇게 내 마음은 몽글몽글해지기 시작했다. 

특정한 누군가가 그리워서라기보다는 그저 지나온 삶들이 모두 아름답게 생각되고, 

예쁜 색을 품은 비눗방울처럼 여겨져서 지금 이 삶을 더 간직하고 싶어 진 것이다. 

그래, 그럴 수 있었다고. 

나는 안다고. 


그때의 상황을 받아들이게 되는 것이다. 

비가 내린 뒤 시원한 바람이 불어오면, 창문을 더 활짝 열어 온 몸으로 바람을 맞는다. 

그렇게 불어오는 바람 냄새를 가만히 맡는 것이 좋고, 

바람결에 머리카락이 흩날리는 느낌이 좋다. 

나는 조금은 축축한 바람을 좋아한다. 


바람에 묵직한 사연을 품고 오는 것 같아 위안이 되고, 마음이 푸근해진다. 

어릴 때는 하늘도 눈물을 흘린다고 생각했었다. 

일 년 간의 설움을 장마철에 한 번에 쏟아내는 거라고,

생각했다. 

그래서 이슬비 내리는 아침이면 가슴이 저릿해졌다. 

억지로 눈물을 참고 있는 것 같아서, 

누군가 곁에 있어줘야 할 것 같아서. 


나 역시 그랬으니까. 

내가 울 때 어른들은 "울면 안 돼. 뚝 그쳐."라고 하시며, 그만 울 것을 이야기했다. 

그래서 나는 어렸을 땐 눈물은 참아야 한다고 생각했었다. 

눈물을 흘려선 안 되며, 흘리더라도 바로 닦아야 한다고. 

절대 보여줘서는 안 된다고. 

그때마다 마음 한편이 아팠다. 

아직 풀지 못한 설움이 남아있어서, 

생겨선 안 되는 슬픈 감정들이 나에게 있다는 것이 부끄러워서. 

그래서 그저 빨리 이 감정이 자연스럽게 사라지기만을 바랐던 것 같다. 


그러다 어느 날, 

엄마에게 혼나고 나도 모르게 어금니를 문 채 눈물을 참았다. 

심장박동이 빠르게 뛰기 시작했지만, 눈꺼풀이 떨려왔지만.

절대 눈물을 흘려선 안 된다고 생각했다. 

그때 엄마가 나를 안아주며, 이렇게 말씀하셨다. 


"괜찮아 지연아. 울어. 괜찮아질 때까지 울어. 네가 운다고 해서 아무도 뭐라고 안 하니까. 괜찮으니까. 펑펑 울어."


그 말에 나는 감정이 북받쳤다. 

그리고 펑펑 울었다. 

몇 시간 동안, 괜찮아질 때까지 그렇게 엄마 품에 안겨서.

한참을 울고 나니 가슴이 뻥 뚫린 것처럼 후련해졌다. 

그리고 내 안에는 어떤 설움도 남아있지 않았다. 

오히려 편안하고 행복했다. 

나는 지금도 그때 그 감정을 잊지 못한다. 

지난 시간 동안 나에게 그렇게 말해준 사람은 없었다. 

항상 눈물은 뚝 그쳐야 한다고 했을 뿐이었다. 

하지만 시원하게 쏟아내고나니 새로운 삶이 보였다. 

세상 어떤 것이든 자연스럽게 해결되는 일은 없다. 

슬픔은 눈물로 풀어야 하며, 즐거움은 웃음으로 풀어야 한다. 

화가 나면 화를 내야 하고, 할 말이 있으면 말을 해야 한다. 

가만히 있어도 해결이 되는 것은 아무것도 없다. 


그 이후로 나는 무슨 일이 생기면, 바로 그 감정을 풀어내려고 애쓴다. 

묵혀두면, 묵혀둘수록 감정의 골은 오히려 더 깊어질 뿐이다. 

그래서인지 비가 내리는 날이면 그때의 내가 생각난다. 

눈물을 참기 위해 무던히 애를 썼던 어린 나와 

드디어 눈물을 흘리고 마음이 편해졌던 초등학생의 나와 

언제든 눈물을 흘릴 줄 알게 된 지금의 내가. 

그리고 주변 사람들이 슬픈 일이 생기면 눈물을 쏟아도 괜찮다고 이야기해줄 수 있는 지금의 내가 말이다. 


이슬비가 내리는 날엔 마음이 애처롭다. 

조금 더 시원하게 쏟아냈으면 하고, 그 해의 장마만을 고대한다. 

그때가 되면 내 마음 또한 깨끗하게 씻겨지겠지.  

그때가 되면 묵혀왔던 지나간 사랑들이 하나 둘 떠오른다. 

내 곁의 사람들이 생각나고, 고마운 마음이 피어난다. 


비가 내리는 날, 당신이 참 좋다. 

그런 날이면 가만히 마주 보고 앉아 지나온 이야기들을 조곤조곤 나눠보고 싶다. 

우리의 이야기 소리와 창 밖의 빗소리, 지나간 추억들이 어우러져 가장 아름다운 연주를 시작하고

나는 문득 너의 생각이 들어 한동안 잠을 이루지 못할 것이다. 

그렇게 밖에 내리는 빗소리를 들으며 겨우 마음을 달래겠지.  


사랑은 비와도 같다. 

한순간 젖어들다가 갑자기 떠나가네. 

그리고 평생을 그 사람을 그리워하며 사네. 

비 내리는 날 생각나는 사람이 당신이라서 좋다. 

비가 내리는 날이면 자연스럽게 생각나는 사람이라서 참 좋다. 

그때만큼은 편하게 생각할 수 있어서 다행이다.  


올해 장마에는 그리운 것들이 더 그리워지고, 

보고 싶은 사람들을 만날 수 있다면.

그렇게 당신의 마음을 꽉 끌어안을 수 있으면 좋겠다.  


흩날리는 빗줄기를 보며, 당신 역시 내가 생각난다면, 

그것만으로도 족할 것 같다.

너와 나의 사랑은 그리움 속에 더 깊어지며

만날 수 없고, 만질 수 없는 아련함 끝에 피어날 것이니까. 


네가 생각나는 이 밤, 오늘도 장마만을 기다린다. 


당신에게도 특별한 날씨가 있나요?

그 날씨가 지닌 특별한 사연은 어떤 것인가요?

매번 특별한 날씨가 계속되지는 않더라도 당신의 그 사람만큼은 항상 곁에 머물기를 바랍니다. 

그리고 당신 역시 그 사람에게 항상 특별한 존재이기를. 

매거진의 이전글 편지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