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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시린 Jun 05. 2023

사람을 살리는 곡기 같은 글

김서령을 읽다 쓰다


외갓집이 영주였으니 할매도 엄마와 이모들도 당연히 영주말을 썼다. 우리는 그 말이 재밌고 좋았는데 어른들은 촌스럽다며 싫어했다. 할매도 큰이모도 사투리를 따라하는 우리에게, 너거는 촌스런 말 하지 말고 이쁜 서울말만 써레이, 했다.


초등학교 때 부산으로 전학을 갔다. 서울 경기도 학교에는 없던 규칙을 하나 알게 되었는데, 글에는 사투리를 쓰면 안 된다는 거였다. 국어나 일기 숙제에 사투리를 쓰면 빨간 줄이 그어졌다. “오빠야가 얼라들이랑 놀아주었다. 다음엔 내가 오니였다.” 이렇게 써 가면 다시 써야 했다. 하지만 오니를 오니가 아니고 뭐라 해야 하는지 아는 아이들은 거의 없었다. 결과, 부산말밖에 쓸 줄 모르는 아이들이 써내는 글은 우스꽝스런 말글의 잔치였다. 거기 대면 내 (서울)말투를 따라하는 친구들의 억양 정도는 우스운 것도 아니었다.


어릴 땐 어른 말을 잘 듣는 착한 어린이였지만 삐딱한 중년 아줌마는 이제 그런 말은 듣지 않는다. 사투리, 촌말, 촌음식, 촌스러운 것들이 나는 좋다. 촌스럽고 때론 말 같지 않은(?) 입말과 입말을 살려 쓴 글도 좋아한다. 때론 어법과 문법에 안 맞고 맞춤법은 틀리고 사전에 없는 말들의 난장일지라도.


“그 여러 할매들에게 엄마가 대접하는 음식이 늙은 호박이었다. 그냥 삶아 콩가루를 묻히는 것이 일차 공정이었다면 조금 복잡하기로는 호박뭉개미가 있었다. 뭉갠다고 '뭉개미'였다. 손으로 으깨서 호박만큼 순하게 뭉개지는 곡물이 또 있을까. 젊은 사람들은 호박범벅이라고도 불렀지만 '범벅' 같은 입술을 부딪치며 하는 발음은 할매들에겐 서툴렀다. 이 없는 노인들은 단어도 부드럽고 순해야 했다. 할매들은 범벅 대신 애기들처럼 뭉개미라고 불렀다.”

—<외로운 사람끼리 배추적을 먹었다> 중에서.


이 문장 하나로 내가 김서령을 읽는 이유를 설명할 수 있다. 좋아하는 문장, 쓰고 싶은 글이다. 저자가 쓰는 안동말은 잘 모르되 외갓집이 있던 영주와 가까운 지역이라 할매 어메가 쓰던 말과 비슷한 부분도 상당히 있어 더욱 반갑다. 작년 연말에 엄마가 얼른 써야 할 도서교환권이 있는데 뭘 살까 묻길래 이 책으로 하라 했던 이유기도 하다. 읽을 때마다 외할머니 생각이 많이 난다.


여자들이 좋아하는 책, 여자들이 쓰는 글.. 질색하는 말이다. 이딴 말 듣고 싶지 않아서 웬만하면 책을 추천하지도 받지도 않는다. 이 책은 권할 수 있다. 나에게도 남들에게도. 질색팔색인 말들마저도 품을 수 있는 글이라서. 김서령의 글은 여자가 쓴 글이고 여자들이 좋아하는 글이고 촌스러운 말을 촌스럽게 쓴 글이고 그 모든 못난 것들을 품는 글이다. 아무 맛도 자극도 없이 사람을 살리는 곡기, 한 숟갈 미음 같은 글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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