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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시린 May 13. 2023

우체국 택배 부치기

택배를 부치다 쓰다

어쩌다보니 일주일 내내 우체국에 갔다. 책 소포를 부치고 고사리 택배를 부치고 건강보험 환급청구서를 부치고 통장정리를 했다.


월요일. 좀 급하게 나서느라 사전접수를 안 하고 물건만 덜렁 들고 갔다. 주소를 옮겨적고 있는 걸 본 직원이 슬쩍 와서는 큐알코드가 있는 명함을 찔러줬다. 지금 해도 된다고 해서 접수하고 간단히 송장을 뽑아 붙였다. 할인도 받았겠다, 친절한 분이라며 헤벌쭉 웃으며 나왔다.


화요일. 사전접수한 소포를 들고 당당히 들어서는 날 보자마자 친절한 직원이 잠깐만요, 했다. 어제 부친 것들 중에 도내배송이 섞여 있었는데 그런 경우 미리 말을 해줘야 한단다. 아 네, 몰랐어요. 담엔 그렇게 해 주세요, 이건 육지로 가는 건가요? 딱히 내가 잘못한 건 없지만 살짝 무안했었나 보다. 급히 돌아서 나가는데 직원이 한 번 더 불렀다. 카드요! 멋적게 웃으며 뽑아드는데 한 마디 더 한다. (사전접수할 때) 카드도 미리 등록할 수 있어요. 아 네, 아는데.. 급해서.. 오늘도 급하게 나섰던 나는 카드번호를 써넣느니 가서 꽂는 게 빠를 거라고 생각했었다. 한데 왜 꼼수를 들킨 기분이 드는 거지?


수요일. 창구 앞에서 하르방이 왁왁 소리를 지르고 있었다.(그냥 목소리가 큰 거) 택배 받을 사람 주소를 안 가져 왔단다. 미리 결제하고 가서 전화로 주소 불러 줄테니 부쳐 달란다. 주소가 어신디 어떵 결제합니까, 요금이 얼만지 모르는디양. 돈으로 주민 될 거 아니! 현금 주고 갈테니 해달라는 얘기다. 하르방이 택배를 밀어넣고 간 다음은 아즈망 촐례.(차례) 이 분은 택배를 부치는 게 처음인지 어디에 주소를 쓰는지도 몰랐고 포장도 허술하게 해와서 되니 안되니 하느라 시간이 좀 걸렸다. 내 촐례에서 전화가 왔다. 하르방이 부르는 주소를 도저히 알아들을 수 없던 직원은 양, 전화번호 골르큰게 이디로 문자 보냅서(어르신, 전화번호 알려드릴테니 여기로 문자 보내세요), 하고 간신히 전화를 끊었다. 전화기를 어깨에 걸친 채 내가 내민 바코드를 찍는 친절한 직원의 목소리는 상냥했으나 피곤해 보였다. 카드등록까지 해두었던 나는 송장을 붙인 소포와 편지봉투를 건네고 흐뭇하게 돌아섰는데,


전화기요!


아오 정말! 언제쯤 무안하지 않은 진짜 웃음을 지을 수 있는 거냐. 아냐, 날 못 알아봤을 수도 있지. 손님이 잊은 물건 챙기는 건 반사적 행동이고, 바빠서 눈도 안 마주쳤으니까… 하지만 직원의 확인사살,


뭘 많이 놓고 가시네요. (전날은 카드를, 전전날은 선글라스를 놓고 돌아섰었다.)


오늘은 토요일이니 우체국은 쉰다. 친절한 직원이 편안한 휴일을 보내고 있길 바라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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