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이영배 Sep 27. 2022

능소화

팜므파탈(Femme Fatale) 여인의 한

능소화가 제 눈에 들어오게 된 것은 여러 해 전 제가 뇌종양 수술을 받고 반신마비 상태에서 재활을 통해 조금씩 회복하고 있을 때였습니다. 신촌에 있는 S병원 재활 병동에서 더운 여름날 매일매일을 반복되는 일상과 진척되지 않는 재활로 지치고 무료한 나날을 보내고 있을 때, 아내가 내게 콧바람을 쐬어주려고 잘 걷지 못하는 저를 휠체어에 태우고 비탈길을 올라 어렵사리 대학 교정 쪽으로 산책을 데리고 나갔습니다. 오래된 대학교 본관 건물 앞쪽에 큰 나무를 타고 올라가 나무 전체를 뒤덮고 있던 여름 한낮 주황색 꽃의 농염한 향연을 본 것이 사진처럼 뇌리에 박히게 되었습니다. 그 뒤로도 능소화를 보면 그 강렬했던 여름날의 농염한 빛깔들을 잊지 못하게 되었습니다.  

        


박경리의 소설 <토지>에서 최참판댁 담장에 능소화가 피어있는 것으로 그려지고 있듯이 능소화는 옛날부터 주로 양반집 마당에나 심는 기품 있고 고급스러운 꽃나무로 대접받았습니다. 일반 상민 집에 능소화를 심어 가꾸면 잡아다가 곤장을 때려 다시는 능소화를 심지 못하게 하였다고 전해집니다. 그래서 양반꽃이라고 불렀다고 합니다.    

 


옛날 복숭앗빛 뺨에 자태가 고운 ‘소화’라는 어여쁜 궁녀가 있었는데 왕의 눈에 띄어 하룻밤을 보내고 빈의 자리에 오르게 되었습니다. 그러나 임금은 그 이후로 빈의 처소에 한 번도 찾아오지를 않았습니다. 구중궁궐 임금의 총애를 받은 여인들이 서로 시샘하고 암투를 벌였고 그녀는 궁궐의 가장 깊은 곳으로 떠밀려나 마냥 임금이 찾아오기만을 기다렸습니다. 밤마다 혹시나 왕이 찾아올까 하여 담장을 서성이며, 왕의 발걸음 소리라도 나지 않을까, 그림자라도 비치지 않을까, 담장 너머 쳐다보며 안타깝게 지냈습니다. 어느 여름날 기다림에 지친 소화는 담장 가에 묻어달라고 유언을 하고 상사병으로 세상을 떠나게 되었습니다. 더운 여름이 시작되고 온갖 새들이 꽃을 찾아 모여드는 때 그녀가 묻힌 담장 가에는 조금이라도 더 멀리 밖을 보려고 높게 하늘을 향해 줄기가 올라가고, 발걸음 소리를 들으려고 꽃잎을 넓게 벌린 꽃이 피었다고 전해집니다. 죽어서도 왕이 오기만을 기다리며 담장을 타고 올라 붉게 타들어 가고 주황색 꽃잎이 통째로 뚝뚝 떨어지는 이 슬픔을 간직한 꽃을 ‘처녀꽃’이라고 부릅니다. 틀림없이 이런 설화를 바탕으로 류인순은 <능소화 연가>를 썼을 것입니다. 구중궁궐 왕의 꽃인 소화꽃의 설화적 사실을 잘 드러내고 있습니다.  

        

단 한 번 맺은 사랑

천 년의 기다림 되어

오늘도 행여 임 오실까

임 지나는 담장 가에

주렁주렁 꽃등 내 걸고

깨금발로 서성이며

애간장 타는 설움

온몸 출렁대는 그리움에

목은 자꾸자꾸 길어지고

임 향한 마음 불타오르다

속절없이 붉은 눈물 뚝뚝 떨구는

왕의 꽃

구중궁궐 소화꽃

 - 류인순, <능소화 연가> 전문      

              

낙화(洛花), 시들지 않고 싱싱한 상태에서 송이째 뚝뚝 떨어지는 꽃. 낙화라는 말에 가장 잘 어울리는 꽃으로 동백꽃과 능소화가 있습니다. 동백꽃은 수수하고 순수한 모습으로 떨어진다면, 능소화는 늘 화려한 자태로 요염함을 잃지 않고 마지막까지 그 모습 그대로 떨어집니다. 그렇습니다. 그래서 필연적으로 능소화에서 팜므파탈(Femme fatale)의 이미지를 보게 됩니다. 우리말로 치자면 관능적인 유혹, 요염한 여자. 악녀, 파멸의 이미지입니다. 정끝별의 시에서는 ‘더운 살꽃’과 ‘불 둔 사랑’이 나오고, 박인걸의 시에는 그리움에 지쳐 ‘열꽃’이 된다고 합니다. 한 여인의 관능적 유혹과 육체적 사랑을 담고 있습니다. 양전혁의 <능소화>는 대단히 직설적으로 ‘저승 가서도 바람피울 년’이라고 능소화의 이미지를 밝히고 있습니다. 바로 팜므파탈입니다.          


더운 살꽃을 피워내며

오뉴월 불 둔 사랑을

저리 천연스레 완성하고 있다니!

 - 정끝별, <여름능소화> 부분

         

바람나지 않는 꽃은

꽃 아니다 하더라만

여름이 혼신으로

불햇살 토하는 한낮

바람을 무더기무더기

뜨겁게 싸는 여자      

울담 넘어

뭇남정넬 벌겋게 기웃대는

저런, 저승 가서도 활활 바람피울 년!

뉘 가슴 못을 칠려고

꼴리게 벗어제치냐  

 - 양전형, <능소화>  

           

여기서 우리는 단 하루에 의해 평생을 결정하는 궁궐 여인들의 모습을 헤아릴 수 있습니다. 많은 영화와 드라마에서 그려졌듯이 구중궁궐 여인들의 고독과 아픔, 왕의 사랑을 두고 벌이는 여인들의 질투와 어두운 싸움을 찾아낼 수 있습니다. 능소화는 역사 속에 실재하는 여인들의 표상입니다.  

    

김만중의 <사씨남정기> 목판본(국립박물관 소장)

저는 이쯤에서 서포(西浦) 김만중의 소설 <사씨남정기(謝氏南征記)>를 훑고 있는지 모르겠습니다. 잠깐 저와 함께 <사씨남정기>로 들어가 봅시다. 배경은 중국 명(明)나라입니다. 주인공인 유연수(劉延壽)는 15세에 장원급제하여 한림학사가 되어 유한림으로 불립니다. 유한림은 현숙한 덕과 학문적 재주를 겸비한 여인인 사씨(謝氏)와 혼인하였으나, 9년이 지나도록 슬하에 자식이 없자 사씨의 권유로 교씨(喬氏)를 후실로 맞아들입니다. 그러나 시기심과 질투심이 많은 교씨는 간계로써 사씨 부인을 모함하여 쫓아내고 자기가 정실부인이 됩니다. 그 후에 교씨는 정부(情夫)와 눈이 맞아 남편인 유한림을 모함하여 멀리 유배 보내고, 유한림의 재산을 차지하여 정부와 함께 도망치다가 도둑을 만나 재물을 모두 빼앗기고 맙니다. 모함이 거짓으로 밝혀져 유배에서 풀려나온 유한림은 그때에서야 잘못을 깨닫고 사씨 부인을 찾아 다시 아내로 맞아들이고 교씨와 정부를 잡아 처형합니다. 소설에서 한 집안의 두 여자, 즉 사씨와 교씨의 암투를 그리고 있지만, 김만중은 이 소설을 통하여 교묘하게 인현왕후를 내친 숙종을 비판하고 있습니다. 소설에서는 유한림은 숙종을, 사씨 부인은 인현왕후를, 후실 교씨는 희빈장씨(장희빈)를 각각 대비시킨 것입니다. 김만중은 궁녀를 통하여 이 소설을 숙종에게 읽게 하여 숙종의 마음을 돌리게 하여 장희빈을 쫓아내고 폐출된 인현왕후 민씨(閔氏)를 왕비에 복위하게 했다는 일화가 전해지는 소설입니다.  

       

역사 속으로 더 들어가 볼까요? 실제 조선 19대 숙종 임금 시대로 가 보겠습니다. 숙종 때의 희빈(禧嬪)이 되었던 장옥정 이야기입니다. 한 남자의 사랑을 쟁취하기 위하여 많은 여인이 싸워야 했던 구중궁궐이라는 비정상적인 구조, 각박하고 모질기만 했던 구중궁궐 잔혹한 여인사(女人史). 왕의 사랑을 받지 못해 처녀로 죽어야만 했던 대다수의 여인. 체념하고 살았던 여인들의 한. 그들의 고통의 쾌락을 궁궐의 역사에서 찾아볼 수 있습니다. 그 소용돌이 속에서 뛰쳐나가고자 했던 인물이 장희빈입니다.  

    


장희빈은 인동(仁同) 장씨로 이름은 옥정(玉貞)이라고 전해집니다. 아버지는 역관(譯官)이었던 장형(張炯)이며, 어머니는 파평 윤씨(坡平尹氏)였습니다. 친가와 외가 모두 대대로 역관 집안으로, 당시 외교 실무를 담당했던 역관들이 그러하였듯이 부유한 중인 집안이었습니다. 당숙인 장현(張炫)은 숙종 때에 역관의 수장인 수역(首譯)을 지냈으며 거부(巨富)로 이름이 높았다고 합니다. 어린 나이에, 실록에 표현되어 있듯이 “머리를 땋아 올릴 때부터” 나인(內人)으로 뽑혀 궁궐에 들어갔습니다. 1680년(숙종 6년) 무렵부터 숙종(肅宗)의 총애를 받았으나 숙종의 생모인 명성왕후(明聖王后)에 의해 궁에서 쫓겨납니다. 당시 장현도 경신환국(庚申換局)으로 서인(西人)이 집권한 뒤에 쫓겨나 유배 갑니다. 장희빈은 1683년 명성왕후가 죽은 뒤 다시 궁으로 돌아왔으며, 1686년(숙종 12) 숙원(淑媛)으로 책봉되고, 다시 소의(昭儀)를 거쳐 1688년 왕자 윤(昀, 뒷날의 경종)을 낳아, 다음 해 원자로 책봉되면서 희빈(禧嬪)으로 승격됩니다. 당시 송시열(宋時烈) 등의 서인(西人)은 장희빈의 아들을 원자로 삼으려는 숙종의 뜻에 반대합니다. 이에 숙종은 정권을 서인에서 남인(南人)으로 교체해 버립니다. 이 사건을 기사환국(己巳換局)이라 합니다. 서인이 몰락하면서 서인의 지원을 받던 숙종의 계비인 인현왕후(仁顯王后) 민씨가 폐위되고, 장희빈이 1689년(숙종 15)에 드디어 왕비(王妃)로 책봉됩니다. 여기까지는 여인의 권력투쟁에서 장희빈의 승리한 것으로 보입니다. 그러나 1694년(숙종 20) 남인이 실각하고 서인이 다시 집권하게 되니 이를 갑술환국(甲戌換局)이라 합니다. 서인의 집권에 따라 인현왕후 민씨가 복위되었고, 장희빈은 왕비(王妃)에서 희빈으로 강등됩니다. 1701년(숙종 27) 인현왕후가 죽게 되지만 새로운 경쟁자가 나타납니다. 나중에 영조(英祖)가 되는 이금(李昑)을 낳은 숙빈 최씨(淑嬪崔氏)가 등장합니다. 장희빈이 자신의 거처인 취선당(就善堂)에 신당(神堂)을 차려 놓고 인현왕후의 인형에 화살을 쏘아 저주해 죽게 했다고 숙종에게 알립니다. 그리하여 장희빈은 숙종의 명으로 사약을 먹고 죽게 됩니다. 결국엔 궁궐의 암투에서 장희빈도 패자가 되고 말았습니다. 장희빈은 죽은 뒤에 광주(廣州) 오포에 매장되었으나, 1969년 경기도 고양시에 있는 서오릉(西五陵)으로 이장되었습니다. 아들인 경종(景宗)은 1722년(경종 2) 생모인 장희빈을 옥산부대빈(玉山府大嬪)으로 추존합니다. (두산백과 참조)    

  

이 내용은 ≪조선왕조실록≫을 바탕으로 한 것입니다. 숙종 때 집권한 서인들에 의해 서술된 역사로서 구중궁궐 여인들의 끝없는 암투와 무한경쟁을 내용에 담고 있습니다. 특히 장희빈은 매우 관능적이고 치명적인 아름다움을 가진 악녀로, 팜므파탈의 이미지로 덧씌워져 있습니다. 그러나 구중궁궐에서 한 남자를 차지하기 위한 여인들의 암투보다는 외부적인 사건에 휩쓸려가는 가련한 여인들의 모습이라는 생각도 듭니다. 승자의 역사가 아닌 패자의 입장으로 바꿔서 역사를 바라보는 관점도 있는데 아래 구본창의 의견을 요약하자면 장희빈과 인현왕후는 당시 집권을 위해 싸웠던 강력한 두 세력, 즉 남인과 서인 사이의 당파싸움에 의한 희생양이라는 것이지요.      

    

경제력을 갖춘 중인계층과 정치력을 갖춘 양반들의 결합, 즉 정경유착에 의해 힘을 갖게 된 양 세력이 각각 장희빈과 인현왕후라는 두 상징적인 여인을 통해 권력투쟁을 한 것이라고 볼 수 있다. 지금까지 역사는 장희빈의 미모와 간교에 빠진 숙종이 인현왕후를 내쫓았다가 다시금 정신을 차려 장희빈을 몰아낸 것으로 기록하고 있다. (중략) 그러나 이것은 남인과의 권력투쟁에 승리한 서인들이 쓴 역사이기 때문이다. 이러한 역사 인식이 오늘날에도 거의 부동의 사실로 자리 잡은 이면에는 남성 중심의 사회에서 애정 문제에 대한 모든 허물은 남성보다는 여성에게 책임을 뒤집어씌우는 시각이 우리 사회에 뿌리박고 있기 때문이 아닌가 싶다. 숙종이 장희빈을 총애하고 그런 흐름 속에 남인을 중용한 것에 대해 새로운 시각으로 접근할 필요가 있다. (중략) 결국 숙종이 사랑했던 것은 장희빈이 아니라 강한 왕권이었고, 장희빈은 숙종의 이러한 정치적 의도 속에 한때는 총애를 받고 권력의 최정상에 올랐다가 왕의 후계자인 세자를 아들로 두고도 사약을 받아 파란만장한 생을 마감한 것이다.

 - 구본창, <패자의 역사> 중에서   

       


옆길로 샜습니다. 다시 처음으로 돌아가 보겠습니다. 능소화의 이미지는 관능적인 여인, 악녀, 유혹적인 여인의 이미지를 가지고 있다고 했습니다. 이빈섬은 권력투쟁과 팜므파탈의 이중성을 다 보여줍니다.  

   

뱀같은 이 마음을 꽃이라 부르랴

물어뜯고 삼키고 싶은

턱까지 벌린 아가리를 보아라     

마음보다 몸이 뜨겁지 않다면 사랑이 아니다.     

하루 종일 다른 얼굴로 생글거리는 일

당신 없이 이 생을 지나가는 일

사는 게 아니다

가슴 복판 불구덩이 깊이 파묻는 마름

사랑하고야 말리라

능소화 그 호수

폐화되어 날리는 날

하늘아

이 그리운 년을 보아라

푸른 납덩이 하늘밑 짓눌려

그대로 질식하고 싶던

불온한 사랑의 종말을 보아라     

내내 당신만을 바라보고 싶어

붉게 불게도 뜬 눈을

당신 혹시라도 섧게 감겨주어라     

  -이빈섬, <능소화>   

  

이빈섬은 이러한 ‘마음보다 몸의 뜨거운 사랑’을 노래하여 팜므파탈(Femme Fatale)의 모습을 한 여인의 한을 다루고 있습니다. ‘물어뜯고 삼키고 싶은 턱까지 벌린 아가리’를 가진 여인들의 암투를 보여줍니다. ‘뱀 같은 마음’이 꽃으로 환생하였고 능소화는 ‘사랑을 쟁취하고야 말껬다’는 악녀의 모습으로 그려집니다. 사랑을 가진 여인 사랑의 종말인 죽음을 능소화를 통해 말하고 있습니다.          

능소화는 구중궁궐 여인네들의 잔혹사, 암투의 희생양이 되었던 소화의 전설을 가지고 있습니다. 소화는 다시 장희빈의 모습과 중첩되었습니다. 사랑하던 사람에 의해 배신당한 궁중 여인의 한을 보았습니다. 체념하고 고통을 겪어야만 했던 소화의 사랑 이야기도 잊을 수 없습니다. 장희빈의 처절한 죽음과 사랑의 배신조차 아름다움으로 승화시킨 능소화의 절규를 들을 수 있습니다. 오세영의 <능소화>는 바로 그런 모습을 잘 보여주고 있습니다.          

배신의 상처가 얼마나 컸으면

이다지도 아름답더냐.

체념의 슬픔보다 고통의 쾌락을 선택한      

꽃뱀이여,

네게 있어 관능은

사랑의 덫이다.

네 부드러운 몸둥이

다리에서 허벅지로, 허벅지에서 가슴으로,

칭칭 감아 올라

마침내

낼룽거리는 혀로

내 입술을 감쌀 때

아아, 숨막히는 죽음의 희열이여,

배신이란 왜 이다지도

징그럽게 아름답더냐.

 - 오세영, <능소화>    

            

그 무렵 그(심영빈)는 곧장 능소화를 타고 이층집 베란다로 기어오르는 꿈을 꾸었다. 꿈속의 창문은 검고 깊은 심연이었다. 꿈속에서고 심연에 도달하지 못했다. 흐드러진 능소화가 무수한 본홍빛 혀가 되어 그의 몸 도처에 사정없이 끈끈한 도장을 찍으면 그는 그만 정신이 뿌리째 흔들리는 야릇한 쾌감으로 줄기를 놓치고 밑으로 추락하면서 깨어났다.

 - 박완서, <아주 오래된 농담> 부분⓵   

  

능소화가 만발했을 때 베란다에 서면 마치 내가 마녀가 된 것 같았어. 발밑에서 장작더미가 활활 타오르면서 불꽃이 온몸을 핥는 것 같아서 황홀해지곤 했지.

 - 박완서, <아주 오래된 농담> 부분⓶   

  

박완서의 소설 <아주 오래된 농담>은 주인공 심영빈이 40대 성공한 의사로서 자기네 이층집에 살던 초등학교 동창 유현금을 30여 년 만에 만나 바람을 피우는 내용의 소설입니다. 위의 부분⓵은 주인공 심영빈이 이층집으로 오르는 능소화를 연상하며 관능적인 유혹을 느끼는 대목이고 부분⓶는 유현금이 능소화가 피었을 때 느끼는 감정을 표현한 것입니다. 역시 유현금도 능소화를 통해 관능적인 사랑의 표현을 하고 있습니다. 이렇게 박완서의 소설에서도 능소화는 관능적인 유혹이나 아름다움, 육체적인 사랑을 달성하기 위한 재료로 사용되고 있군요. 역시 능소화는 농염한 팜므파탈에서 벗어나지 않습니다.  

        

루 살로메(출처 : 나무위키)

눈을 돌려 서양으로 가 봅시다. 서양의 팜므파탈하면 ‘루 살로메’란 여자를 제쳐둘 수 없습니다. 릴케와 니체와 프로이트가 사랑한 여인, 그녀는 ‘치명적 아름다움을 가진 여인’이었습니다. 루 살로메는 자신의 철학적 우상인 17살의 연상인 철학자 니체의 사랑을 거부합니다. 니체는 파멸로 빠집니다. 니체는 정신병원에 수용돼 죽어가면서도 "나는 지금도 살로메를 사랑한다"라고 외쳤다고 합니다. 그 후 살로메는 14살 연하의 릴케와 사랑에 빠집니다. 그녀의 나이 36살에 사랑이란 감정에 빠져들고 맙니다. 당시 21살의 무영 시인이었던 릴케의 이름을 여성스러운 프랑스 이름인 '르네(Rene) 마리아 릴케'에서 남성적인 독일식 이름 ‘라이너(Rainer) 마리아 릴케'로 바꿀 정도로 그의 문학과 생애를 뒤바꿔 놓은 여자입니다. 프로이트는 "루는 여자로서 최고 운명을 가졌다"라고 찬사를 보냈다고 합니다. 그 외에도 많은 남자들과의 염문을 뿌리고 다닌 것으로 유명합니다.     

살로메를 '팜므파탈'의 대명사로 손꼽습니다. 팜므파탈을 '악녀'나 '요부'로 번역하기도 합니다. 그렇지만 루 살로메에게 팜므파탈은 '치명적 아름다움과 지혜를 가진 여인'. 혹은 '운명적 여인'이라고 보는 의견도 있습니다. 그녀는 지적(知的)이고, 여성으로의 주체성을 삶과 사랑에서 구현해낸 혁명가라는 평가를 받기도 한 여인이었습니다.  

        

능소화는 돌담을 넘어 밖으로 뻗어 나가기도 하고 죽은 나무를 타고 올라 하늘을 향해 뻗어 나가기도 하며, 때로는 공원 벤치를 덮어 시원한 그늘을 만들어 편안한 꽃그늘을 만들어 주기도 합니다. 여름날 장마와 무더위 속에서도 아랑곳하지 않고 싱그러운 초록빛 잎을 앞세우고 죽죽 줄기를 뻗어 나가는 모습이 가슴을 요동치게 합니다. 차를 타고 서울에 나갈 때면 한강 변 올림픽대로와 강변북로 담장 위로 헤아릴 수 없을 만큼 많은 능소화가 피어 무더운 여름날의 나른함과 졸음을 한순간에 사라지게 만들고 운전을 행복하게 만들어 줍니다. 저 혼자서는 일어설 수 없어 나무와 돌담에 기대어 꽃등(-燈)을 내걸어 놓고 무언가를 기다리는 듯합니다. 하늘마저 능멸하는 아름다움, 하늘을 업신여기는 꽃, 그러나 무더위를 이겨내고 억척스럽게 강인한 흡착력으로 줄기차게 뻗어 나가는 모습을 통하여 강한 생활력이라는 삶의 지혜를 배워야 할지도 모르겠습니다.  

   


봄에 만발하여 봄을 빛내주는 벚꽃이나 목련은 피었을 때의 화려함과는 달리 꽃이 질 때는 비참하고 남루한 모습으로 마감합니다. 이와 달리 여름을 빛내주는 능소화는 시들기 전에 몸체와 이별을 고하고 스러지는 모습을 보여줍니다. 떠나야 할 때 아름답게 떠나면서 강렬한 인상을 남겨줍니다. 장맛비에 길바닥에 주황색 꽃길이 만들어지면 저는 그 자리에 서서 오도 가도 하지 못하고 그리움에 빠져 헤어나오지 못합니다.

                               

                    

이전 08화 박태기나무
brunch book
$magazine.title

현재 글은 이 브런치북에
소속되어 있습니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