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 간 찻잔을 보고 쓰다
쩤. 소리를 들었다고 생각했다. 붓던 커피를 내려놓고 손끝으로 잔을 건드려봤다. 이리저리 기울여 살폈지만 멀쩡해 보였다. 잘못 들었나 보군, 생각을 바꾼 건 당연했다. 유리컵도 아니고 펄펄 끓는 물도 아니었으니.
아니었다. 며칠 후 커피색 금을 발견했다. 그땐 없던 금이다. 스며든 커피에 물이 들어 드러난 모양이다.
표면만 얕게 갈라진 듯 물이 새진 않는다. 그래도 언제 깨질지 모르니 쓸 수는 없다. 이 찻잔은 쓸모를 다했다. 보낼 때가 왔다.
클림트의 팬이라거나 화려한 잔이 취향은 아니고, 선물 받은 찻잔이다. 첨엔 좀 부담스러웠던 금박에 이제야 익숙해진 참인데 아깝게 됐다. 그런데 말이지. 어느 미술관에서 샀을 화려한 기념 찻잔은 원래 전시용이었던 게 아닐까. 그래서 얼마 쓰지도 않았는데 존재에 금이 가 버린 건가. 그런 생각이 드는 거다, 지금에서야.
커피물이 아니면 보이지도 않았을 실금 하나일 뿐인데. 하나 그토록 가는 금에도 커피는 스며들고 제 색을 들였다. 쩤. 들릴 듯 말 듯했던 소리는 찻잔의 시간이 끝나는 소리였다. 보이지 않고 들리지 않는 곳에 사물의 시간이 있다. 금 가고 물이 들고 소리 없이 존재를 소진하면서, 사람의 시간도 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