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추한 예배당>

by sinewave

8. 느헤미야 8장 1-5, 13-18


말씀


“에스라가 모든 백성 위에 서서 그들 목전에 책을 펴니 책을 펼 때에 모든 백성이 일어서니라”

“또 일렀으되 모든 성읍과 예루살렘에 공포하여 이르기를 너희는 산에 가서 감람나무 가지와 들감람나무 가지와 화석류나무 가지와 종려나무 가지와 기타 무성한 나무 가지를 가져다가 기록한 바를 따라 초막을 지으라 하라 한지라”


묵상


“한때 길에서 잠들면 어떠냐. 그것이 젊음의 특권이다”


성숙한 자는 분별하고 조심한다. 그러나 지나치게 살피게 되면 삶을 있는 그대로 즐길 여유가 사라지게 된다. 어떤 면에서 보건대 받을 수 있는 기회를 못 받게 된다.


예배를 할때도 마찬가지다. 성대한 예배당에 많은 성도들과 화려한 언변의 목회자들이 있는 교회에서 드리면 그 나름대로의 장점도 있겠다. 하지만 느헤미야가 성벽을 재건한 뒤 뭇백성들과 초막집을 지어 예배를 드리는 장면은 오히려 그 누추함 덕에 더욱 빛난다. 세상에 그 진심이 더욱 크게 울려퍼진다.


옛 고사에 반딧불과 겨울철 눈에 반사된 빛으로 공부했다는 선비의 일화가 전해진다. 가난함 가운데서도 끊임없이 정진하는 일. 선비는 훗날 큰 족적을 남겼으리라.


새로운 분야에 도전할 때 우리가 일상에서 빠지는 큰 오류 중에 하나가 장비에 대한 집착이다. 정작 내 몸은, 내 실력은 보잘 것 없는데 비싸고 기능좋은 장비가 모든 일을 해결해주리라 하는 생각과 완성도 있는 작품에 대한 조급함이 앞서면 생기는 심리다.


지금의 AI 대전환도 마찬가지다. AI 기술을 창조하는 기업은 뒤쳐지면 안되겠지만 우리가 일상에서 사용하는 AI는 사용자의 데이터 퀘스쳐닝과 AI 구동능력이 떨어지면 큰 힘을 발휘하지 못한다. 예컨대 천자문과 영어 기초어원 학습도 안되어 있는 사용자가 한영 학술논문을 AI로 돌린들 얼마나 유의미한 값을 추출해낼 수 있냐 하는 문제다.


신앙도 마찬가지다. 뿌리 깊은 삶의 토대가 신앙을 만나면 장소가 초막집이든 초갓집이든 멋진 음악을 만들어낸다. 하지만 삶에 대한 숙고와 토대가 약하다면 아무리 뛰어난 목사가 말씀을 전해도 울려퍼지지 못한다. 옛말로 소귀에 경읽기다.


성벽을 재건한 느헤미야가 내면의 토대를 함께 쌓고 초막집에서 예배를 드리는 모습은 믿음이 시련을 겪고 더욱 강건해진 모습을 그린다. 지금의 우리라고 다르겠는가. 믿음의 벽돌을 매일의 일상속에서 업무속에서 쌓고 또 쌓고 믿음의 연필을 깎고 또 깎고 몽당연필이 될때까지 쓰다보면 믿음의 연필은 다시 쑥쑥 자라나 복음을 전파할 작곡가의 만년필이 되리라고 믿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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