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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영배 Sep 28. 2022

박태기나무

형제간의 우애

누가 태기라도 쳤는가

가지마다

펑펑펑

박 터지는 소리     

와글와글

바글바글

우르르 우르르 모여드는

시뻘건 눈들     

조팝나무도 하얀 수수꽃다리도

휘청거리는 봄날     

“뻥이야!”     

“펑”     

먼 산에 이는 이내.     

- 홍해리, <박태기꽃 터지다> 전문

         

시인은 처음부터 ‘박태기나무’에서 ‘박’과 ‘태기’를 나누어 생각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박이 터지는 소리를 마치 태기라도 친 것이냐고 묻고 있습니다. ‘태기치다’라는 말이 ‘어떤 물건을 땅바닥에다 힘껏 치는 것을 뜻하는 경상도 사투리’라는 것을 아시면 더욱 의미가 다가오겠지요? 빨간 꽃들을 마치 뻥튀기하듯 터지는 꽃망울로 보았습니다.

     

조팝나무

중간에 조팝나무가 나오고 있습니다. 우리에겐 몹시도 배가 고팠던 시절이 있었습니다. 제가 어린 시절엔 보리밥과 감자로 끼니를 때우던 시절이 있었습니다. 그것도 어떤 때는 건너뛰기도 했었지요. 요즘 세대에선 이해하기 힘들지도 모르겠습니다. 전기도 없어 등잔불이나 호롱불을 켜고 살았던 시절이 있었습니다. 매년 봄에서 여름으로 넘어갈 땐 보릿고개라 해서 먹을 것이 떨어져 산나물과 뿌리까지 캐다 죽을 쑤어먹기도 했으니까요. 쌀밥은 제삿날이나 명절날에 구경할 수 있는 귀한 음식이었습니다. 그러한 때 피어나는 꽃 가운데 먹을 것을 닮은 꽃들이 있었습니다. 그래서 그 꽃들은 조팝나무(조밥나무), 이팝나무(쌀밥나무)처럼 박태기나무(밥테기나무)가 되었겠지요.  

이팝나무

   

박태기나무꽃은 붉은색 자잘한 꽃이 수도 없이 많이 다닥다닥 피어납니다. 일부 지역에선 밥풀떼기나무라 부르는 것을 보면 홍해리 시인이 앞에서 비유했던 박 터지는 꽃보다는 뒷부분의 뻥튀기 나무에 가깝습니다. 꽃자루가 짧은 진분홍 꽃이 나무를 감싸 안듯 치장하고 있습니다. 꽃 모양과 색깔이 예뻐서 정원수로 많이 심겨 우리 눈을 즐겁게 합니다.  

    

레오나르드 다빈치 <최후의 만찬> (산타마리아 델레 그라치에 성당)

이 예쁜 꽃에도 안 좋은 이야기가 담겨 있습니다. 예수를 팔아먹은 제자 유다가 뒤늦게 뉘우치고 목을 매달아 자결합니다. 그 나무가 박태기나무라고 전해집니다. 예수를 돈 몇 푼에 말아 넘기고 그는 얼마나 큰 죄책감에 사로잡혔을까요? 결국 자결을 하고 만 그의 아픔조차도 예수는 사랑으로 감싸 안고 죽었을 것입니다.    

  


박태기나무꽃은 형제간의 우애를 상징하기도 합니다. 박태기나무의 원산지는 중국입니다. 중국 이름은 자형화(紫荊花)이고 영어 이름조차 차이니스 레드버드((Chinese Redbud)입니다. 국 남조 양나라 때 오균이 편찬한 <속제해기>에는 박태기나무에 관한 이야기가 나온다고 합니다. 간단하게 요약하자면, 삼형제가 부모의 유산을 물려받았는데 유산을 독같이 삼등분했습니다. 부모님의 유언을 지키려고 나무까지 삼등분했는데 박태기나무까지 삼등분해서 그만 죽고 말았다고 합니다. 그래서 박태기나무를 나누지 않고 공동의 것으로 삼았다는 이야기입니다. 그래서 박태기나무는 ‘형제간의 우애’를 뜻하는 꽃이 되었습니다.   

    

요즘 TV 뉴스를 보면 재벌들이 부모 유산을 다투다가 싸움이 일어나고 사회문제가 되기도 한다는 이야기들이 심심치 않게 들려옵니다. 부모에게서 물려받은 재산이 자식들에게 좋게 되어야 하는데 재앙이 되는 일이 있어선 안 되겠습니다. ‘내가 더 가지고 네가 덜 가져라.’ 하는 욕심 때문에 분쟁이 생기고 형제간 우애에 금이 가는 것입니다.

     


박태기나무를 보며 이런 생각을 해 봅니다. 제가 자식들에게 물려 줄 유산은 거의 없습니다. 우리 부부 노후 생활비용도 만만치 않습니다. 그래서 자식들에겐 이렇게 이야기해야겠습니다. 우리가 부모로서 너희들에게 해줄 것은 하나도 없다. 나무조차 공동으로 키웠던 삼형제를 기억하라. 박태기나무를 기억하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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