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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march Dec 19. 2023

어쩌다 외교, 뉴질랜드 식탁에 꽃 핀 한국

내가 곧 한국이다!라는 마음으로

김밥 5줄로 예술가 되기


뉴질랜드에서는 김밥보다는 스시 라고 불리는 캘리포니아롤 같은 음식점이 많다. 캘리포니아처럼 속이 꽉 찬 스시도 많지만 약소하게 테리야키치킨과 아보카도 또는 연어와 아보카도를 살짝 넣은 롤도 인기가 많다.


알록달록 예쁜 색깔의 재료를 하얀 쌀 밥 위에 하나씩 쌓는다. 모퉁이를 살짝 들어 살살 말아 꼭꼭 눌러 굴려주고 참기름 바른 칼로 썰어 예쁜 단면을 볼 때의 기쁨이란 이루 말할 수 없지. 내가 아이들 도시락으로 김밥을 싸주면 런치시간에 아이들 친구들은 자기도 스시를 좋아한다며 하나씩 달라고 한단다. 큰 아이는 김밥을 왜 스시라고 말하지? 싶어 차이점을 생각하다 스시에는 단무지가 들어가지 않고, 김밥에는 단무지가 들어간다는 차이를 발견했다. 이후에 친구들에게도 차이점을 알려주며 자기가 싸 오는 음식은 스시 가 아니라 한국의 '김밥'이라 고쳐 말해줬다. 친구들은 이제 점심시간의 김밥을 더 이상 스시라고 부르지 않는다며 친구들과 선생님들이 좋아하는 김밥에 대해 바르게 알려준 것 같아 뿌듯하다 했다.


뉴질랜드 식탁에 피어난 김밥 꽃.



아이들 친구들이 집에 놀러 왔을 때 늦게까지 놀고 싶다 해서 저녁으로 김밥을 말아준 적이 있다. 그 친구는 다음날 자기 엄마에게 우리 집에서 처음 먹어본 김밥이 맛있었다 말했고 다음에 또 먹고 싶다고 했단다. 금발에 에메랄드 빛 눈을 가진 엄마는 김밥을 본적도, 먹어본 적도 없으니, 그것이 무엇인지 몰라 나에게 연락을 했다.


"입 짧은 내 아이에게 네가 무슨 짓을 한 거야? 도대체 김밥이 무엇이길래 오로지 칩(chips)만 먹는 아이가 그것을 만들어달라고 나에게 요청을 한 거니? 넌 내 아이에게 마법을 걸었어! 그러니 나에게 김밥 만드는 방법을 제발 알려줘"


그녀는 김밥의 스펠링도 다르게 적어 나에게 메시지를 보냈기에 무엇을 알려달란 건지 처음엔 알지 못했다. 장난스럽고 간절한 그녀의 부탁에 만나서도 자세히 알려줬지만 그녀는 김밥 김을 한 번도 본 적이 없어 마트의 어느 매대에 진열되어 있는지도 몰랐다. 그녀는 재료 몇 가지를 며칠째 찾지 못하고 있다는 연락을 다시 해왔다. 결국 한 주 내 내 난 그녀와 연락하며 김밥 만들기 프로젝트를 진행했다.


입이 짧고 편식하는 자신의 아들이 맛있게 먹었다는, 생전 처음 들은 외국음식을 만들기 위해 쏟은 엄마의 정성은 위대하지만 한국의 김밥이란 음식은 절대 호락호락하지 않지.


김밥을 만들기 위해 밥을 짓는 것도 힘들었다고 했다. 쌀도 처음 사봤다고 한다. '쌀'은 버터치킨 카레 옆의 하얀 것, 십여 년 전 스페인으로 휴가를 갔을 때 먹었던 빠에야 말고는 모른다 했다. 그런 그녀가 직접 밥을 하고 김 위에 밥을 고르게 펼친다? 밥 위에 몇 가지 재료들을 넣고 돌돌 마는 일은 진작에 포기했고 결국 모든 재료들을 식탁에 한 접시씩 쪼르륵 놓고 온 식구가 뷔페처럼 골라 담아 먹었다고 한다.


결국 그녀는 김밥에 두 손 두 발을 다 들었고 상심한 그녀를 달래기 위해 난 며칠 뒤 김밥 다섯 줄을 후루룩 말아 그녀에게 건넸다. 따끈한 김밥을 두 손으로 받아 들며 그녀는 어쩔 줄 몰라했고 나를 와락 끌어안았다.


금발에 에메랄드 눈빛의 그녀는 말했다.

"김밥은 완벽한 예술작품이야. 그것을 만드는 너는 예술가야. 키위(뉴질랜드 사람) 중에 이것을 따라 만들 수 있는 사람은 단 한 명도 없을 걸! 별거 아니라고? 한국사람이면 모두 만들 수 있는 거라고? 오 말도 안 돼! 모두 예술가들이니? 한국은 어떤 나라야??"


대한민국의 혼을 담은 예술작품인 김밥 다섯 줄로 나는 그녀의 예술가가 되었다.


나중에 그녀는 우리 집에서 밥 짓는 전기밥솥을 보고 김밥에 꼭 필요한 장비라며 밥솥 없이는 김밥을 만들 수 없다는 것을 왜 진작 알려주지 않았냐 발끈했다. 귀여운 그녀에게 약 올리듯 한국의 밥솥 자랑을 신나게 했다. 그리고 그녀에게 종종 김밥을 선물할 때마다 나는 예술가가 되는 기쁨을 만끽한다.  








잡채로 이웃 할머니 기 살려드리기


우리 집 뒤, 대각선 집에 할머니 할아버지가 사신다. 연세를 여쭤본 적은 없으나 손자손녀가 취업한 성인이라 하니 연세가 꽤 있으신 듯하다. 책에 관심이 많은 큰 아이는 한국에서 초등학교를 다닐 때 학교 도서관이 우리 집이었으면 좋겠다는 말을 자주 했다. 대각선 키위 노부부 집, 1층에는 주로 할아버지가 자주 계셨고 공놀이를 하다 그 집으로 공이 자주 넘어가서 공을 주워오다 우연히 보게 된 할아버지의 1층 서재에 첫째는 마음을 뺏겼다.


할아버지의 서재 덕분에 우리 집 남매는 학교에서 놀다 들어오는 시간이 점차 짧아졌다. 대신 이웃집 할머니할아버지 집에서의 시간을 길게 보내게 됐다.


살랑이는 바람과 아름다운 새의 노랫소리에 햇빛을 즐기는 키위 노부부의 오후시간에 에너지 넘치는 남매가 불쑥 끼어들어 죄송스러워 잡채를 만들었다.


영어로 요리의 이름을 적고 알레르기 체크를 위해 잡채 재료도 큼지막히 적어 잡채를 담은 통 위에 붙였다. 아이들은 서로 자기가 배달할 거라 싸워 둘이 같이 보냈다. 뒤이어 나도 감사인사를 위해 따라나섰다. 할머니 할아버지는 아이들이 집에 찾아와 주니 오히려 고맙다고 하셨다. 남매를 위해 서재는 언제나 열어두겠으니 아무 때나 놀러 오란 말씀도 해주셨다.


며칠 뒤 정원에서 가드닝을 하고 계시는 할머니와 인사를 나누다 잡채에 대해 이야기를 나눴다. 조금 맛보고 너무 맛있어 곧장 골프모임에 가져가 할머님의 친구분들과 나눠드셨단다. 처음 먹어보는 누들의 식감에 놀랐고 스테이크 고기를 얇고 길게 요리한 음식은 처음 먹어본다며 전체적인 음식의 풍미가 너무 아름다웠다며 할머니 친구분들께서는 당신에게 한국 친구가 생겨 부럽다고 했단다. 할머니는 한번 더 고맙다 하셨고 나는 할머니의 골프모임이 있는 날에 종종 잡채와 야채 김밥, 불고기 김밥 등을 요리해 선물해 드렸다.


할머니는 골프모임에 다녀온 뒤 꼭 우리 집에 들러 음식 후기를 들려주시는데, 친구분들과 입속에 한국을 가득 담았으니 건강관리를 잘해서 조만간 한국으로 여행을 가자는 대화를 하셨다고 한다. 때가 되면 한국의 여행지를 소개해달라고 할 테니 준비하고 있으라는 말씀도 하셨다.


(좌)하필, 시금치와 양파가 똑 떨어진날. 그래도 맛있었다 해주신 이웃 할머니. (우)음식 배달은 당연히 아이들 담당.


이후 할머님댁으로 놀러 간 아이들은 할머니 할아버지와 한국이 지도에서 어디에 있는지 찾아보고, 우리가 살던 서울도 같이 검색해 보셨다고 했다. 김치는 어떤 음식인지, 한국에는 어떤 볼거리가 있는지에 대해 이야기도 나누고 구글 검색으로 멋진 사진을 보며 한국이라는 나라에 대해 궁금증을 가지고 꼭 여행을 한번 해보고 싶다 말씀하셨다.


음식이란 것이 내 입맛에만 맞을 뿐 상대가 좋아하지 않을 수 있어 선물로 건네드리는 것이 망설여질 때도 있다. 하지만 내가 겪은 이웃들은 언제나 열린 마음으로 고맙다 받아주며 맛있게 드시고 Korea라는 나라를 검색하여 나와 우리 가족이 온 나라에 대해 아름답다 이야기해 준다.


그들이 나의 나라에 대해 호감을 가지고 우리 가족에게 베푸는 친절에 보답하고자 나는 맛있는 한국음식으로 그들의 식탁에 놓이는 한국외교를 쉬지 않을 것이다.


그래서 한국에서 살 때보다 더 부지런하고 더 반듯하게 살고 있다. 내가 곧 한국이다!라는 생각으로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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